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에 대한 짧은 이야기
-이성복-
여름날 오후 뜨거운 언덕바지를 타고 아파트로 가는 길엔 어른이나 아이나 제 머리통보다 큰 수박 하나씩 비닐끈에 묶어 들고 땀 흘리며, 땀 닦으며 정신없이 기어오른다.
그들이 오르막길에서 허우적거릴 땐 손에 달린 수박이 떼구루루 구를 것도 같고, 굴러 내려 쇠뭉치로 만든 공처럼 땅 속 깊이 묻혀 버릴 것도 같지만, 무사히, 무사히 수박은 개구멍 같은 아파트 현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선 끈에 묶인 수박을 풀고 간단히 씻은 다음,
검은 등에 흰 배의 고등어 같은 부엌칼로 띵띵
부은 수박의 배를 가르면, 끈적거리는 단물을 흘리며 벌겋게 익은 속이 쩍, 갈라 떨어지고 쥐똥같은 검은 알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저마다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손에 쥔 아버지와 할머니, 큰 아이와 작은놈, 머리를 뒤로 묶은 딸아이가 달려들어 파먹기 시작하고, 언제나 뒤처리하는 어머니는 이따금 숟가락을 거들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입맛이 없다
어느새 수박씨는 마루 여기저기 흩어지고 허연 배때기를 드러낸 수박 껍데기가 깨진 사기 접시처럼 쌓일 때, 아이들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할머니는 건넌방에 드러눕고 아버지는 값싼
담배를 붙여물고, 게으르고 긴 연기를 뿜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여름 어른들이 겪었던 물난리 같은 것일까, 질퍽하고구질구질한 난장판 같은 것일까 아버지의 작업복을 기워 만든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며 어머니는 바닥 여기저기 묻어 있는 수박물을 볼 것이다. 벌건, 그러나 약간은 어둡고, 끈끈한
수박물을... 왠지 쓸쓸해지기만 하는 어떤 삶을...
막둥이가 4살 때 베트남 호찌민에 단체여행을 갔다 왔다. 5 가족이 함께 갔는데, 그중에 막둥이가 제일 어렸다. 9살, 6살, 4살인 아이들을 끌고 다니느라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몰라도 좋았다. 일단 집에서 나갔다는 자체가 좋아서 막둥이를 업고 다녀도 힘들지 않았다. 유독 더위에 약한 막둥이가 칭칭대길래 잠깐 등에서 내렸을 때 일이다. 막둥이가 호찌민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저도 걷고 싶었나 보다. 해서 놔뒀다. 그렇게 열심히 걷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달래며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이의 울음이 그치기는커녕 점점 커졌다.
식사를 주문하고, 아이에게 수박주스 먹을래? 했더니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수박주스를 시키고 아이를 살피는데 아뿔싸, 아이의 왼쪽 종아리 가운데 부분이 빨갛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짐작건대, 식당에 들어올 때 입구에 세워놓은 오토바이의 뒷부분에 덴 것 같았다. 일단 후시딘을 바르고, 가이드와 근처 약국에 가서 화상연고를 샀다. 식당에 들어와 보니 아이가 태연하게 수박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식당에 남아 두 아이를 챙기고 있던 남편이 두 잔 째라고 했다. 그 후부터 막둥이가 속상해하면 수박주스? 가 우리들의 암호가 됐다. 막둥이는 수박을 참 좋아한다.
반면 큰 딸과 나는 수박을 일부러 찾지는 않는다. 있으면 먹는데 없어도 된다. 큰 딸과 나는 수박이나 귤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다. 그런 것도 유전이 되는가 싶지만, 둘 다 증상이 똑같은 거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신했을 때는 수박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그것도 커다란 수박을 쫙 갈라서 먹고 싶은데, 남편은 비싸다고 안 사고, 남기면 어떡하냐며 사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부른 배를 한 채 마트에 가서 제일 실해 보이는 수박을 사고 왔다. 혼자 수박을 깨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수박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어야 제 맛이다.
아빠는 여름이면 트럭에 수박을 가득 싣고 동네를 돌며 수박을 팔았다. 카세트테이프에 "수박 삽써, 수박. 달고 맛있는 수박이 왔어요. 싱싱한 수박 삽써. 수박."이라고 녹음을 해 놓고 트럭에 달린 스피커에서 틀면 아줌마들이 어디선가 나왔다. 아빠가 트럭을 세우면 수박 틈에 앉아 있던 엄마가 자른 수박을 하나씩 건네며 맛을 보라고 했다. 하루는 아빠가 방에 나를 앉혀놓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나는 부끄럽다고 하기 싫다고 했는데, 아빠가 하라고 해서 억지로 했다.
다음 날부터 동네에는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박 삽써. 수박." 내 목소리를 스피커로 들으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여름이면 엄마의 돈주머니에 꼬깃한 종이돈들이 차 있었는데, 아빠가 담배 사 오라고 할 때마다 담뱃값보다 조금 더 빼서 주머니에 담았다.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은 감자농사를 크게 지었다. 인부들을 20~30명 동원해서 감자를 심고 수확했다. 주말이면 나와 동생들도 출동했는데, 하는 일이 달랐다. 키가 크고 힘이 센 동생들은 아빠와 삼촌들이랑 밭에서 일을 하고, 나는 엄마를 도와 간식과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커다란 아이스박스에서 수박을 꺼내 화채를 만들었다. 큰 통에 수박을 깍둑썰기로 썰어놓고, 설탕을 뿌리고 각얼음을 비우면 끝이다.
오후 3시쯤 되면 사람들의 손이 점점 느려지고 힘이 빠진다. 그때에 맞춰 간식먹읍써. 크게 소리치면 작업복을 입고, 땅에 몸을 박은 채 일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아고고. 소리를 냈다. 짠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허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고 난 후에, 허리를 두들겼다. 삼촌들이 그늘로 오면 나는 국그릇에 수박화채를 담아 하나씩 갖다 줬다. 집에 오면 콘테나 두 개에 가득한 그릇을 씻고 저녁을 준비했는데, 밭에 갔다 온 날은 꿈도 안 꾸고 잠을 잤다. 그때 먹었던 수박화채만큼 맛있는 화채를 먹어본 적이 없다.
이성복의 시 <수박>을 읽으며, 수박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입에 침이 고이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아빠의 작업복을 기워만든 걸레로 엄마는 기어 다니며 마루를 닦았다. 수박물은 피처럼 빨갛다. 빨리 닦지 않으면 개미가 꼬였다. 엄마가 수박을 좋아했는지 안 좋아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