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피규어를 샀다. 아무도 나의 취향을 이해해주지 않았지만 의외의 인물이 너무 예쁘다며 비명을 지른다. 엄마다. 동생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어디가 예쁜지 모르겠다던 피규어를 우리 엄마가 좋아한다. 내 눈에만 예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서운했는지 호들갑 떠는 엄마를 보자 괜히 신이 난다.
“이런 건 어디서 사?” 엄마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근처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고 언제 한 번 같이 가자니까
“엄마랑 꼭 가자 너무 예쁘다!” 라며 눈을 빛낸다. 에라 모르겠다. 맨 왼쪽 피규어를 엄마에게 선물하고 지금 당장 같이 가자고 이야기했다. 엄마랑 연초부터 피규어 매장을 돌게 될 줄은 몰랐다. 결과적으로 엄마는 랜덤 뽑기 황금손이었고, 본인이 갖고 싶어 했던 아이를 한 방에 뽑았으며, (은하수 머리를 한 꼬마 요정 피규어) 내게도 피규어를 세 개나 투척해 주었다.
엄마가 내 피규어를 예쁘다고 말해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지, 나이가 들어도 피규어가 예뻐 보일 수 있지'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왜 당연히 엄마가 피규어를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구나. 여전히 아이같이 기뻐할 수 있구나. 왜인지 죄책감마저 든다. 만으로 서른 하나가 된 딸과 오십 대인 엄마는 이제부터 의외의 취미를 공유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팝마트에 같이 가야지. 물건을 사자마자 뜯으러 가자고, 계단에 앉아서 같이 피규어를 뜯은 그 몇 분이 길이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오히려 나이가 든 이후에 나도 엄마도 순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이전처럼 소리치거나 서로를 헐뜯거나 하지 않고 즐거움을 나누려 노력한다. 귀여운 인형을 보며 까르르하는 모녀, 시간이 지날수록 꽤 괜찮은 울림이 된다.
돌아가는 길에 엄마 몰래 피규어를 세 개 더 주문했다. 두 개는 내 거, 하나는 엄마 거. 갖고 싶어 하셨는데 매장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아 못 샀던 시리즈다. 엄마한테 골라서 뜯게 할지, 미리 뜯어서 엄마 취향인 아이를 찾아줄지 고민이다. 또 엄마가 안 해본 게 뭐가 있을까? 돈을 모아 휴양지로 해외여행을 가야겠다. 또 뭐가 있지, 같이 록 페스티벌에 가는 것도 좋겠다. 대신 좀 쉬엄쉬엄 놀 수 있는 페스티벌로... 아무래도 펜타포트나 부산 락페는 좀 빡셀 것 같다. 아직도 엄마랑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많이 남았다니 인생이야 말로 랜덤 피규어 뽑기일지도 모른다. 이전까지는 꽝이 더 많은 삶이었으니, 이제 엄마와 나 사이엔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더 많으리라 믿는다. 그냥 별 것 아닌 일로도 설렘이 차올라서, 그게 참 기분이 좋아서 글로써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