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매니저와 팀원은 한차례 숨막히는 접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싸움은 바로 팀원이 입사하기 훨씬 전부터 매니저가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던 습관이라는 것을 두고 치러질 예정이었다. 불안한 동거를 할 것이냐, 아니면 상생의 동거를 할 것이냐가 관전 포인트였다.
매니저 입장에서는 팀원의 개인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설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이끌고있는 팀이, 조직이 그 한 팀원의 나쁜 습관으로 인해 전염되고 와해되어 가는 것은 기필코 막아야 했으므로 이번 접전에 임하는 그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일단 싸움의 빌미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닌 그가 제공했다. 그는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 있는 지점 전체 미팅에 아무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니저는 미팅 내내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미팅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다 돼서야 비로소 얼굴을 내비췄다. 팽팽한 긴장감이 그 둘 사이에 흘렀다. 면담을 요청하는 매니저 뒤를 따라 팀원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로 따라 들어간 팀원이 이내 나왔다.
점심을 함께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팀원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자기 자리로 걸어와서 책상 이곳저곳을 뒤졌다. 옆자리에 있던 팀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왜 벌써 나왔어? 벌써 끝난 거야?”
“벌써 끝나긴. 다음 주 활동계획서 가지고 오래. 아씨, 하나도 안 적었는데 그건 왜 들고 들어오라는 거야. 그런데 그건 어디 있지, 못 찾겠네.”
“근데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있긴, 고객이랑 술 마셨지. 아침에 못 일어나겠더라고.”
“그럼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잤다니까.”
“매니저 완전 뚜껑 열렸으니까 개기지 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라. 너 말고 두 명 더 안 나왔거든.”
“그러냐?”
첫날 싸움에서는 예상대로 매니저가 압승을 거뒀다. 팀원의 입장에서는 그가 딱히 이길만한 건더기가 없었다. 그는 미팅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그날 아침까지 제출해야 하는 다음 주 활동계획서도 거의 공란으로 비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팀원은 매니저의 닦달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매니저에게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도 나름대로는 할 말이 있었다. ‘누가 놀았냐고. 누군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싶으냐고. 고객이 괴롭다며 술 한잔하자는데 안 마시겠다고 버틸 세일즈맨이 어디 있냐고. 이것도 다 영업이라고.’
팀원의 생각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고객을 만나 영업을 하다 보면 피칠 못할 상황에 놓이곤 했다. 그때마다 고객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특히 영향력 있는 고객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고객의 요구에 불응했다가 좋지 못한 결과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무엇보다도 앞섰다. 아들의 생일보다도, 결혼기념일보다도, 제 몸 아픈 것보다도 앞이었다.
그러나 매니저는 얼마 전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팀원이 걱정이었다. 활동계획서도 언제부턴가 제시간에 제출하지 못하고, 제출하더라도 초창기 빽빽하기만 하던 그것과 비교해 헐겁기가 그지없었다. 매니저는 단지 미팅에 무단결석한 것을 가지고 트집 잡고자 하지 않았다. 그동안 팀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참에 기회가 온 것이었다. 서서히 망가지고 있는 팀원을 더 늦기 전에 챙겨야 했다.
역시 매니저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원은 그날로부터 두 주를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지점 미팅에 나오지 않았다. 혹은 나오지 못했다. 매니저는 점심도 거른 채 그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이번에는 팀원이 입사 초창기에 작성했던 훌륭하기 그지없는 활동계획서까지 서류함에서 꺼내 챙겨두고 기다렸다. 팀원이 나타나면 이내 살벌한 비교가 예상되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기다리던 매니저가 기다림에 지쳐 팀원에게 전화를 했다. 팀원은 매니저의 전화를 받는 대신 옆자리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때문에 나만 혼났잖아. 영업 안 나가냐고 괜히 눈치 줘서 나도 하는 수 없이 나왔다고. 너 아직 안 들어갔어?”
“회사 근처야. 아씨, 들어가서 한바탕 할 생각하니 짜증부터 난다.”
“그래도 너, 매니저 얼굴 안 볼 거야? 싫든 좋든 앞으로 계속해서 봐야 하잖아. 그러니 빨리 들어가라고. 내일은 팀 야유회도 있잖아.”
“알았어. 내공 좀 더 쌓고.”
팀원이 내공을 좀 더 쌓고 지점에 도착한 시각은 밤 열 시경이었다. 내공을 충분히 쌓은 덕에 팀원의 표정 관리는 매우 훌륭했다. 평상시처럼 아무 일 없다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마음 졸이고 있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단 팀원은 자기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그냥 서서 잠시 망설였다. 그 사이 매니저는 팀원이 들어온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평상시처럼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자기 자리에 앉아 평화로이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매니저도 나름대로 책을 읽으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글자는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상황이 이쯤되면 보통 구린 일을 한 사람이 먼저 수를 쓰는 게 정석이었다. 이 정석에 따라 팀원이 매니저가 있는 자리로 찾아갔다. 그리고 매니저 앞에 있는 상담용 의자에 앉았다. 앉은 자세가 그렇게 반듯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공의 힘이었다. 그때까지 매니저는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역시 내공의 힘이었다.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누가 켜놓았는지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약하게 들려왔다. 연속해서 두 번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무슨 소리든 정작 들려야 할 그곳에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왔네.”
지점장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그 표정은 마치 넌 오늘 죽었다 하는 뜻인 것 같았다. 팀원은 머리만 살짝 숙여 지점장에게 인사를 했다. 지점장은 보통 팀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보다보다 안되면 매니저를 불러서 깠다. 그러면 되고, 그런 게 조직이었다. 이윽고 매니저가 책을 덮으며 팀원이 있는 쪽으로 의자의 방향을 돌렸다.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
캬악. 그것은 내공이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매니저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로 나오는 송강호의 대사를 그대로 한 것이었다. 그 말속에는 요즘 네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다시 말해서 오랜만이구나,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제 너는 매니저도, 팀도, 지점도 필요 없다는 거구나 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챙겨둔 초창기 활동계획서와 지금의 그것을 비교해 가면서 네가 지금 얼마나 망가지고 있느냐를 증명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였다. 하지만 매니저는 그 같은 애정 어린 비교도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는데, 이미 그것을 넘겨버렸다는 듯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팀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매니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단 잘못은 팀원이 했으므로 거기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했다. 여기에서 어설프게 매니저의 말을 되받았다가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었다.
“내일 야유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
강공이 이어졌다. 하지만 싸움 초반에 이런 강공이 나오면, 의례 그 진의는 겉말과는 다른 곳에 있기 마련이었다. 즉, 말은 팀에서 너를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숨겨진 진짜 말뜻은 빨리 기권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쪽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매니저는 팀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매우 직접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설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선발한 팀원이 어떤 이유로든 낙오된다는 것은 매니저로서도 실패를 의미하기에 그렇게 쉽게는 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알았어요. 정 뜻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지요. 근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누가 잘했대요?”
허걱. 이것은 내공이었다. 팀원은 매니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매니저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팀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종의 포석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매니저에게 사과하고 끝내면 앞으로도 괴로울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아주 선을 그어놓고자 한 것이었다.
사실 요즘 팀원은 매니저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영업하는 데 무척 힘들어했다. 활동계획서를 사전에 작성하지 않아도 활동량은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실적도 나아지면 나아졌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팀원은 영업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하고 싶어했다.
팀원은 이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매니저도 가는 그를 잡지 않았다. 예상보다 그들의 두 번째 싸움은 아주 빨리, 아주 조용히 끝이 났다. 이번에는 둘이 비긴 듯 보였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이겼다면, 다음날 그 팀원은 팀원 전원이 참석하는 행사에 왔어야 했다. 매니저가 이겼다면 팀원은 마지못한 모습으로, 매니저가 졌다면 팀원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합류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니저가 훨씬 불행해 보였다. 매니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 그 팀원 말고도 두 명이 더 있기 때문이었다. 그 둘 중 한 명은 매니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젯밤 마찰을 빚은 팀원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있었다. 그와 비교하면 어젯밤 그 팀원은 시작에 불과했다. 매니저가 두 번째로 영입한 그는 더 이상 팀원이 아니었다. 매니저는 오랜 갈등에 지쳐 그를 거의 방치하고 있었다. 그도 더 이상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매니저의 관할 안에 있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만약 회사가 이러한 갈등의 해결책으로 팀원의 팀 이동이나 지점 이동을 허락했다면, 그는 벌써 다른 매니저를 찾아 팀을 떠났을 게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둘은 각자 회사에게 팀 이동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물론 회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가 허락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러한 갈등이 상당히 많다는 반증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질서를 잡기 위해서라도 팀 문제는 팀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보면 옳았다.
또 다른 팀원은 아내와의 불화로 참석하지 못했다. 가족보다 고객을 더 우선시하는 남편을 더 이상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렇게 가정도 버리고 일만 할 거라면 그렇지 않은 환경의 회사로 이직을 하던지, 아니면 이혼을 하던지 선택하라고 남편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 아내는 남편이 영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영업을, 그것도 전 직장에서 쌓은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구태여 할 필요가 있느냐며 엄청난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전 직장이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발 앞서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이 일을 선택하고자 했었다. 남편은 우여곡절 끝에 아내에게 동의를 얻어 영업을 시작했지만 일을 하면서 아내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남편은 점점 소심한 사람으로 변해갔고, 그 결과 아내와 다투면 며칠씩 회사에도 집에도 아무 연락 없이 사라지곤 했었다.
지점에는 여섯 개의 팀이 있었고, 팀은 팀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평균 열 명 정도의 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한 신생팀을 제외하고는 팀마다 어찌 그렇게 다양하고도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이 터져 나왔다. 오래된 팀일수록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그 수위가 높았다. 그래서 매니저 그룹은 팀원이 열 명이 넘어가면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푸념을 자주 털어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팀원마다 문제가 없는 팀원은 없었다. 지극히 모범생처럼 보이는 팀원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영업에 방해가 될만한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결국 팀 행사에는 세 명이 불참하고, 아홉 명이 참석했다. 참석한 팀원들도 언제부턴가 매니저와의 관계가 조금씩은 흐트러져 있었다. 팀원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매니저의 부족한 리더십을 공격했고, 매니저는 팀원들을 제대로 규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이어서 팀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팀원들에게 아낌없는 협조를 당부했다.
그래도 가끔 사람들은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대치 국면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득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문제를 푸는데 최초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일단 화해의 자리는 팀내 최고 연장자이자 최고 선배인 팀원이 주선을 했다. 선배 팀원은 십 년을 하루같이 매우 모범적으로 회사 생활과 영업을 해온 극히 드문 인물이었다. 매니저에게도 이러한 팀원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런 중심축이 없는 팀들은 훨씬 불안해 보였다. 실제로 여섯 개 팀 중 두 개 팀이 더 이상 팀을 유지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야유회를 다녀온 후 선배 팀원은 매니저와 그 문제의 팀원을 불렀다. 편안한 술자리를 마련한 선배는 먼저 후배에게 따끔한 질책을 하면서 팀과 조직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다음으로는 후배가 달성하고 있는 빛나는 실적을 칭찬해 주었다.
“선배님과 매니저께 죄송해요. 저도 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는 많이 쓰는데 그게 좀 어설프네요.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팀원은 한발 물러섰다. 내내 마음이 켕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 팀원들에게 해야지.”
매니저는 매니저답게 팀원의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좋은 반응은 얻어내지 못했다. 팀원이 그 말을 듣고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냥 나도 미안하게 됐다, 앞으로 잘 해보자 하는 말을 팀원은 기대하고 있었다. 아직 꽁한 마음이 채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매니저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것 보면 팀원과 마찬가지로 다친 마음이 다 아물지 않아 보였다.
여하튼 그날은 선배 팀원의 중재로 그 둘은 화해를 했고, 그 일이 있고부터 한참동안은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원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지점 미팅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활동계획서도 비록 가짜지만 어느 정도 채워서 제출하려고 했다. 매니저도 가급적 팀원의 심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미팅에 지각을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았으며, 가짜 활동계획서인줄 알면서도 그럭저럭 넘어가고자 했다. 그 둘은 서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불안한 동거를 유지하면서 상생의 동거를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팀은 불행한 일을 피하지 못했다. 불행한 일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팀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나머지 두 팀원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매니저와 극한 대립을 보였던 팀원은 한차례 매니저와의 큰 충돌을 마지막으로 경쟁회사로 자리를 옮겼고, 아내와 불화가 잦았던 팀원은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정리하여 아내가 원하는 이민길에 올랐다.
이 두 사건을 겪으면서 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니저는 한층 긴장했고, 팀원들은 한층 느슨해졌다. 팀원들은 영업을 하기보다 작금의 사태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동안 매니저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정도에 따라 팀원들의 분석은 매니저의 능력 부재 쪽으로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중론은 그만두지 않아도 될 사람이 그만두게 되었고, 그 원인을 매니저가 제공했다는 데에 모아졌다. 영업을 나름대로 잘하는 사람을 괜히 건드려서 화근을 불렀고, 매니저라면 팀원의 개인적인 문제도 헤아릴 줄 알아야지 그것도 모르면서 괜히 일하는 습관이 예전같이 않다고 몰아세워서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매니저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난국을 헤쳐나가야 했다. 자꾸만 분열되고 와해되어 가는 팀을 하나로 응집시켜야 했다. 그는 며칠간의 고민 끝에 중대 결정을 내리고 팀 회의를 소집했다.
“앞으로 출근시간은 아침 7시 30분으로 하겠습니다. 모든 팀원이 이에 해당되며 예외는 없습니다. 그 시간에 출근을 해서 일일활동계획을 중심으로 저와 개별 면담을 하고, 선배 팀원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인 교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커리큘럼과 조 편성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제가 선발한 조장에게 개별 통지하겠습니다. 시장이 몹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 모두 초심을 잃지 말고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매니저로서 여러분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팀원 여러분의 아낌없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매니저의 발표는 짧았지만 강력했다. 그 자리에서 이의를 재기하는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회의 전, 매니저는 조장이 될만한 세 명의 선배 팀원을 만나 당분간 이런 식으로 팀을 운영할 계획이니 도와달라고 이미 간청한 상태였다. 선배 팀원들은 자신들조차도 초년생으로 대하는 데 있어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매니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후배 팀원들이야 선배 눈치만 볼 뿐 싫다는 내색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매니저가 내린 조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겨우 일주일 정도 새로운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것도 매니저 눈치를 봐서 그 시간에 억지로 출근만 했을 뿐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삼삼오오 회의실에 모여 교육 대신 매니저가 내린 새로운 조치는 말도 안 된다는 식의 비판만 주고받았다. 매니저를 동조하는 팀원은 거의 없었다. 선배 팀원들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하나둘 아침 교육에 결석하는 팀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장을 맡은 선배 팀원도 지방 출장 등의 핑계로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교육은 이내 파행으로 운영되었다. 세 개조로 편성된 교육팀은 출근한 팀원을 모아 겨우 한 개조로 운영되었다.
새로운 조치가 서서히 약발을 잃어 가면서 매니저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 들었다. 팀원들은 매니저와의 대화를 애써 피했고, 팀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지점장도 매니저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이, 매니저. 팀 생산량이 왜 이래? 어디가 바닥인지 모르고 내리꽂기만 하잖아. 올리라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팀 생산량을 올리란 말이야.”
영업조직은 언제나 긴 말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생산량, 즉 실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에 그것만 체크하면 그만인 조직이었다. 팀내에 무슨 일이 발생하든 지점장은 일일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팀을 맡고 있는 매니저의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 회의를 하던 도중 매니저와 그 팀원 간의 피치 못할 세 번째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어쩌면 예고된 싸움이었다. 그동안 매니저와 팀원들은 서로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너무도 많이 쌓아놓고 있었다. 매니저는 회의를 진행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질문을 해도 팀원들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매니저에게 질문을 하는 팀원은 아예 없었다. 몇몇 팀원은 매니저가 무슨 말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펼쳐놓은 노트에 그저 낙서만을 즐기고 있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자제력이 한계에 다다른 매니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매니저는 그동안 너무도 많이 지쳐있었다. 자신이 매니저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집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팀원들은 왜 이리도 냉담하게 자신을 대하는지 억울한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화살이 낙서를 하고 있던 그 팀원에게 날아왔다.
팀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피식 웃기만 했다. 매니저 입장에서는 사람 도는 일이었다. 사람을 갖고 놀아도 유분수지 회의하는 자리에서 낙서나 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주의를 주는 매니저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같잖은 웃음을 보낸 것이었다. 매니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 팀원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서 사사건건 시비야, 어? 매니저가 무슨 동네북이냐? 누군 왕년에 영업 안 해봤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말 좀 해봐라.”
“뭘 잘못하고 계신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팀원들이 왜 매니저를 피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냐고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얼마 전에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긴 팀원이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예? 사람마다 영업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잖아요. 그게 그리도 싫으세요? 그냥 놔둬도 되잖아요. 알아서 하는 거 아니에요?”
불만은 오래될수록 한번 터지면 그 강도는 그만큼 컸다. 다른 팀원들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얘기가 비로소 나왔다는 듯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스타일? 스타일 좋아하네. 너같이 미팅에도 안 나오고, 가짜로 활동계획서 작성하는 게 스타일이냐? 매니저로서 지적할만하니까 지적을 하는 게 아니야. 매니저가 하는 일이 뭔데? 그리고 너 말 잘했다. 그만둔 친구도 그래,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내 말 안 듣고 자기 혼자 영업한답시고 돌아다니다가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 아니야.”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사람 말을 이상하게 받는 특기가 있다니까요. 매니저 얼굴을 보기도 싫은데 지점에 나오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맨 날 밖에서 헛도는 거 아니에요. 이민 간 친구도 왜 그만두고 갔는지, 여기 있을 때 뭐가 문제였는지 아직도 모르고 계시죠? 알고 있었으면 막을 수도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사정이 생겨도 우리 팀원들끼리 얘기하지 매니저한테 와서 얘기해요? 안 먹히니까 안 하는 거예요. 매니저는 우리 팀원에게 고객은 다 다르다, 그러니 고객별 접근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면서 매니저는 말로만 팀원들은 저의 소중한 고객입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매니징을 하고 있잖아요. 전 말이죠, 활동계획서 같은 서류를 만들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거든요. 잘 못하겠거든요. 그런데 자꾸 내라고 하니까 부닥치기 싫어서 거짓말로라도 적어 내는 거예요.”
매니저와 팀원은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양보 없는 대치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남에게 피력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입장과 입장이 부딪쳤을 때 어느 한쪽이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싸움은 곧 성격과 성격이 충돌하는 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는 없다. 특히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치 상황은 이내 유치한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팀에 너밖에 없어? 너만 예외로 해달라고? 그럼 매니저 입장은 뭐가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매니저가 왜 필요하냐고, 어? 그리고 하기 싫다고 안 하면 그게 어디 일이야? 노는 거지. 이제 보니까 너 완전 구제불능이구나.”
“이제 알았어요? 그래 맞아요, 저 완전 구제불능이에요. 원래 그런 놈이라니까요. 그걸 모르고 뽑았어요? 아씨, 말이 통해야 해 먹지. 정말 못해 먹겠네.”
매니저와 팀원이 그토록 서로에게 조심하며 모색했던 상생의 길은 팀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순간 영영 날아가 버렸다. 두 번째 다툼에서 보여주었던 절제된 내공의 힘도 이번에는 없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원래 그런 존재들이다. 그렇고 그런 존재들이 어울려 사는 데가 세상이라는 곳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곳에 모여 공존을 위해 이것저것 더러워도 참으며 산다. 하지만 이것 하나, 성격이라는 것을 건드리면 절대 참지를 못한다. 1,200여 시간이라는 길고도 긴 교육과정도 기질과 성격, 습관을 두고 벌어진 싸움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세 번째 싸움에서는 모두 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팀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