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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Oct 22. 2022

술집에서도 인생의 방향정도는 찾을 수 있잖아요?

대충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제는 건강 때문에 술을 멀리하고 있지만, 한 때는 나도 술을 꽤 잘 마시곤 했다. 그당시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가 하면, 슬플 때 술을 마심으로써 술이 싫어질까봐 늘 기쁠 때에만 술을 마셨다. 때로는 술을 마셔서 더 기뻐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술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 내가 술에게 배운 거라곤 숙취와 위염뿐인 것 같다. 아마 저런 말을 한 사람들도 사실 술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서 인생을 배웠을 거다. 따지고 보면, 나는 술자리를 함께한 사람들보다 술집 그 자체에서 인생을 고민했던 것도 같다. 내가 사랑하던 몇몇 술집은 내게 ‘대충 살아도 괜찮을….걸?’이라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오늘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웨어아위>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오늘도 할 일은 많지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N년의 삶 속에서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온 건지는 모를 일이다. 전부 우연의 산물일뿐. 삽화를 그리는 소설 작가가 되고자했던 어린이는 역사 전공자가 되었다가, 교육 전공에 발을 담구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간혹 나는, 내가 무지개빛으로 된 진창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 걸음 옮기기가 너무 버겁지만, 적어도 알록달록 색칠되어 있으니 구경할 건 좀 있다며, 남들은 곧 잘 내 삶을 멋지다 생각하겠지만, 나의 발버둥 때문에 이 색들이 모조리 섞여버리면 칠흑같은 어둠이 남지 않을까 하면서.

  사방이 몽롱한 진흙탕 속에서 나는 아직도 내가 어디에 발 붙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다분히 데카르트적이다. 아닌가? 불교적인가?


  서울 어딘가의 다소 깊은 자리에 무지개빛 조명이 은은하게 흐르는 위스키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곳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어쨌든 있다. 높낮이가 전부 다른 자리들, 질감이 다른 의자, 노래와 맞지 않는 빔프로젝터 영상, 이런 이상한 가게의 사장님은 sk를 퇴사하고 술집을 차린 걸 후회하는 사람이다. 본인조차 본인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서 이런 상호명을 붙인 걸지도 모른다.(사실은 체인이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쓰레기와 웃으며 술을 마셨다. 출장가는 택시 안에서 전화로 이별을 통보한 전애인에게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가르쳤다. 인생은 정말 어찌될  모르는 것이다. 내가 데려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찌될    없지만, 그래도 위스키 맛은 변함 없을 거고, 무지개  진창 속에서의 순간 순간은 항상 즐거울 거다.


<비건을 위한 야채 안주지만 마요네즈가 나온단다: 더 바>

  

  원래는 운동권 바였지만 지금은 퀴어프렌들리 바로 더 유명한 시끌벅적한 술집이다. 아마 이곳에 오는 퀴어들은 여기가 운동권 바라는 것도 모를 수 있다. 80년대 운동권의 투박한 감성을 증명하듯 시뻘건 간판에 The bar가 기본 폰트로 적힌 이곳은 뭐가 됐든 세대를 초월하여 시끄러운 좌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바로 그 술집! 이런 이름을 지을 때 사장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가지각색의 사람이 모이는 이곳의 명성에 걸맞게 술은 온갖 종류가 구비되어있으며, 안주도 통일성 없다.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함에도 더 바를 종종 이용하곤 하는데 이유 하나는 웨어아위 옆에 있다는 것이며, 또 다른 이유는 야채 한 접시라는 안주가 있기 때문이다. 메뉴판에 적힌 멘트가 웃긴데 "시대적 감성에 발맞춰서 준비해보았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야채 한 접시를 시킬 시 엄청 큰 접시에 당근, 샐러리, 오이가 앙증맞은 오뚜기 마요네즈와 함께 나온다. 요즘 트랜드가 채식이라고 하니 알바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넣었는데, 마요네즈가 채식이 아닌 건 모르는 7080세대의 사장님스럽다. 어차피 나는 비건도 아니고, 샐러리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걸 즐기니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우당탕탕 B급 감성을 즐기는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나는 내 일상이 언제나 B급처럼만 흘러갔으면 좋겠다. 묘하게 비틀린 상황 속에서 언제나 우스운 사건이 터지고, 신랄한 듯하나 사실은 인간미 넘치는 유머 속에서 모두가 목적지를 향해 우당탕탕 굴러갔으면 좋겠다. A급은 너무 진지하고 C급은 너무 처량하니까, 딱 B급 정도가 알맞다. 글쎄, 지금의 인생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C+와 B-사이? 대략 그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B급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런 의미로 이런 모순적인 바에서 건강을 챙기겠다며 야채 안주와 독한 술을 마시는 모지리같은 내 모습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어째서 망하지 않는 거야: 아지트>


  인생의 진리를 그대로 담은 듯 한 술집이 있다. 기본 안주로 과자를 마음껏 퍼 먹을 수 있으며, 원하는 노래를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는 작은 바. 맥주와 와인과 위스키를 소량씩 구비해두어 다양하진 않더라도 모자르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곳.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화장실도 깨끗한 이곳을 찾는 이유는 사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의 신촌에서조차 늘 손님 한 명 없는 이 가게는, 방문할 때마다 "와 아직도 안망했어...?"를 절로 되뇌이게 하는 신기한 곳이다. 인생이 쉽게 망하지 않더라도 가게는 쉽게 망할 법도 한데,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걸 보노라면 내심 여기가 내 인생의 '아지트' 중 한 곳이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다. 어쩌면 삶은 우리가 일궈놓은 하나의 아지트이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우리를 지탱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내가 무너지기 전 까지만 유지되는 영역일지라도, 두 다리로 버틸 수만 있다면 진한 블루스락과 위스키가 언제나 우리를 반길테니까 말이다.



  어디 하나 어울리는 것 없는 인테리어와 음악, 주종과 안주, 내일이면 망할 것 같았는데 망하지 않은 술집들을 생각하면 인생은 좀처럼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이렇게나 대충 대충 살고있는 걸지도 모른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온다면 그 때에나 움직이겠지. 그러니까 아마, 대충 살아도 괜찮을……걸? 아니면 말고. 대충 살아서 망할 것 같으면 술이든 차든 물이든, 그저 한 잔의 액체를 목으로 부어 털어내버리면 그만이다. 망한 자리에 새 삶이 차오르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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