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서울은 개들도 살기 팍팍한 도시. 덩치가 클수록 처량해지기 쉽다. 모여든 인간 살기에도 좁기만 한 곳에, 회색 빌딩들은 먼지 낀 하늘을 긁을 듯 서있고. 지면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자연의 땅이 가져본 적 없는 부가가치세를 매겨 놓는다. 돈 버는 곳이 가까워서, 돈 번 이에게 팔기가 좋아서. 다시 파는 곳이 가깝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닭이 낳은 달걀이 다시 닭이 되어 알을 낳는다. 그 반복된 순환이, 마당이 있는 집을 허문다. 있던 마당을 좁아지게 만든다. 시멘트를 덮어서.
처음부터 하얫기에, 서울에서 개는 회색으로 늙어버렸다. 나는 그 개를 알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발랄함과, 밥 먹는 모습, 정확한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늙은 만큼 축 바닥에 붙은 개가 어떤 날은 나를 향해 짖고, 어떤 날은 무관심하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스름한 길 갑자기 짖은 "웡!" 소리에 화들짝 놀라던 때가 있었고, 그 짖음이 다른 행인을 놀라게 하는 것을 보았다. 큰 소리가 날 때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주인아저씨가 청년으로부터 말의 수모를 당하는 곁을 지나쳤다. 낮고 낙후된 신촌의 변두리. 그럼에도 지름길로서의 가치가 남은 뒷골목. 아파트 후문 가까운 골목에 개는 살고, 그보다 변두리 진 언덕 초입에 내가 살기 때문이다.
단독 채지만 마당을 남기지 못한 보급형 구 가옥. 시멘트 발린 바닥이 눕거나 뒹굴기에 깨끗한지는 모르지만, 종일 갇혀 살기에 생명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넓었다면 나았을까. 채 2미터가 안 되는 통로의 넓이가 더욱 안타깝다. 하얀 진돗개. 아마도 믹스. 고향 집에 사는 순돌이를 닮아서 더욱 그렇다. 순돌이가 마당을 뛰다 신이 나 옆집의 밭 터까지 뒹굴고서야 돌아올 때 짓던 미소가 겹쳐 보인다. 비교는 행복을 깎는 인간만의 악덕. 구태여 이 개와 그 개를 비교하지 않아야 하지만, 한발 늦었다. 시나브로 바닥에 누운 쓸쓸한 표정에 마음이 가고, 기억과 감정들이 멋대로 달라붙는다.
햇살이 날카롭게 추락하는 정오의 여름. 평소라면 늘어져 있을 녀석이 없다. 목줄 대신 튼튼한 철문에 갇힌 만큼의 자유를 누리는 녀석. 가리어진 뒤뜰에라도 갔나 보다. 휘둘러 찾아보려 가까이 걷다 노란 점 무리에 눈이 팔렸다. 철문 위의 개조심 표지판 아래로. 시멘트 틈을 뚫고 풀 꽃이 자라 있었다. 하수구로 흐르다 퇴적되어 모인 작은 흙 위로. 회색의 각박함에서도 피어나는 이런 경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것들은 작아도 묘한 빛이 난다. 핸드폰을 꺼내 든다. 기도하듯, 온갖 각도를 뒤틀며 부산 떨다, 깜짝 놀랐다. 희고 큰 털 뭉치가 지척이다. 녀석은 짖지도 않고 다가와 나를 보고 있었다. 타이밍을 다 놓치고 나서 새삼 놀라 뒤뚱뒤뚱 뒷 오리걸음을 걷는 나를 보고도 평온하다.
까만 녀석의 눈망울에 내가 비친다. 놀라 핸드폰 든 손을 떨구고 찌끄려 앉은 사내. 지친 얼굴에 놀람과 민망함이 겹쳐있다.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녀석은 짖지 않는다. 오래 봐서일까, 아니면 그도 나를 측은하게 여긴 탓일까. 녀석의 촉촉하게 젖은 코. 유독 오른쪽 콧구멍 아래가 빛나 보인다. 흐릿해진 눈매와 겹쳐, 한층 멍해 보인다. 그 눈이 나를 바라본다. 듬성듬성한 회색 털 빛깔로, 선명하지 않고 흐린 우는 듯한 표정으로. 까만 눈의 슬픔은 남의 것이 아니었다.
갇힌 반경이 조금 넓다고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수구 옆 풀꽃 씨가, 언덕 너머 넓은 들판을 바란다면. 조각 바람을 타는 것 만으론 닿지 못할 테다. 포기하지 못해, 불가능을 알고도 목표 안에 스스로를 가둔 삶. 덩치가 큰 희망사항은 도시에선 비용만 늘릴 뿐이다. 혼자만 아프고 끝내지 못한 시간들. 실패뿐인 기억들도, 시도했다는 사실과 노력한 시간 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도 괜찮을까.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홑 씨는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으며 뿌리내렸을까. 감싸던 품과 주변의 온기는 모두 잊은 채? 마음이 갑갑하다.
본성과 맞지 않는 곳에 사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났었다. 곧, 짖거나 뛰지도 않으며 움츠러들고, 울진 않는지 누군가 창밖을 내다보게 했다. 키워준 이는 물론 스쳐 지나는 이들까지 불편하게 한 것은 누구였을까? 회색으로 늙은 개가 어떻게 느끼는지도 알지 못하는 나. 녀석이 어떤 과거를 살았는지 전혀 모르는 나. 갇힌 것에, 나이가 든 것에 멋대로 측은함을 느낀 것은 정말로 녀석을 향한 마음이었을까.
남들이 바라는 것을 쫓지 않았기에, 이 서울에서 그는 변두리로 쪼그라들었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반짝임과, 밥 먹는 모습, 가족들에게서 받은 반짝이는 마음을 안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늙은 것도 아닌 주제에 어떤 날은 바닥에 널브러지고, 어떤 날은 꼬리에 불붙은 듯 뛰어다니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제대로 소리 내 보기 전에 닳아버린 마음. 차마 놓지 못한 것들로 인한 모든 수모를 보았다. 입구가 뒷골목에 바로 닿는 집 현관을 들어서는 모습들. 낭만이 남은 곳, 내가 있을 만한 곳이라 웃는 와중. 한편에 걸린 가난한 자책이 방울방울 맺혀서 떨어지는 순간들. 물 가득한 방 안에서 투명하게 질식하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린 날처럼 맑은 눈이 천천히 흐려진다...
"웡! 웡!"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회색 개는 한 번 빤히 바라보곤 일어나 천천히 돌아선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디며 걷는다. 하나, 둘, 셋.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다시 한번 "웡!" 타박하는 기색 없이. 반응할 새도 없이, 다시. 늘 눕던 자리에 닿아 배를 깔고 눕는다. 영문을 몰라 바라본다. 이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턱 밑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제야 눈가가 젖어 있었던 걸 알았다. 잠시 고개를 떨궜다. 이내 흔들며, 눈가를 닦아 냈다. 감사를 전하려 합장하여 고개 숙이곤,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열기가 아지랑이로 피는 길을 따라. 내가 가야 할 곳으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