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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May 12. 2023

직업에 대한 고찰

  몇 번 언급했지만 내 직업은 교사이다. 학생 하나 때문에 속상해서 나락까지 다녀왔다가, 또 학생 하나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탄다. 직업을 직업으로만 여기는 일이 내게는 퍽 어렵다. 많은 이들이 내게 마음을 쏟지 않아야 가늘고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러려 했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되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 순간을 몰입하여 살아가는 중인데,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온 애정으로 발 끝부터 젖어 갔는데, 뭘 어떡해야 하나? 내가 수십의 아이들에게 시선을 맞출 때 그 애들은 오롯이 나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지 않나?


  하루에도 몇십 번은 이 짓거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을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쩌면 좋지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내가 크게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난다. 매너리즘은 아마도 괜찮다. 어차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난 금방 질려할 테니까. 그것 보다 아이들에게 상처받아서 그들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될까 봐 그건 조금 무섭다. 내가 끝까지 지금의 애정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어차피 그들의 삶에 아주 작게 지나쳐 갈 인간인데,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만큼 아이들도 나를 기억할까?


  당장 지금도 이 애들이 사랑스러워서 견디기 어렵다. 정말 냅다 전부 깨물어 으스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예쁜 아이들인데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결국은 ”오늘도 너무 멋졌어. 최고예요. 즐겁게 하루 보내고요. 사랑해“ 정도로 종례를 마친다.


  이 아이들의 반짝이는 한 페이지에 내가 단 한 줄이라도 긍정적으로 남을 수 있다면 모자람 없는 인생이겠다. 지금이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게 사랑받으려 하고, 내가 마치 그들의 아이돌인 것처럼 여겨주지만 그들은 앞으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을 거다. 결국은 내가 그들의 인생에서 빛바랜 엑스트라로 사라질 것을 안다.


  소망이 있다면, 그래도 내가 나쁘지 않은 어른이길, 조금이라도 상처 주었다면 금방 아물어 그 자리에 새살이 예쁘게 차올랐길, 언젠가 돌이켜 보았을 때 내 이름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래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지‘라고 해주길. 다만 한 명이라도 그래주길. 그렇다면 내가 지금 그러안은 수많은 직업적 회의와 걱정과 매너리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이겨낼 훌륭한 이유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음을 이렇게 티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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