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은 욕구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특히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연애사를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러나 반 고흐의 연애사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의 대서사시이다.
청년 시절의 반 고흐는 '금사빠'였다. 그의 첫사랑은 런던에서 묵었던 하숙집 주인의 딸, 외제니 로예(Eugenie Loyer)였다. 스무 살의 반 고흐는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서로 불같은 연애를 했던 것도 아니오, 이미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고백도 아니고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것 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1881년 여름에는, 원래 안면이 있었던 사촌 케이 보스 스트리커(Kee Vos-Stricker)를 다시 만나게 된 후, 또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물론 거절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트리커와는 반 고흐가 암스테르담에서 신학대학의 입시를 준비할 때 안면이 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가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며 엄청난 애정을 과시한다. 또 몇 번 보지도 않은 여인을 '운명의 짝'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반 고흐는 거절 당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램프에 손을 넣어 자해하는 등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프로이트는 반 고흐의 이런 '금사빠'적인 성향을 원시적 이상화(Primitive Idealization)로 설명한다.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 '금사빠'는 특정인을 골라 대상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씌운다. 그리고 그들과 결합하여, 즉 연애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려 한다. '금사빠'는 상대방이 보이는 단순한 호감과 사랑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사랑의 시작과 끝이 타인보다 빠르며,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 소모도 크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상대를 골라 격한 감정을 고백하고, 거절당한 뒤 실연에 잠기던 반 고흐의 패턴과 유사하다.
어떤 학자들은 반 고흐의 이런 '금사빠' 기질의 원인을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반 고흐는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그가 태어나지 1년 전에 형이 사산되었고 어머니는 둘째 아이인 반 고흐에게 죽은 큰 아이의 이름이었던 빈센트를 물려준다. 어머니는 큰 아들의 죽음을 내내 슬퍼했으며, 반 고흐는 죽은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어머니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다. 이렇듯 유년기의 거듭된 실망이 반 고흐의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애정 결핍을 조성했다는 것이다(Walter Winkler, 1973., Bradley Collins, 2005).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결핍을 연애를 통해서 충족하려는 경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정신 분석을 받기 전까지 스스로 그런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몰랐다. 연애는 나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채워주고,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수단이었다. 외로움에 시달릴 때, 나는 남부럽지않은 '금사빠'였다. 누구든지 당장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드디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일시적으로 외로움은 잠재울 수 있었지만 연애가 평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초반의 열정적인 시기를 지나,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들 때쯤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는 착각에 휩싸여 심한 불안을 느꼈고, 그것은 곧 상대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변해버린 나의 모습과 심한 집착이 관계에 건강한 영향을 미쳤을 리 만무하다. 상대가 질려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아 헤맸다. 반 고흐가 청년기에 보였던 연애 패턴도 상당히 유사하여, 그는 과거 짝사랑에 대한 거절로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러한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반복적 강박증을 보여준다.
지난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 겨울에 길을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중략)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 주어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중략) 이제 그녀는 순하게 길들여진 비둘기처럼 나를 따른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때에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1882년 5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882년 창녀 시엔(Sien)을 만나면서 반 고흐의 사랑법은 변화를 보인다. 그가 시엔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5살 난 딸을 둔, 임신한 미혼모였다. 반 고흐는 그녀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은 곧 사랑의 감정으로 진화한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삶, 쓰임 받는 삶을 꿈꿨던 반 고흐에게, 시엔이야말로 그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반 고흐가 시엔을 그린 작품에 투영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부분의 화가가 흠모했던 여성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릴 때, 그녀의 아름다움이나 성적 매력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반 고흐가 시엔을 모델로 한 그림들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Pollock, 1994). <슬픔>은 시엔을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림 속 시엔의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졌으며, 젖가슴은 축 늘어지고 배는 뽈록 튀어나왔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모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려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와 경제난으로 시엔과 헤어진 후에도 반 고흐의 사랑의 대상은 늘 세상으로부터 낙인찍힌 여인들이었다. 1884년에는 10살이나 많은 이웃집 여자 마르호트 베헤만(Margot Begemann)과 사랑에 빠지지만, 마르호트가 뜻밖에도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이별을 맞이한다. 1886년 파리에서는 선술집 주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리(Agostina Segatori)와 한 때 사귀다 헤어진다. 아를에서는 간간히 창녀촌을 찾아 욕구를 채우다가 고갱과 말싸움을 벌이고 귀를 자른 뒤, 자른 귓불을 창녀 라셀(Rachel)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반 고흐는 일평생 외로움과 싸우며 사랑받기를 갈구했지만, 화가로서도, 한 명의 남자로서도 늘 원하는 만큼의 관심이나 애정을 받지 못했다. 반 고흐가 정말 정신 질환을 앓았다면, 연인 혹은 배우자가 있는 편이 그의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주변의 지지와 수용적이고 애정 있는 태도는 정신질환자의 일상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대처를 용이하게 하며,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가 영혼의 단짝을 만났더라면, 화가로서의 자질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반 고흐를 사랑해 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도 고통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거나 돌로 변할 것이다.
1881년 12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참고 문헌>
Bradley Collins(2005). <Gogh and Gauguin> (이은희 역). 서울: 다빈치 (원저 2002년 출판)
Walter Winkler(1973). <現代藝術の心理> (小見山 역). 東京: 金剛出版社. (원저 1969년 출판)
Pollock G. The ambivalence of the maternal body: psychoanalytic readings of the legend of Van Gogh. Int J Psychoanal. 1994;75 ( Pt 4):80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