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산비둘기 키우기.

by 지음

최근 시들해졌지만 신촌은 번화한 곳. 대다수의 길이 평탄하게 뻗는다. 언덕과 언덕 사이의 개활지를 개발한 신촌의 로터리엔 5개의 큰 길이. 연대 앞으로도 강을 서북으로 잇는 길이 광활히 뻗어 있다. 이 모든 "큰"길 중 유독 어울리지 않게 좁은 길은 문학의 거리뿐이다.


신촌역과 연대 앞을 잇는 이 길은 두 언덕 사이의 공간에 짓느라 덩치가 쪼그라들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의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결국엔 경사진 골목길이 있다. 나의 집은 (정확히는 월세 방이지만) 그중 높고 완만한 언덕에 있다. 발치 아래에 터널이 지나고 경의선 열차가 지나다닌다. 돈이 많으면 높은 빌딩에, 적으면 높은 땅에 살게 되는 서울의 법도를 충실히 따른 탓이다.


하여 집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 매일이 너무 길고, 나를 지치게 한다. 운동을 한 날은 "때론"에 해당해, 더욱더 그렇다. 토요일은 운동이 우선인 날. 하체 운동을 마친 나는, 더 지치는 언덕길을 달팽이처럼, 천천히,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서쪽으로 하강하는 방향의 언덕, 등 뒤로 지는 태양이 무게를 더해 느릿하던 걸음이 멈춘다. 순간 경계하듯 울려 퍼지는 소리.


"구굮~ 꾸꾺! 구굮~ 꾸꾺!"


산 비둘기 소리다. 놀라 두리번거리니 멈춰 선 옆, 아담하게 솟은 나무 위에 녀석이 보인다. 나를 밀어내느라 지른 소린 줄 알았지만 녀석은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낮은음의 구굮과 옥타브를 뛰어넘은 꾸꾺! 의 소리를 반복해 어딘가로 퍼트릴 뿐이다. 그냥 비둘기보다 훨씬 예민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녀석을 생각해 더 천천히 벽으로 기대어 선다. 달팽이도 느려서 놀랄만한 속도로.


피곤하기도 하고, 마침 소재가 고갈 난 비둘기 글을 위한 관찰도 할 생각으로. 툭! 하고 벽에 등이 닿을 때에 이번엔 또 다른 곳에서 구꾹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나는 첫 비둘기의 반대쪽 벽으로 기대어 섰는데, 그것이 다른 비둘기의 심기(?)를 건드린 듯했다. 번갈아 울어대는 산 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음만 허둥대다가 놔버렸다. 뭐 어쩌겠어, 네들이 뭐 어쩌기야 하겠어? 나도 다리가 아프다고...


불편한 심기에 똥이라도 싸버릴 까봐 걱정한 것과 다르게 벽 뒷둘기와 앞돌기는 평화롭게(?) 울기만 한다. 뒷둘기가 좀 더 빠른 템포를 가진 것이 무언가의 표현인가 의심해 보다 그만두기로 했다. 과도한 이입인 거 같아서. 화가 나서 똥을 싸거나, 오줌을 갈기는 것 같은 일은 괄약근이 있는 인간이나 가능한 표현방법. 조절할 것이 없어 나오는 대로 싸는 조류에겐 해당 사항 없음이다.


맞으면 운이 없었다 생각하라던 생물과 친구의 말을 진실로 둔다면, 나는 과한 인간화를 들이미는 중이었다. 이후로도 꽤 오래, 하체 운동 루틴 조절과 해야 하는 일. 어제 학생상담에서의 작은 실수들까지 곱씹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잦아들었다. 비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울음소리는 산 비둘기의 시그니쳐. 나는 꽤 많은 수의 산 비둘기를 들어왔다고 자부했지만, 그 소리가 각자의 톤과 높이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소리가 들려오면 '산비둘기!'라는 단어 위에 고정시켜 두고, 모두가 같은 음표로 표기된 악보를 보고 내는 같은 소리처럼 인식해 왔다.


절대음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그만큼의 관심과 인지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앞 뒤돌기의 소리 사이엔 굵고 맑은 톤의 차이도 있었고, 음의 높낮이에도 미묘한 공간이 있었다. 두 개의 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나는 억지로 넓혀진 인식의 공간이 있음에 놀랐다.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납작한 나의 인지 안으로 밀어 넣었을까. 하는 섬찟함과 함께.


두 언덕에 밀려 좁아진 차도, 보다도 얇게 차 다니는 길 옆에 달라붙은 인도. 그 위를 걸어 다니다 나는 얄팍한 사람이 되었나 보다. 일주일 중 7 일을 문학의 거리 위를 달려 놓고도, 하루나 이틀 축제 하느라 도로를 차지한 것이 빌어 까지 먹을 일인가. 욕지기를 서슴지 않는 기사의 말에 멋쩍게 '불편하죠' 하고 말아 버렸던 나.


걷는 게 죄 진 것도 아닌데 밀려남에 꿈틀도 하지 못했을까. 세상의 순리대로 밀려나고, 세상이 보여 주는 대로 욕망하기 싫었다, 사실은. 발버둥 쳐도 닿지 못할 것들을 위해 대다수의 시간을 내어주기가 너무 싫다. 다양성의 목소리로 각자의 노래를 부르는 산 비둘기에게 5분을 내어주지 못하는 삶. 이어 가자면, 20년의 대도시 생활 전체를 뒤집어 한없이 늘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상념들.


안다는 것이 슬픔으로 번지기 전, 적절하게 멈춘 건 강력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다보는 건너편 집(아마도)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다 멈추어, 사나운 눈매를 보이는 차가운 마음이 누군가의 온전한 흐름을 만든 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 아쉽다. 이게 이 도시의 방식인지도 모르지만.


무거운 발길을 어기적거리며 걸어, 마저 오르는 동안. 불가능한 상상을 조금 해봤다. 나도 창틀 앞에 산 비둘기를 키우고 싶다고. 마음속 미움도, 세상의 편견도 떨치고 오직 자연 자체의 귀여움과 난폭함을 감당하며. 녀석이, 오늘과 내일에 다른 높낮이로 운다면, 한참을 들으며 그의 마음을 살피며. 나는 또, 새로운 편견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하며 작게 한숨을 쉴 것이다. 넓어진 음색 사이에서. 차마 식지 못한 다정을 쥐고서.



outro...

그때, 저를 빤히 바라본 아주머니. 이상한 위치의 벽에 기대 서있다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간 수상하게 보였을 것이 분명한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어서 쓴 건 아니지만. 변명을 남겨봅니다. - 신촌 어귀에서

지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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