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차중 3

by 레마누

‘만약에 아내가 잘못을 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태가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인상을 썼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자꾸 생각이 났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경태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요즘 세상은 이혼율이 높고, 기혼자 중 50%는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정신 빠진 사람들의 불장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사람들의 심심풀이 같은 것이었다. 먹고사는데 바쁘고, 아이들이 장마 끝난 나무들처럼 쑥쑥 커가는데 무슨 정신으로 바람을 피운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람도 돈과 시간이 있어야 피는 거고, 사랑도 여유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책임질 일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옆길로 새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동생이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의 상대는 시청에서 작은 커피숍을 하는 누이의 단골손님이었다. 누이는 가끔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볼일을 봤다. 아내가 아이들의 학원비라도 보태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올케가 생각보다 싹싹하고 손님들한테 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경태는 그러려니 했다. 내게 웃듯이 타인에게도 똑같이 웃었을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줄 마음이란 게 남아있었다는 것도, 생각보다 오랫동안 만났다는 사실도 경태를 분노하게 했다. 하지만 참았다.


거동 못 하는 어머니가, 엄마보다 더 큰 네 명의 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내의 외로움, 눈물, 텅 빈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살았다. 외롭냐? 나도 외롭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도 참고 사니까 너도 끽소리 하지 마.라고 서로 어깃장을 놓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내가 잘못을 빌었고, 경태는 용서했다.


오십이 넘자 여기저기서 흉흉한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 지인이나 친구의 돌연사나 병사가 줄을 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빈번해졌다. 대화 주제도 바뀌어서 정치, 경제보다는 어디가 아프고,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불행이 눈앞에 있었다. 이젠 그런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억울할 건 없었다.


경태는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다 제명에 죽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혼 소식도 빠지지 않았다. 기혼 남자의 외도는 바람이며, 여자는 사랑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허한 마음에 잠깐 한눈을 팔다가도 조강지처에게 돌아온다. 바람이란 그런 것이다. 매일 불어대는 바람이 없듯이 현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 그걸 용인하고 받아주면 평생 살고, 용서받지 못하면 이혼이다. 반면 여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에 목숨을 건다.


경태의 외숙모가 그랬다. 삼 남매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 것 같던 외숙모는 막내아들이 10살이 되던 해 집을 나갔다. 5살 어린 직원과 함께였다. 경태는 세련되고 우아했던 외숙모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식당 사장이었던 외삼촌은 그 후 술만 마시다 쓰러졌고, 6년 동안 누워 있다 돌아가셨다. 지금 경태 나이와 비슷한 시기였다. 외숙모는 외삼촌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한번 돌아선 여자는 무섭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느낌이 싸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아내가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다. 아내는 립스틱을 바르지도 않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갔다. 경태는 피우던 담배를 끄면서 아내의 차 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밖으로 나가 아내의 차를 따라갔다. 근처에 친구가 와 있다고 했는데 아내의 차는 시내를 벗어났다. 해안도로 전망대에 도착한 아내가 시동을 끄자 누군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차에 타는 게 보였다. 핸들을 잡은 경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서둘러 주차하고 아내의 차로 뛰어 들어갔다. 막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경태는 운전석의 문을 열고 아내의 몸을 잡아끌었다. 생각보다 순순히 나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내는 그대로 돌이 된 것 같았다. 주먹으로 아내의 얼굴과 몸을 때리는데, 조수석에서 남자가 나와 경태의 등을 잡았다. 경태가 몸을 돌렸다. 너냐. 너구나. 개새꺄. 돌이 된 아내를 뒤로 하고, 경태는 남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경태보다 키가 큰 남자가 휘청거렸다. 경태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주먹질을 했다. 어렸을 때 구슬치기하다 억울하게 구슬을 뺏겼을 때처럼, 지우개를 빌려 가서 안 돌려줬던 얄미운 친구를 때리듯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추위도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태는 아이처럼 남자의 몸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온 경태는 아내의 물건들을 현관 밖으로 내던졌다. 손등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쓰렸다. 자다 깬 아이들이 말렸다. 경태는 소주 열 병은 마신 것처럼 휘청거렸다. 말이 흐리게 나왔다. 모든 것이 분명했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의 차가 며칠째 집 근처에 세워져 있다.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집에 이사 온 건 순전히 아내의 고집이었다. 학교와 학원이 많고,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곳이 좋다고 했다. 경태는 무리해서라도 큰 평수의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었다. 타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현관에 식구들만 아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단단한 문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준다. 일주일에 삼사일은 육지에 나가야 하는 경태에게 가족들의 안전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한동네에 오래 살다 보면 여자들만 있는 집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넷째가 태어나고 경태는 은행을 돌아다니며 대출을 알아봤다. 혼자 사는 어머님의 건강도 문제였다.


수십 년 동안 오일장 좌판에서 쌀을 팔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 무릎이 꺾였다. 엉덩이가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입버릇 같은 건 줄 알았다. 정형외과에서 수술 시기를 놓쳤다는 말을 들었다. 금방 태어난 사슴 새끼처럼 어머니는 서툴게 걸었다. 그마저도 점점 어색해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은 멀쩡한데 종일 누워만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경태는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다. 아내도 동감했다. 경태는 아파트 명의는 아내 앞으로 할 예정이었다.


가장 좋아할 줄 알았던 아내가 반대했다. 아파트는 답답하다는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아내가 말했다. 무리해서 아파트에 들어가면 대출금은 어떻게 갚을 것이냐고 되묻는 아내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며 경태는 아내의 심중을 헤아렸다. 아내는 셋째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이층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오래전 유복했던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은 집이었다. 일 층 거실에서 이 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보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파트의 절반 가격이었다. 어머님이 숨겼던 통장을 꺼냈다. 경태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대신 경태 명의로 집을 사라는 어머님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내와 공동명의로 하고 이사했다. 아내는 어머님께 안방을 내드렸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듯이 집터도 집주인과 궁합이 있다. 경태는 이사하고 난 후 벌리는 일마다 누가 도와주는 것 같았다. 일은 술술 풀렸고, 일거리가 계속 들어왔다. 몸을 쓰는 일이라 고되긴 했지만, 육지에 한 번 나갔다 오면 아이들 한 달 학원비는 걱정 없었다. 경태는 이만하면 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일에 매진했다.


아내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머리를 잘랐는지, 파마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돈을 입금하고 나면 담배 맛이 좋았다.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일하는 게 힘들어진 경태는 술도 점점 줄여갔다. 무엇보다 마흔이 넘어 낳은 넷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거동 못 하는 어머니가 걸리긴 했지만, 노환은 신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저 편안히 계시다 가면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는 순간 아내가 찬물을 끼얹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과 몇 번 술을 마셨다. 경태가 결혼할 때 군대에 있었던 친구들이 결혼하고 부모가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한다. 원피스를 입고 화장한 친구 와이프와 아내는 친하게 지냈다. 아내는 모임에 나온 여자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다. 모임에 가면 아내의 기미가 유독 검게 보였다. 언젠가 경태는 아내에게 무슨 자신감으로 화장을 안 하는 거냐고 말을 쏘았다. 마음은 안 그런데 말이 자꾸 날카로워졌다. 가끔은 경태도 놀랄 때가 있다. 입 안의 사탕처럼 굴지는 못해도 궂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오일장에서 평생을 바친 어머니는 입이 거칠었다.


경태가 하는 말은 전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었다. 말이 빠르고 목청 좋고 비아냥거리기 잘하는 어머니의 말투는 경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경태는 생각 없이 쏟아붓고 바로 후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아내는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닌가? 모를까? 모를 수가 있나? 어떻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확신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분명한 건 경태가 했던 행동들을 떠올릴수록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못 견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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