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준 Feb 28. 2024

대학에 간 작은 딸




10대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장래의 진로에 대해서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잘못된 진로 결정 때문에 대학생활 내내 후회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해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과는 다르게 자녀의 앞날을 부모가 결정하고 뒤에서 조정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자녀의 적성이나 특기를 존중하며 자녀의 의사를 적극 지지한다.

아내와 나 역시도 작은딸에게 장래 진로에 관해서 일절 간섭하는 것을 자제했다. 부모의 요구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작은 딸의 장래 진로는 유동적이었다. 꿈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뉴욕에 있는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최고상과 함께 미술 특별상을 받았을 때와 런던 윔블던 하이스쿨 year 9 재학 시에 전국 학생 그래픽 디자인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는 장차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이스쿨(중. 고 과정)에서 물리학을 배우며 관심이 커지고 관련된 전문 서적에 심취해 있을 때는 미국 나사(NASA)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나사는 미국의 국가기관으로 우주계획과 일반 항공 연구를 실행하는 곳이다. 어느 때는 유럽연합의 입자 물리학 연구소인 스위스에 소재한 센(CERN)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동을 주는 의사들의 활약상을 보고는 그런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작은 딸이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영국에 다시 돌아와서 A레벨을 공부하게 되었을 때 선택한 과목은 물리, 화학, 수학, 영문학이었다. 이 과목들은 의과대학이나 과학계열 대학에서 요구하는 과목들이었다. 아마도 본인이 말했던 대로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를 진학하거나, 미국의 나사나 스위스의 센 연구소를 염두에 두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선택한 것 같았다.


작은딸이 공부하는 학교는 사립이었지만 기숙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A레벨을 공부하는 2년 동안 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다.

기숙사는 임페리얼 칼리지, 로열 칼리지 어브 아트, 그리고 로열 알버트 홀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넓은 도로를 건너면 푸른 숲의 나라 하이드 파크가 끝간 데 없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주위 환경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완벽한 곳이었다.

기숙사의 건물은 섬세하게 깎은 돌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건축했는데 중후하며 견고했고, 오랜 세월을 견딘 역사적인 건물처럼 보였다.

실내는 꽤 공들여 꾸민 격조 있는 호텔 같았다.

규모가 큰 식당에서는 아침과 저녁식사를 뷔페식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작은 딸은 기숙사의 환경이나 시설에 만족해했다. 다행한 일이었다. 혼자 생활해야 하는 입장에서 숙식을 하는 장소가 편하면 그만큼 안정감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작은 딸은 런던에는 오직 학교와 기숙사만 존재하고 있는 양 괘종시계의 추처럼 두 장소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이러한 생활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만들어주고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A 레벨을 시작하고 그다음 해 5월과 6월, 차례로 과목별 시험을 치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비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험이 어렵지는 않았다. 무난한 점수가 예상되었다. 8월 중순에 결과가 발표됐는데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놀라운 점수였다. 영문학과 물리는 A 플러스였으며, 화학과 수학은 A였다. 물리는 워낙 관련된 책들을 깊이 있고 폭넓게 공부했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영문학이 A플러스라는 게 놀라웠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어과목을 까다롭게 생각하고 점수 따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처럼 영국 학생들은 영문학이 그랬다.


대학교 입학 신청은 A레벨 1년 차(Year 12) 성적만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 입시 지원 시스템인 UCAS(Universities & Colleges Admissions Service)에 학교를 선정하여 신청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도 입학이 가능한 점수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올렸고, 그다음으로 LSE(런던 정경대)와 워릭 대학교 3곳을 신청했다. 옥스퍼드를 지원하지 않은 것은 케임브리지를 지원했을 경우에는 두학교를 동시 지원할 수 없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의 전공은 법과를 선택했다. A레벨에서 배우는 선택과목과는 거리가 있는 학과였다. 추측해 보니 의과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고액의 학비와 오랜 기간 공부한다는 것이 우리 가정형편으로는 벅차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물리학을 전공해서 졸업 후에 미국의 나사나 스위스의 센 연구소에 취업한다는 것은 채용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불확실한 모험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작은 딸이 법대를 지원한 것은 생뚱맞거나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법조인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영국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작은 딸을 보기 위해 1년에 두 번씩 방문했다. 여름방학에는 한국에 와서 지냈기 때문에 내가 방문하는 시기는 이스터 홀리데이와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때였다.  

내가 영국을 방문할 때마다 작은 딸과 즐겨 찾는 곳이 있었다. 런던 템스 강 동쪽에 둥지를 튼 신도시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였다. 그곳은 19세기 초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했던 부두였으나 1980년대 항구 산업의 몰락과 함께 버려졌던 땅을 1990년대에 개발을 해서 세계적인 금융허브의 중심지가 된 곳이었다.

이곳에는 영국 금융 감독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 뱅크 어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바클레이즈 캐피털(Barclays Capital). 에치에스비시 (HSBC), 모건 스탠리(Morgan Stanly). 시티뱅크(City Bank), 크레디트 스위스 Credit Suisse) 같은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


카나리 워프를 산책할 때면 작은딸이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는 빌딩이 있었다. 규모가 대단한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라는 영국의 대형 로펌이었다.

건물을 드나드는 직원들은 남녀 구분 없이 검은 정장 차림이었고 한결같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부럽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저런 로펌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작은 딸은 한동안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느 날 작은 딸은 로펌 건물에서 나오는 검은 정장을 한 세련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흑인 여성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인 듯했다. 작은 딸은 생면부지의 흑인 여성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질문했고, 그녀는 거부반응 없이 밝은 웃음과 함께 열심히 대답을 해 주었다.

난 그때 작은 딸은 변호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은 딸은 A 레벨 2년 차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 있는 과목들이라서 공부를 할수록 가속도가 붙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A레벨 2년 차 점수도 만족할 만한 점수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1년 차 점수와 판박이였다.

이 점수라면 1순위로 지원한 케임브리지 대학교도 기대해 볼 만했다.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정해진 날짜에 인터뷰까지 했다.

그러나 8월 말, 대학 입시 지원 시스템인 UCAS로부터 날아온 결과는 런던 정경대와 워릭 대학교는 합격이었지만, 케임브리지는 탈락이었다.

아마도 A레벨에서 전공한 과목이 영문학을 제외하고는 법대에서 요구하는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법대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과목은 없지만 영문학, 히스토리,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이 유리한 과목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입장에서 가정해 본다면 만약 작은 딸이 의과대학이나 과학계열의 학과를 지원하였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딸은 케임브리지에서 탈락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런던 정경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로 생각했다.

런던 정경 대 (LSE : London School of Economic and Political Science)는 런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과학 특화 공립 대학이다. 1895년에 개교하였기 때문에 1167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옥스퍼드나 1209년에 설립된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비교하면 노루꼬리만큼이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 규모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마치 대형 백화점과 동네 슈퍼마켓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상위 명문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런던 정경대에는 경제학, 정치학, 법학, 국제 관계 학과 등이 있고, 부속 도서관에는 470만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사회과학 도서관이 있으며, 지금까지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런던 정경 대(LSE) 입학식은 9월 말이어서 작은딸은 한 달 가까이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작은 딸은 더 이상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지나가버린 버스를 향해 발을 동동거리고 아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작은 딸은 이제 학창 시절의 허물을 벗고 성인으로의 탈바꿈이 필요했다.  

아내는 그동안 중저가 의류 매장에서 구입한 편한 옷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작은딸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본인이 맘에 드는 디자인의 옷을 여러 벌 샀다. 정장 스타일의 옷도 사고, 파티에 입을 심플하면서 화려한 칼라의 드레스도 샀으며 하이힐과 핸드백도 준비했다.

키가 1m 72인 작은 딸이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내 옆에 서면 나보다 컸다. 항상 어린애로 생각해 왔고, 어린애 취급을 해왔는데 어느새 외형적으로도 성인이 되어 있었다.   


9월 말, 작은 딸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나는 대학생활이 누구보다도 예쁘고 누구보다도 당당하길 바랐다.

알에서 깨고 나와 넓어진 세상을 만난 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날개를 맘껏 펼치기를 바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