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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Feb 08. 2024

내 거대한 두 고양이들

  무지개 다리를 건넌 다복이와, 지금 등 뒤에서 눈 키스를 날리는 둥절이. 내겐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구석이 없는 둘, 오늘은 왠지 두 녀석을 함께 추억하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기 전쯤, 아버지가 적적하니 동물을 키우자고 했다. 애가 셋씩이나 있는 집에서 뭐가 적적했는지 그땐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정을 주지 않은 자식들이 커서는 살갑지 않으니 외로웠던 게지. 동물이라도 데려오면 집안에 웃음소리가 들릴 줄 알았나 보다. 동생들은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고 어릴 적부터 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던 나는 무심히 '개는 안돼. 산책시킬 시간 없어. 고양이라면 고려할게'라고 말을 던졌다. 왜 반대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한평생 가입할 줄도 몰랐던 고양이 구조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구조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십몇 페이지씩 읽었다. 그렇게 많은 동물이 매일같이 버려지고 다치는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3~4개월 추정의 작은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리찌왕자였다. 어미묘와 새끼묘들이 한꺼번에 구조된 케이스였는데, 구조자가 명품 브랜드에서 이름을 따 붙였다. 리찌왕자의 누나는 샤넬공주였으니 말 다했지. 이미 입양이 약속된 아이라 하여, 다른 형제를 데려오기로 하고 아버지와 둘째가 구조자의 집을 방문했다. 먼 곳에서 부녀가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셨는지, 리찌왕자를 그냥 데려가시라며, 원래 입양하기로 하셨던 분껜 자기가 양해를 구하겠다고, 부녀가 참 보기 좋다는 말과 함께 새끼 냥이를 안겨주셨다. 오히려 그러지 않았던 편이 리찌에겐 더 나았을 거다. 불행한 우리 가정에 복을 가져다주리라 믿으며 리찌는 그날부로 다복이가 되었다.


  다복이는 겁도 없고 사람도 좋아했다. 식탐도 엄청나서 원래 고양이가 저렇게 많이 먹나 싶었다. 놀아주면 신나서 구강호흡을 할 때까지 뛰어다녔고, 처음 보는 성인 남자 앞에서도 배를 까 뒤집었다. 나와 동생이 이 애를 사랑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고양이를 공부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던 우리와 달리, 아버지와 막내는 그러지 않았다. 놀랍지도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을 데려온 자들이란 대개 그런 법이니까.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놓고는 온정하나 주지 않던 사람이다. 그가 동물이라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 막내는 그런 아비를 꼭 빼닮은 아이었다. 둘 다 외로운 본인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호의를 베풀길 원하면서 자신들은 폭군처럼 굴곤 했다. 고양이는 예민한 동물이기에 둔해 빠진 나의 다복이조차 둘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꼴을 견딜 수 없어서, 죄 없는 다복이가 괴롭힘 당할 이유가 없어서 나는 고양이와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사실 다복이가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끈적이는 불행을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담배 냄새와 폭언, 고성방가가 난무하던 넓은 집에서 5평짜리 원룸으로 도망쳐 고양이와 둘째와 나는 새 가정을 차렸다. 다음번엔 다복이를 위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하며 정말 10평짜리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다음엔 아주 아주 커다란 원목 캣타워를 갖춘 투룸으로까지 이사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복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켜가며 이제 행복해질 준비가 됐는데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지탱해주며 온몸으로 나의 행복이 되어준 존재가 떠나는 기분이 무엇인지 감히 알고 싶지 않았다. 겪지 않아도 될 감정을 또 그렇게 습득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애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애는 생의 전부를 내게 주었는데, 다복이의 시선은 늘 나를 향했고, 다복이의 세계는 온통 나였는데, 나는 왜 나조차 책임지지 못한 때 한 생명을 무턱대고 데리고 왔는가. 아직도 후회하지만 동시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복이를 만난 건 내 생의 최대의 행운이었고, 영원히 빛바래지 않을 기억이자 시절이고 추억이니까. 내 세계는 다복이로 인해 변화하고 성장해 나갔다. 다만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기도 아쉬운 무언가의 감정이 남아 여전히 눈물짓게 하는 것이다. 다복이에게 못 해준 것들에 대해, 이제는 해 줄 수 있음에도 볼 수 없음에 대해, 그 진한 상실감과 그리움에 대해, 그가 내게 남겨준 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다복이는 바보 같고 뚱뚱하고 느긋하고 식탐 많은 아이였다. 내가 공부를 하면 자기와 함께 있자고 책 위에 발라당 누워버리는 그런 고양이, 가끔은 이불 속에 들어와 함께 낮잠을 잤다. 다복이와 함께 이불 위에서 맞는 햇살은 인생에서 가장 따사로운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때, 임시보호로 데려온 둥절이가 자리를 잡아버렸다. 다복이와 다르게 예민하고 겁 많고 사람을 무서워해서 처음 임보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손바닥만 한 놈이 동물 병원의 전화기도 떼려 부수고 정말 악령이라도 들린 건가 싶었으니까. 이 애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시는 상실을 맛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아이에게 더 큰 풍요와 행복을 주리란 걸 알아버렸으니까 말이다. 입양처가 구해지지 않아 함께 한 1년의 시간 속에서, 동생이 어느 날 울먹이며 말했다. "나 둥절이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사실은 나도 그랬다. 이름을 아는 데 1년이 걸린 다복이와 달리, 둥절이라는 호칭을 일주일 만에 외워버려 이름도 바꿀 수 없었던 둥절이. 빠르게 정을 주려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절대는 정을 주지 않으리라 노력한 나. 불행이 걷잡을 수 없던 시절과 이제 좀 숨이 트이는 요즘. 뭐 하나 같은 게 하나 없다.


  둥절이는 겁이 많지만 다복이보다 더 질투가 많고 끊임없는 손길을 요구한다. 잘 때는 따로 다른 곳에서 잠을 자고 절대 상자에 들어가지 않는다. 배를 만져달라고 늘 발라당 누웠던 다복이와 달리 배를 만지면 슬쩍 발로 손을 밀어내는 둥절이. 캣잎에 시큰둥하던 다복이와 캣잎을 아주 좋아하는 둥절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점투성이 일까? 다복이는 내가 뭘 하든 따라다녔지만 둥절이는 멀리서 바라보다 포기하고 자기 자리로 가곤 한다. 둥절이는 밥을 먹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도망간다. 식탐이 있는 편이지만 다복이에 비하면 양반 수준이다. 거어어어대 고양이었던 다복이와, 큰 고양이 정도인 둥절이. 그래도 이제는 좀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두 아이가 모두 없을 미래를 상상하면 숨이 턱 막히고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일뿐이다. 그래봐야, 이 아이들이 내게 퍼붓는 애정에 비해서는 택도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 내 곁에 머물렀으면하는 꿈을 꾼다. 이제 둥절이의 엉덩이를 두드려 주어야 한다. 두 고양이를 추억하려 했지만 어째 나에 대한 고해밖에 만들지 못한 것 같아 민망함을 느끼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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