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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Jul 29. 2024

카드의 저주 1

이것이 미스터리다!

아들의 카드는 저주가 붙은 게 분명해!

이번이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아들이 저주를 끊고자 핸드폰 케이스에 넣고 다니기로 했던 카드를 또 잃어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내 카드를 줘야만 했다. 교통비를 청소년요금제로 쓰던 걸 성인 요금제로 가뿐히 쓰고 다닌다. 간간히 간식이며 식사도 하고 계속 자잘하게 돈이 샌다. 생활비는 정해져 있는데 아들이 걱정할 일은 아니니....

나는 하루 식대로 만원씩 주고 있었는데, 카드를 주는 순간부터 스케일이 달라진다.


"엄마, 나 파마했어요!"

6만 원 문자!

"엄마, 나 콘택트렌즈 샀어요!"

6만 3천 원 문자!

"엄마, 나 치과 다녀왔어!"

7만 원 문자!


엄마한테 잘 물어보지 않고 줄줄 돈이 다. 아들이 쓴 카드 값만 이번 달은 50만 원이 나갔다. 아들이 고3이라 입시로 예민한 때라는 생각에 나는 인내를 장착하고, 마음속으로는 기도를 한다. 마이너스 생활비는 비상금으로 충당, 비상금을 꽁꽁 싸매고 있던 마음이 아들을 위해 풀렸다. 지금이 비상이라는 마음이 드니까 사르르 풀린 거다. 아들과 갈등을 빚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들이 카드를 긁을 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여섯 번은 은행에 간 것 같다. 아들이 아직 미성년자라 카드 재발급을 전화로 할 수 없단다. 기본증명서와 가족증명서와 신분증을 들고 또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

"본인이 전화로 재발급받으면 돼요! 은행에 안 오셔도 되는데."

"그러게요. 전화로 상담하면 은행 창구에서 발급받으라고 해서.... 다음엔 전화로 재발급받을 게요."


이제 일곱 번째 은행에 가야 한다.  또 돌림 노래를 듣겠지? 은행 직원은 전화로 발급받으라고 할 거고, 나는 미안하다며 그래도 발급해 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먼저 전화로 재발급받으라고 했는데, 아들도 상담원이 은행 창구로 가라고 했단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미성년자 직불카드 재발급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나는 다시 전화로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았다. 아들이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화로 물어본 상담사와 은행 창구에 있는 직원의 말이 다른 것처럼 나도 아들과 소통이 안 된다. 이럴 땐 되는 방법을 찾아야지!


아들이 매 번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고 흘리는 게 밉지만 그래도 해주겠다는 넉넉한 내 마음을 발견하고 무한히 발급해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늘 해주면 아들이 카드 잃어버리는 저주에서 못 풀려날 것 같아 방법을 바꿨다. 아들에게 맡기면 지체가 될 것 같고 갈등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기본 서류는 만들어서 주며 아들에게 발급받으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프린트해서 아들에게 주며 은행에 다녀오라고 했다.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은행이 어디죠?"

"거 있잖아, 노브랜드에서 쭉 가서 큰길 만나면 오른쪽으로 꺾어..."




카드를 잃어버리는 저주가 끝났으면 좋겠다.

은행 창구 직원의 말이 맞을까?

은행의 전화 상담원 말이 맞을까?

아들은 왜 자꾸 카드를 잃어버리는 걸까?

이 미션은 언제 끝날까?


모두 자기 말이 옳다는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

이것이 미스터리다!


아들이 아침을 먹고 학원에 가면서 나는 물었다.

"오늘 은행에 다녀오긴 어렵겠지?"

"아니에요. 다녀올게요."

나는 아들 손에 서류를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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