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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페 Oct 23. 2022

아프니까 보이는 더 명확한 인간관계

나는 성공한 삶인 듯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나 백혈병이래!'라고 내가 엄마 아빠에게 도저히 말을 못 할 거 같았다 말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울기만 할거 같아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은 무언갈 대신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자기가 봐도 자식이 부모에게 백혈병이란 사실을 얘기하는 건 아닌 거 같았는지 알겠다고 했다 전화다는 얼굴 보고 직접 얘기하는 게 좋을 거 았다 입원기간도 기존 예상기간 7일에서 한 달로 급격하게 늘어나 버렸고 아무것도 없던 우리들이 '환자'와 '보호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집에서 짐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엄마도 며칠간 아이들 보기에는 본인의 집보다 우리 집이 낫다며 계속 우리 집에 있었어서 짐도 챙길 겸 병원을 나섰다.


 병실에서 띵가 놀고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의 병명을 듣자마자 본인이 자식을 잘못 낳은 거냐며 울었다고 했다 아들은 심장비대증에 딸은 백혈병이라니 그런 말을 할만했다 전혀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 그런 말을 한 게 속상했다 백혈병은 말 그대로 '교통사고'와도 같은 원인불명의 병이고 오빠의 심장병은 '친가'쪽 집안 내력이니 전혀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제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가기로 했다 계속 우리 집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차츰 조금씩 옮기기로 했다 아버님께는 또 어떻게 얘길 할지 고민이라고 면서 남편은 우리 집을 나와 아빠가 있는 친정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남편에게서 전화가 빨리 왔다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는데 남편이 버님한테 얘기하러 간다고 나왔을 때 엄마가 아빠에게 내가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전화해서 얘기했었나 보다 남편이 도착했을 땐 빠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남편에게 내가 인스턴트 음식만 먹어서 그런 거라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이에 남편은 '이제 와이프는 그런 거만 먹어야 합니다 아버님'이라고 했더니(검색해도 잘 몰랐던 때) 아빠는 당황해서 그러냐며 물었다고 했다 장인어른이 당황한 표정을 봤어야 했다며 내게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도 좀 웃기긴 했었다 인스턴트 때문에 백혈병 걸릴 거면 세상 사람들 아마 전부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희는 내 가족


 이제 친구들에게 얘기할 일만 남았 도저히 전화로 전달할 수 없었다 친구들 목소리만 들어도 말도 꺼내기 전에 눈물바다가 될 거만 같았다 그리고 위로도 안타까움도 견디기 힘들 거 같아서 '단톡'방에 최대한 밝게 적으려고 노력하며 전화받으면 울 거 같다고 긍정적이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니 응원 부탁한다고 적었다 이모티콘과 함께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적고 있음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이대로 메신저만 왔으면 덜 그랬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한 명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깜짝 놀랐다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는 전화에 친구 메신저에 들어가 받으면 울 거 같다고 나 괜찮다고 그랬


 일분도 전화 못하냐는, 마음이 찢어져 죽을 거 같다는 친구의 말에 졌던 나의 눈물샘은 다시 한번 더 폭발했고 끝내 전화는 받지 못했다 울고 있는지 답이 없는 그 친구에게 괜찮은 척 별거 아닌 척 카톡을 하고 있는데 다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두 번째 연락 온 이 친구는 내가 전화 못하겠다고 해서 메신저를 했고 너무 놀라서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졌다며 내 말에 맞장구치면서 마치 평소에 대화하듯이 대화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첫 번째 연락 온 친구는 충격을 받고 우는 거 같아서 두 번째 연락 온 친구에게 나 대신 전화를 해 진정시키는 것부탁했다   


 첫 번째 연락 온 친구도 아마 내가 처음 백혈병이란 단어를 듣고 옛날 티브이에서 변기 잡고 토하고 죽는 처럼 불치의 병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인터넷, 유튜브 등 찾아보니 완치 가능한 암이라고 실제로도 백혈병에 걸리고도 완치되어 잘 지내는 분들 많다는 거 보고 내게 꼭 다 나을 거라며 힘들어도 버티자고 꼭 건강해지자며 사랑한다고 얘기해줬다 세 번째 친구는 내가 잠든 사이 긴 장문의 메신저가 와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고 세상이 좋아지고 기술이 발달해서 치료법이 많이 좋아졌다며 완치 후기도 많더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도와주러 달려온다고 막연한 두려움보다 극복하는 방법을, 병에 대해 같이 공부하자고 메신저가  있었다


 솔직히 걱정했었다 사람이 힘들 때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했던가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봤었다 그래서 '혹시나'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그냥 별거 아니라고 얘길 했어야 했나 싶으면서도 이거는 숨기고 말고 할 문제가 니였어서 나 스스로 상처받지 않게 일부러 밝은 척한 것도 있었다 내 걱정이 무색하게 친구들은 나를 엄청 걱정해주었고 나 대신 백혈병에 대해 알아 봐주기도 하고 화를 내주기도 하고 울어주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 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진 게 너무너무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럴 일 없는 친구들인데 의심한 게 너무 미안했다 친구들과 다르게 나 먼저 살림하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부러운 것도 많았고 소외감도 느끼고 살도 찌고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 내 사람들을 의심했다 부끄러웠다 이런 친구들을 친구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부끄러우니까 마음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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