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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이의 만능솜

- 가려운 연근이의 눈

9월 18일

막내아들이 된 야옹이, 연근이는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머리에 씌운 깔때기를 뗐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눈을 비비더니, 눈 주위가 피부병같이 벌갰다. 동물병원에 가야 했다.

"깔때기 다시 씌워!"

동물병원에서 이제 떼도 된다는 깔때기를, 막내의 명령에 다시 씌웠다. 연근이는 싫은 듯 얼굴을 계속 흔들어댔다.



연근이를 데려오면서 막내는 한 달에 한 번 먹던 마라탕을 끊겠다고 말했다.

"연근이 때문에 비용이 좀 드니까,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사주는 마라탕은 끊을게. 먹고 싶으면 네 용돈으로 사 먹어."

막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막내가 마라탕 사 먹겠다고 조르지 않을까?’

지켜볼 일이다.


막내는 걱정이 돼서 포비돈을 찾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본 건지, 사람에게 바르는 포비돈을 묽게 타서 고양이에게 바르면 된다고 했다. 구급약 서랍에서 찾은 포비돈은 오래돼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꺼림칙했던 딸은 “약국에서 새로 사 올게!” 하며 나갔다. 근처 약국이라면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나간 지 30분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엄마, 약국이 다 문을 닫았어!"

"그럼 그냥 와."

"안 돼, 포비돈 사 와야 돼!"

뚝.

저녁 7시가 지나서인지 주변 약국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나는 딸이 8시 과외 수업에 늦을까 봐 걱정이 됐다.


그냥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감동받았어!"

"웬 뜬금없는 소리야? 무슨 일이야?"

"약국이 문을 닫아서 혹시나 하고 동물병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포비돈 솜 팩을 하나 주셨어. 돈도 안 받고!"

"어떻게?"

"원래는 진료 시간이 지나서 살 수 없는데, 내가 사정을 얘기하니까 그냥 주셨어. 이렇게 고마운 병원이 있다니!"

막내의 눈빛이 고마움으로 촉촉한 걸 느꼈다.

"그래, 정말 고마운 병원이네. 연근이 아프면 다음엔 그 병원으로 가야겠다."


집으로 돌아온 막내는 포비돈 솜이 들어 있는 팩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이거야! 이게 만능솜 이래. 연근이 잇몸에 상처가 나도 이 솜을 물고 있으면 낫는대."

막내는 핀셋으로 만능솜을 집어 깔때기를 쓴 연근이의 눈가에 조심스레 발라줬다. 연근이는 딸의 마음을 아는지, 눈을 감은 채 약솜을 피하지 않았다. 딸은 연근이를 낫게 하려는 마음 하나로 저녁 내내 약국을 찾아 헤매느라 지쳐 있었다.

"엄마, 오늘 과외 안 하면 안 돼?"

"약속이라 안 돼. 선생님이 변동이 있으면 수업 전날까지 알려 달라고 하셨잖아."

식은땀으로 축 늘어진 딸은 힘겹게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패드를 켜고 영상 과외를 준비하던 딸이 나를 향해 말했다.

"엄마, 나 15분밖에 안 늦었어."

"그래, 15분밖에 안 늦었네!"


수업을 안 받겠다고 떼를 쓸 줄 알았는데, 딸은 의외로 성숙했다. 15분 늦은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배려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고, 연근이를 위해 고군분투한 딸의 마음이 밉지 않고 사랑스러웠다. 조금 늦게 수업을 받는 딸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15분 늦었다는 불만은 잠시 스쳐간 감정이었고, 딸에 대한 감동은 오래 남았다.

딸이 얻어온 포비돈 솜은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준 만능솜이었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며칠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연근이 눈가에 포비돈 솜을 발라주자, 자주 찌푸리던 눈도 떠지고 긁던 버릇도 사라졌다. 벌겋게 달아올랐던 피부도 어느새 하얘졌다. 동물병원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연근이는 눈가의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딸의 사랑으로, 깨끗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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