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보다 손으로 쓰는 글이 더 편하다. 모든 것은 변화하지만, 어떤 것은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 내 짧은 생 동안엔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업무 과중으로 인해 머리에 글감이 남지 않아 과거의 일기를 읽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맹목적이었던 날들과 마주한다는 건 꽤나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나는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변해버린 관계를 돌아봐도 아프지는 않다. 입 안이 조금 쓸 뿐이다.
손으로 쓰는 글이 더 편한 이유는, 정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자로 생성된 활자는 너무도 쉽게 지워진다. 여러 번 정제된 글에는 감정의 향만 남는다. 그나마도 금방 날아가버릴 잔향이다. 손으로 쓴 글을 읽으면 그게 언제의 일이든 감정이 물씬 몰려오는 것과는 꽤 다르다. 물씬이라는 단어가 탐탁지 않다. 그보다는 갑자기 나의 위상이 달라지는 일과 비슷하다. 분명 일상의 어느 공간에 있던 내가, 갑자기 감정으로 채운 수영장에 풍덩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디까지나 수영장이다. 아마 예전의 나는 감정의 해일, 호수, 스콜 그것이 무엇이든 내 의지로 몸을 말릴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었을 테니까. 일기를 읽는 나는 그저 페이지를 넘겨 물기가 남은 몸으로 수영장에서 걸어 나가면 될 일이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지금의 글은 일부러 수기의 느낌을 내고자 노력했다.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조금씩 지우고, 단어를 고르는 과정은 생략할 수 없었다. 만년필을 쥔 손이 의식을 토해내듯 막힘없이 미끄러진다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은 무의식적으로 백스페이스 키를 연타한다. 도구의 쓰임에 따라 행동과 사고가 달라지는 게 재미있다. 나의 두뇌도 성격도 그대로인데 말이다.
“애니웨이” 수업 시의 말버릇이나, 글에서 쓰고 싶을 정도로 편리하다. 꽤나 많은 관계가 변했고 변하고 있다. 아주 공고하게 다져진 줄 알았던 사이도 사소한 흠집 하나에 멀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너질 때 나를 도닥이려 달려올 자들이 있다. 내 대신 온 힘을 다해 날 지탱하려 할 사람들. 그게 아니더라도 내 대신 소리치며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이들.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나?’라고 적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이가 사랑스러우나,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영속하여 나를 사랑할 거라 여기지 않는다. 모든 감정과 관계는 진폭을 가지고 움직인다. 나도 그들도 모두가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랑은 나의 천성이 나니! 그냥 살아가면 그냥 사랑하게 된다. 넘쳐나는 사랑이 아니라, 아주 미약하게 존재하는 사랑.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게 고여있는, 언제라도 마를 것만 같은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만큼은 남아있는 다정이란.
사랑을 흘린 곳에 딱지가 앉는다. 피가 멈추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린 마음을 달랜다. 매일같이 지혈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