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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행복해요

by 레마누

친구는 틈만 나면 오락실에 가자고 했다. 곱상한 얼굴에 짧은 똑단발이 예뻤는데, 오락기 앞에 앉기만 하면, 터프한 여전사가 되었다. 한 번은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오락실에서 철권을 했는데, 친구가 내리 연속 졌다. 게임을 몰라도 그건 안다. KO. YOU WIN.


승부욕이 발동한 친구는 옆에 서 있던 나에게 자꾸 동전을 달라고 했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친구는 마치 직접 싸우는 것처럼 컨트롤 키를 잡고 몸을 움직였다. 친구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매번 무릎을 꿇었다. 동전이 떨어진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게임기를 돌아 상대를 찾아갔다. 영화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맞은편 게임기에는 초등학교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말로는 일단 해 보면, 재미있다고 했다.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거라는 친구의 말에 굳이 재미를 찾을 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었다. 친구는 이런 재미없는 녀석을 봤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괜찮았다. 게임보다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 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늘 나를 데리고 오락실에 갔다. 재미없는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다니던 친구가 전투기게임 앞에서 멈췄다.

이거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굳이 꼭 해야 돼?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애원하는 듯한 친구의 눈과 마주쳤다.

제발, 한 번만 해봐. 해봐야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지. 눈으로 보는 거랑은 다르다니까.

나 이런 거 못 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자꾸 해봐야 늘지.


빨간색, 파란색 버튼이 있고, 손잡이를 잡아 방향을 조절하는 전투비행기게임. 운동신경 없고, 지독한 기계치라 기계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였지만, 이 정도는 할 만하다 싶어 나란히 앉았다. 친구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두 꺼내더니 버튼 옆에 쌓아놓았다. 친구 따라 동전을 집어넣고, 전원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밝아지면서 작고 날렵한 전투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작고 날렵한 전투기지만, 아이템들을 먹으면, 점점 커지면서 무시무시한 화력이 생긴다. 적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처음에는 한 줄, 두 줄로만 공격하다가 나중에는 사방팔방에서 미사일이 쏟아진다.



다운로드.jpeg 출처 : 네이버


친구는 같이 게임을 하자고 조를 것과는 달리 게임이 시작하자 나를 잊은 것 같았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적군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할 만하더니만, 곧이어 무시무한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살아남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하고, 가슴이 뛰면서, 몸도 전투기를 따라 움직였다.

아이씨. 에잇. 아, 뭐야. 아, 진짜.


나는 2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죽었다. 친구 혼자 고군분투하는 걸 보니 미안했다. 그럴 때는 빨리 선택해야 한다. 동전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친구가 소리친다.

야, 빨리 들어와.


친구의 전투기는 이미 커져 있다. 3단계쯤 되면, 상대 역시 가공할 만한 무기를 선보인다. 동전을 넣으면 아래쪽에서 작은 내 전투기가 나온다. 내 화력은 친구에 비해 작고, 연약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이번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혼자였으면 만나지도 못했을 최강보스악당을 만날 수 있었다.


게임의 막바지이자 클라이맥스는 폭탄 퍼붓기다. 양쪽 다 사활을 걸고, 폭탄을 쏟아붓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화면이 불꽃놀이하는 것처럼 환하고 번쩍인다.


다운로드 (2).jpeg 출처 : 네이버


우리 팀의 승리다. 친구가 거의 다 하긴 했지만, 나도 조금 거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상대를 박살 냈다. 기분이 좋았다. 친구가 없었으면 나는 구경도 못할 일이었다. 모든 것은 친구덕분이었다. 그때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했어. 나 저번에도 마지막 단계에서 못 넘어갔거든.


나도 뭔가를 했다. 친구에 비해 실력이 한참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싸웠다.

친구는 그걸 알았다. 우리 함께 싸워서 이겼다. 이제 친구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매일 줌에서 작가님들을 만난다.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에 나누는 말을 아침밥으로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기에게 맞는 전투기로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다. 글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책을 통해 성장하며, 각자의 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엄마의 유산'에 들어갈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힘들지 않다. 새벽이 오기 전에 먼저 일어나 새벽을 맞는다. 글을 쓰고 잔 날은 발을 쭉 뻗어자고, 못 쓴 날은 쓸 거리를 생각하며 꿈을 꾼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뭐든 좋은 건 어떻게든 우리가 끝을 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 능력껏 가는 거다.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타나 구해주는 작가님들이 있다.

도움을 받으면 나도 도울 게 뭐가 있나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한 편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혼자만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 함께 글을 쓰는 캐리소작가님과 빛작작가님, 정원에 작가님과 미나작가님, 지선작가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혜린작가님과 모카레몬작가님, 상상작가님과 도연작가님, 지음작가님이 쓰기 때문에 나도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같은 자상함으로, 때로는 선생님같은 날카로움으로 늘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주는 지담작가님과 존재 자체로 든든한 근아작가님이 있어서 걱정이 없다. 이들과 함께 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는다. 믿고 따블로 간다. 막 지르고 막 그냥 한다. 하다 보니 되고, 되는 걸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조금 뒤처져도 앞에 가는 사람만 잘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

어떤 날은 손잡고 가고, 어떤 날은 혼자도 가지만, 마음은 늘 함께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이 해결해가며, 우리는 가고 있다.

같이 하면 더 잘 되는 거였다.

그걸 이제야 알아간다.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초대합니다

요즘 레마누가 뭐하고 놀고 있나? 궁금하시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여서 뭐하고 노나? 궁금하다면

책을 좋아하고,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 만나요.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당신의 꿈을 들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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