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거꾸는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루룩 가슴을 쓸어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히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 본 키 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하는 것도 다 걷혀
마치 이즈음이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동백 기진하여 땀으로 곤두박질칠 때
그들도 즐거이 그러하리라는 듯
즐거워라 거꾸로 가는 생은
예기치 않게 거꾸로 흐르는 스위치백 *철로,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강릉 가는 기차가 미끄러지며 고갯마루를 한 순간 밀어 올리네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지네
*기차가 비탈길을 통과하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지그재그로 반복하는 선로
나는 조숙한 아이였다. 책을 통해 세상을 들여봤다. 16살에 세상을 다 아는 듯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스무 살에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서른이 되면 죽기로 결심했다. 마흔이 되자 세상이 두려워졌고 오십이 다가오자 부끄러운 게 많아졌다. 시인도 그런 내 마음과 같았을까?
서른이면 세상을 알 줄 알았는데, 서른도 아이였다. 마흔에도 유혹에 흔들리고 때로는 넘어갔다. 오십이 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데 지금처럼 살다 보면 그것도 아닐 것 같다.
인생이 대나무 마디처럼 굴곡마다 표시가 나는 선명한 것인 줄 알았다. 올라갈 때마다 버팀목이 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주름과 흰머리가 소리 없이 생겨나듯 인생은 조용히 흘러가는 것이었다. 분명하지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생. 거꾸로 가는 인생.
친정아빠는 몇 달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엄마 없는 자리에 낯선 여자가 있다. 속이 문드러져도 아빠 생각하면서 참았다. 참다 참다 한 마디 했더니 그게 아빠 가슴에 박혔나 부다. 성질이 불같은 우리 아빠,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우리 아빠가 내 얼굴 보기 싫어 돌아 앉았다. 예전 같으면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일이었다.
사탕을 사고 가야 하나? 어떡하나? 나도 이제 달래줄 힘이 없다.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울 아빠 아기되면 어떡하나.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앞으로 가는 줄만 알았던 인생이 어느 순간 거꾸로 가고 있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때 즈음인 것도 같다. 노을 지는 하늘이 한없이 슬픈 날이었던 것도 같다.
브런치글을 뒤적이다 이 글을 발견했다. 2년 전에 쓴 글이다. 우리 집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였으면 울고 불고 난리 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느라 마음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을.
아빠의 일은 아빠가 치르는 인생의 계산서라는 것을.
모르고 살 때는 나에게 찾아온 불행 때문에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하필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고 억울해했다. 고통을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고통 없이 일이 술술 풀리기를 바랐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우주의 대의지에 따라서 일어났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겪는 일이 우주적 대의지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생긴다는 사실은 고통이 삶의 본질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 이렇게 세상 일이 항상 내 뜻대로 일어나지 않고, 고통이 삶의 본질임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지간한 고통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삶과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1)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친다. 상황도 내가 예상한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단지 내 마음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력도 능력도 없으면서 단지 큰 딸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문제를 껴안으려고 했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속이 문드러져도
하나도 놓지 않고 다 끌고 가려고 했다.
나를 버려서라도 살리려 했다.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큰 딸이니까,
큰 언니니까,
너는 착하니까.
네가 아니면 누가 하니.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렸다. 고통스러웠다. 착한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착하게 살았더니 고통만 더해졌다.
고통과 착함을 벗어던진다.
고통은 고통스러운 대로 살아간다.
착함은 선함으로 바꾼다.
할 말은 하고, 할 일만 하면서 나를 돌본다.
어린아이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좋으면 깔깔거리고, 슬프면 엉엉 울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만 보며 살기로 했다. 그 안에서 만나는 고통과 인사하며, 그렇게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다. 한 번쯤은 나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 정말 착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