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반 고흐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난 건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어릴 때부터 조악하게 인쇄된 테이블보나 여행지의 기념품 가게를 통해서 그의 작품을 접하긴 했지만, 작품의 정확한 이름과 화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교양 과목 중에 <서양 미술의 이해>가 있었다. 유명세를 입증하듯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 앞에서 조교가 작품을 화면에 띄웠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웅성이던 강의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나는 그림과, 반 고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어두운 강의실 한쪽에 마치 별이 떠오르듯 그림이 반짝였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하늘과 깊이 잠든 마을의 파랑, 초록이 별빛의 찬란한 노랑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동영상을 튼 것도 아닌데 별빛이 넘실대는 것처럼,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그 순간 강의실의 정적, 분위기, 모두를 감쌌던 감동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부터 반 고흐에 대해서 자료를 모았다. 그의 일대기를 읽고,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을 읽고, 여행지를 찾을 때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작품을 관람하고 나올 때마다 기념품 샵에 들러 그의 그림을 인쇄한 엽서와 열쇠고리 따위를 사모았다. 스무 살에 떠난 첫 유럽 여행에서 그의 고향 네덜란드를 찾았다. 미술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라,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특히 <밤의 카페테라스>가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오테를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좌절했던지. 몇 년 뒤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을 찾아 수업을 들은 뒤 약 십 년 만에 <별이 빛나는 밤>의 실물과 조우했다. 실제 그림을 보니, 반 고흐가 즐겨 사용했던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특유의 강한 입체감과 텍스처 덕분에 눈앞에서 별빛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많은 관객들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수년이 지나 양극성 장애로 진단받았다. 동시에 반 고흐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도 정신 질환을 앓았고, 의심되는 진단 중 하나가 바로 양극성 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욱 그에게 빠져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반 고흐와 나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미술학도가 아니었으니 화가로서 그의 기법이나 화풍을 닮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예술은 이렇듯 작가 본인에게도, 그리고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위로가 된다. 우리는 작품을 보며 화가 혹은 작품 속 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함께 공감한다.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았지만 부정하고 싶었고, 오랜 기간 마주하기를 거부하고 도망쳤다. 마침내 인정했을 때, 내가 그토록 사랑한 화가가 같은 질환을 앓았고, 그 고통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반 고흐의 작품이 위안이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한 번쯤 반 고흐의 정신세계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가 양극성 장애로 진단받은 뒤, 반 고흐가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반 고흐의 작품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다르게 보였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고,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숨은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도 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사후 반 고흐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연구가 많다. 부족한 글이지만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담고 싶었다. 이 글을 쓰기 앞서 많은 논문을 읽었고, 전 세계 미술관에서 사 모은 반 고흐 일대기와 사료를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서양미술 전공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아니라서 그런 분들이 쓴 글에 비하면 전문성은 한참 떨어질 것이다. 이 글은 내 멋대로 반 고흐에게 바치는 찬사이자, 나를 포함하여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반박 시 무조건 당신 말이 옳다. 읽기 불편하다면 얼마든지 그냥 넘어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