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 셀카의 기쁨
“눈 찔러, 그만!”
“가만있어! 그쪽은 안 발렸다고!”
막내는 내게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10일, 강릉 여행에서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편히 쉬고 있었다. 한 번 더 지워야 해서 귀찮다는 나에게 화장을 해주겠다고 딸이 졸라댔다. 예전부터 자기 화장품으로 화장을 해주고 싶어서 벼르던 딸이었다. 최근에 생일 선물로 올리브영 상품권을 받아서 이것저것 화장품을 더 사더니, 이번엔 꼭 해주고 싶었나 보다. 나는 이번에는 받아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기초화장품만 바르고 앉아서 막내가 화장품 가방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방에서 화장품 가방을 가져온 딸은 내 얼굴에 분을 발랐다. 발랐다기보다 수타면 만들 때처럼 바닥에 치듯 두들겼다. 분을 얼마나 두드리는지 얼굴 마사지를 하는 줄 알았다. 딸은 눈가와 입가에는 분이 제대로 안 발렸다며 갑자기 검지에 분을 묻혀 내 눈가로 돌진하고 있었던 거였다.
“손가락으로 하지 마!”
나는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나는 딸이 해주는 화장을 못 이긴 척 받고 있었지만, 손으로 펴 발라주려는 건 싫었다. 그런 데다 아이섀도도 손가락에 묻혀서 눈 두 덩이에 바르려고 했으니, 내가 기겁할 수밖에.
딸은 내가 한사코 뿌리치자, 아쉬워하며 붓으로 섀도를 발라댔다. 받는 입장에선 조금은 거칠게 화장을 하는 것 같았다.
딸의 화장법은 웬만하면 손가락이 붓이었다. 얼굴의 모든 면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화장했다. 그래서 그동안 안 하려고 “다음에.”를 외치며 피했다. 자기식 화장법에 나는 거부감이 들었던 거다. 딸이 손가락으로 제 얼굴에 하는 건 괜찮은데 말이다.
“손가락으로 하는 게 어때서? 더 잘 발리는데!”
그날 화장을 맡긴 건, 더 이상 피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엄마는 이쁜데 화장을 못 해, 내가 잘해줄게.”
막내는 자기만 믿으라며 신나서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유치원 아이가 친구에게 화장해 주듯 열심이었다. 속눈썹도 집어서 올려주고, 마스카라도 발라줬다. 평소엔 잘 안 하는 화장이었다.
“엄마, 다 됐어. 거울 봐봐!”
딸은 내가 하는 화장보다 더 낫다며 흡족해했다.
“하얗게 떴구먼.”
나는 거울을 보며 말했다. 밀가루를 바른 듯 화장이 들떠있었다.
“아니야, 내 분이 엄마 것보다 좀 하얘서 그래.”
막내는 손으로 더 자연스럽게 해 주겠다며 또 손가락으로 펴 발라 주려 했다. 나는 10대 화장이라며 괜찮다고, 잘 됐다고 뿌리쳤다. 딸은 아쉬운 손을 내리며 분첩을 줬고 나는 덜 하얀 곳을 메우며 펴 발랐다.
나는 딸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들어, 화장한 얼굴을 ‘팡 팡팡’ 여러 장 찍었다.
“엄마, 그만 찍어도 돼.”
나는 딸이 해준 첫 번째 화장이라 기념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줌마 마음은 이런가, 여자 마음이 이런가?’
핸드폰을 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기념하고 싶은, 이런 기쁨이 있는데….
그동안 화장해 주려고 몇 번 다가왔던 딸을 피했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뀌고, 사진을 찍으며 미안한 마음도 사라지고 없었다.
*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생각이 난다. 루주로 볼을 동그랗게 그려서 연지, 곤지처럼 찍고 손으로 볼을 문지르지 않아서 귀엽게 보였던 기억. 깜박하고 빨간 루주를 문지르지 않았던 귀여운 화장법이 떠오른다.
그 모습처럼 딸이 화장하고, 때론 하얗게 뜬 얼굴로 괜찮냐고 물을 때 이쁘게 보이는 마음~~♡
딸은 화장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그 마음도 알아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