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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이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 OST>

by 레마누

돌덩이

Hit me harder Make me strong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테니까

거세게 때려봐

네 손만 다칠 테니까

나를 봐

끄떡없어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이야

똑똑히 봐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감당할 수 없게 벅찬 이 세상

유독 내게만 더 모진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아픔이 곧 나였지

시들고 저무는

그런 세상 이치에 날 가두려 하지 마

틀려도 괜찮아

이 삶은 내가 사니까

나를 봐

끄떡없어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이야

똑똑히 봐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

오직 하나뿐인 나의 길

내 전부를 내걸고서 Hey

걸어가

계속해서

부딪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거야

언젠가

이 길 끝에 서서

나도 한 번 크게 한 번

목이 터져라 울 수 있을 때까지




아빠에게는 로망이 있었다. 사윗감이 찾아오면 술을 진탕 먹이고,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로망, 사위가 생기면 같이 술을 마시겠다는 로망, 아빠는 딸만 셋인 집에서 유일한 남자였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외로웠을 듯하다. 아빠가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아들이 크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사위를 찾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한 아빠는 큰 딸인 내가 얼른 시집가기를 원했다. 딸이 결혼을 해야 사위가 생기고, 사위가 들어오면 술벗도 생긴다.


아빠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아빠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조용하고 강력한 엄마였다. 엄마는 평생 아빠의 술버릇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딸들에게는 절대 술 마시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부탁을 넘어 명령이었다. 간청이자 소망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 사위 세 명은 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에 제일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빠의 기대치를 확 떨어뜨렸던 큰 딸의 사위 즉 내 남편이다.


결혼승낙을 받으러 온 날 남편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아빠와 작은 아빠, 외삼촌은 동네에서 유명한 술고래였다. 남편은 그들 사이에 앉아 그들이 주는 술 한잔씩을 받아마셨는데, 내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 모습에 흡족해하며 결혼을 허락했다. 그다음부터 남편이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즉 남편의 장모가 남편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우리 사위한테 술 주지 마"하면서 흑장미를 자처했다.


남편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6시 모임에 가면 9시에 들어온다. 문제는 그걸 나한테도 강요한다는 것이다. 나 하는 거 봤지? 그러니까 너도 알아서 잘해. 이런 식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자유가 그리워졌다. 자유를 목놓아 외친다.


남편이 집에 있어도 너는 네 할 일을 하면 되지 않냐.라고 한다면 할 말이 있다. 나는 아마추어 작가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프로의식을 갖고 쓴다. 초집중을 한다. 딱 중요한 부분을 쓸 때 남편이 부른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기가막힌 타이밍에 치고 들어온다. 집중력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자꾸 남편에게 언제 나가냐고 묻는다.


얼마 전 일이다. 남편이 모임에 갔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문득 서문탁의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 술을 마시면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걸 좋아한다. ) 티브이를 켜고 유튜브를 찾았는데 서문탁의 '돌덩이'가 있었다.



서문탁이 누구인가? 가창력의 끝판왕. 락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락커다. 목청 좋을 때 노래방 가면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서문탁의 '사슬"을 목놓아 불렀다. '사슬'은 내 인생곡이자 최애곡이다. 그런데 서문탁이 부르는 돌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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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속까지 다 뚫어버리는 그녀들의 힘차고 멋진 가창력.(속 답답할 보거나 따라 부르면 가스활명수보다 소화가 잘 됩니다.^^) 돌덩이가 되어 노래를 부른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큰 북소리가 들렸다. 가슴을 치는 뭔가가 있었다.



"엄마, 나는 돌덩이라는 노래가 이렇게 멋있는 노래인 줄 몰랐어."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보고 있다.

"그러게 나도 몰랐네."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에 전율하며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시라는 게 무엇일까?

시를 쓰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까? 아닐까?


"돌덩이"의 가사를 옮겨 쓰며 이 자체가 시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다. 누구나 가슴에 돌덩이 하나쯤은 안고 산다. 그것은 나를 짓누를 수도 있고 버텨서 살아가게 할 힘이 되기도 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걷기 위해서는 단단해져야 한다. 주어진 것에 불평하고 체념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안고 가자. 돌덩이가 되자.



코로나 전에 큰딸의 친구 엄마들과 노래방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노래방에서 "사슬"을 예약하고 자신 있게 마이크를 잡았는데


헐...


이게 뭘까?


박자는 마음과 따로 놀고, 목소리는 목 안에서 맴돌 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때 소찬휘노래를 세 곡 연속 불러도 쌩쌩했던 내 목은 GG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 효리 엄마가 마이크를 잡고, 나와 눈을 맞추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제법 노래 같은 소리가 났다. (효리엄마는 나보다 8살이 어리다. 아~~ 무심한 세월이여!!) 속으로 효리엄마에게 '꼭 은혜를 갚으리라. 네가 내 은인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 노래방을 못 간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서문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알고 있는 건 내가 점점 단단한 돌덩이가 되고 있다는 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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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남편이 모진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부스럭대는 것이 못마땅한지 제대로 못할 거면 때려치우라는 말을 한다. 예전 같으면 아파서라도 그만두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단단한 돌덩이가 되었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강해진다. 때린 사람의 손만 아플 뿐이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쓰러져도 무릎 끓지 않는다. 나는 일어어서 다시 걷는다. 언젠가 광야에서 큰 소리로 외칠 때까지 묵묵히 나의 길을 간다. '돌덩이'부르러 노래방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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