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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일 때 다르고, 라면 먹을 때 다르고.

막내의 대꾸

7월 16일에 있었던 일이다.

“나 밥 쪼금만 줘!”

막내는 공기에 반도 안 차게 밥을 넣어달라고 했다. 요즘 막내는 중2병을 앞세워 나의 갱년기를 누르고 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겨우 학교에서 먹고 학원에서 돌아와, 저녁도 조금 먹거나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마라탕을 먹겠다고 시위할 때가 많다. 주로 학원에서 선생님에게 혼이 나거나 숙제가 많을 때 그런 것 같다.


“말 시키지 마!”

"내 방에서 나가라고!"

막내는 이 돌림노래도 요즘 징하게 부른다.

제 방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화장실 문 앞에서 지키고 있으면서 빨리 자기 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네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나가?”

“왜 못 나가! 아, 엄마 뚱뚱해서 못 나가겠다고? 알았어. 내가 비켜줄게.”

어제는 겨우 저녁에 막내 방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나왔다. 평소에는 방문을 잠그고 잘 안 열어준다.


“말해야 알지.”

막내가 가끔 하는 말이다.

자신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하면 자기 행동을 보면서 왜 자기 마음을 모르냐고 한다.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가족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만….


한 번은 서로 속상해서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넌, 네 생각만 하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도와주려는 딸이었어.”

“그땐, 내가 어렸고.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거야!”

그때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용돈을 모아서 내 노트북을 사는 데 보태주던 딸이었다.

“그럼, 네 안에 사랑이 쏙 빠진 거야. 정이 없는 거라고. 가장 큰 장점인 그걸 빼면 네게 뭐가 남니?”


서로 차분해져서 대화가 될 때 막내가 말했다.

“그래, 나는 내 생각만 해. 내가 힘든데 어떻게 딴 사람 생각을 하겠어. 그때는 지금 같지 않았다고.”

2주 전쯤에 막내에게서 이 얘기를 듣고 반성이 좀 됐다. 막내가 진짜 마음이 힘들었다는 걸 알았다.

비단 막내뿐 아니라 큰딸도 그렇고 아들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미운 마음이 들겠지만,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든 상태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다. 나도 쉽지는 않지만,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나는 다시 16일의 그때를 떠올려본다.

딸은 몇 숟갈 안 되는 밥을 먹고,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렸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서다. 나는 곁에서 막내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영어 배우는 거 어때?”

“엄마, 말 시키지 말라고 했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있는 막내에게 더 자극을 줘서는 안 된다. 막내는 젓가락으로 면을 휘젓더니 다 끓였는지 국그릇에 라면을 담아 상으로 가져왔다.

거실 창밖으로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막내가 라면 먹는 모습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비가 많이 오네. 내일 과외받으러 가야 하는데, 그래도 3호선만 타면 쭉 가니까 다행이다. 그치?”

“응.”

막내는 라면을 먹고 있었다. 얼떨결에 대꾸한 거지만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사춘기 막내는 라면 끓일 땐 말을 못 붙여도, 라면을 먹을 땐 말을 붙여도 된다.

좋아하는 걸 먹을 때는 막내에게 말을 붙여도 되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자기 행동을 보면서 왜 자기 마음을 모르냐고!”

막내의 말뜻을 좀 알 것 같다. 내가 평소에 막내의 행동을 잘 살피지 못했던 것을….

오늘 공부하고 돌아온 막내가 짜파게티를 손수 끓이며 모처럼 말을 걸어왔다.

“나 여름방학 때 강릉 가는 게 기대돼!”

막내는 들떠서 말했다.

나와 막내, 멕시코에서 온 동생과 조카, 이렇게 4명이 강릉으로 8월 여행을 계획했다.

“웬일? 엄마에게 말 걸지 말라고 했던 네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무슨 좋은 일 있어?”

“응, 어제 공부 안 하고 실컷 놀았거든. 엄마, 나 민생 소비 쿠폰 받으면 엄마에게 추어탕 쏠게! 어제 하루 종일 놀아서 마음의 그릇이 넓어졌거든.”


막내의 말에 어제 막내가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핸드폰과 아이패드로 뭔가를 보던 게 떠올랐다. 숙제 별로 없어서 내일 하면 된다고 하루는 실컷 놀겠다고 한 말도. 나는 짠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막내의 힘든 마음을 잘 엿보지 못했던 내가 “라면 끓일 때 다르고, 라면 먹을 때 다른 막내의 모습”을 보고, 새삼 나를 엿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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