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 년의 여름. 양자역학에 찌들어 앞마당 신촌 나가기도 꺼렸던 이가 어째서 사당역을 지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감정을 적느라 배경 정보까지는 정확히 기록하지 못했나 보다.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단념의 마음. 다시는 함부로 선의의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다 식히지 못해 미지근하게 날이 선 마음이다. 두 개의 온도가 다른 열원을 가진 감정. 함부로 식지도 막 뜨거워 지지도 못하게 담금질되다 무늬 같은 결이 생겼다. 모순된 마음이 오래도 살아남았다.
선명하게 남은 기억들은 다음과 같다. 파란 여름 셔츠를 입은 나는 퇴근 시간임에도 앉아 기분이 조금 좋은 상태였고. 옆의 옆인가, 그 옆인가에 머리가 벗겨진 초로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갓 60이 됐을 법한 모습으로... 그러니까 난대 없이 등장한, 반은 부랑자 같기도 하고 반은 도인 같기도 한 막대 든 아저씨의 "거 젊은 사람들이 말이야, 힘을 써야 나라가 잘 굴러가지. 늙은이들이 경로석으로나 가지 이게 뭣 하는 짓이람."이라는 말의 젊은 사람은 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앉아 있는 나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고, 일반적인 대명사를 지칭한 것 같았으며 따지자면 힐을 신고 버티고 선 회사원 누님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뭐 흔한 지하철 풍경이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꺼떡이던 몸을 홱 틀고, 그가 대머리 아저씨 곁으로 붙어선 것엔 나도 적잖이 놀랐다. 중얼중얼거리던 말을 점점 소리를 키우며 지껄였다. 절묘한 거리로. 시비를 걸지만 치진 않는 위치에서 위협하고, 한 대 맞기를 원하는 사람 마냥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경로석에나 있어야 할 양반들이 여기 있으니까 나라가 이렇다는 유일한 논조를 미세하게만 변화시키며. 그 상황에서도 나는 되도록 내 일이 아니길. 그냥 말의 시비로 끝이 나겠거니... 하며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몸이 순간 튀어 나간 것은 그다음 장면. 시비를 참지 못한 대머리 아저씨가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일어서던 때였으니 늦었다면 늦었고, 애매하다면 또 애매할 타이밍인 것은 맞긴 했다. 어지간하면 그 참견하는 성질을 좀 자제하라는 동기 누나의 교육이 효과를 발휘했던 탓이다.
제주도에서 상경한 나는 조금 촌스럽지만 너무 따듯했고. 몸에 베인 온도대로 행동했다. 짐 든 사람들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고, 쉽게 자리를 양보했다. 내가 사는 기숙사 지척에 살아 등, 하교 메이트가 된 누나는 그때마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느냐고, 네가 자리를 양보하면 내가 모르는 사람과 붙어 앉아 가지 않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들. 동기들 사이에서 해사한 성격으로 다정함을 드러내던 누나의 말 인지라 울림이 컸다. 그것이 서울식 따듯함의 표준이구나... 하고 조금씩 받아들였다. 지척에 한강이 있는 동네에서 그것도 모르는 촌놈을 데리고 다니며 서울을 알게 해 준 다정함을 어찌 뿌리치겠는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안타까운 듯 외면하는 것이 서울의 기본 온도라는 말도 사실이었고...
여하튼, 당시 상황이 급박하게 느껴져 툭. 튀어나간 거라, 아차!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이었다. 그저 선의로 중재를 하려고 나선 표정. 헤실하게 웃고 있었다면 그건 겸연쩍음과 촌놈의 웃음 사이의 무엇이었지 절대 비웃음은 아니었다. 화난 사람이 그 미세한 차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겠지만.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는단 말은 있지만, 책을 내리칠 수 없다는 말은 없어서일까. 웃는 얼굴로, 둘 사이의 공간에 아이고! 여기서 싸우시면 안돼요!라고 하는 내 머리 위로 뭔가 번쩍였다.
잘 보니 들고 있던 책으로 내 정수리를 내리쳤다. 아프진 않았지만 어이가 없었다. "너도 한패지 이 새끼야!!"라는 말을 하는 그 면상이 어찌나 같잖던지... "아이씨, 말리려는 사람을 때리고 그래요." 하고는 쏘아보는 내게 대머리는 끊임없이 제 화를 퍼부었다. 논조가 너도 한 패일 수밖에 없다는 한 가지 패턴이었다. 아!... 잘못 걸려든 것 같았다. 내가 느끼기엔, 부랑자와 그가 한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다. 한 문장만 돌려 말하는 패턴 하며. 기분 더럽기도 하고, 이러단 화가 나서 쳐버릴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하려 돌아섰다. 그런 내 팔을 잡아채가며 한패 새끼 신고 하겠다고 할 때는 정말.
눈에 불이 번쩍 할 때 끼어든 것은 아까 그 부랑자였다. 이 사건의 발단이기도 한 그는, 내가 말리자 슬쩍 지하철 반대편 차문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다시 끼어들었다. 젊은 사람은 가게 하고 나랑 해보자고 달려드는 그를 더 이상은 막을 기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가 대머리와 엉겨 붙은 사이에 생겨난 틈을 타 손을 벗겨내고 다음 정거장에서 뛰어내려 버렸다. 더러운 것을 털어 버리듯. 어이없는 이유로 맞고 시비가 걸리는 것도 싫었지만, 진짜 한패인가 하고 쳐다보기만 하면서 몇 정거장을 관망만 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경거리 되는 것까지 기분이 나빴다. 누구 하나 나서질 않는 서울 놈들. 집으로 돌아와, 기숙사 같은 방을 쓰는 고향 형님들과 맥주 한잔을 할 때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새운 밤. 나는 다시는 아무 데나 손 내밀지 않겠다는 말을 식지 않은 분함에 남겨놓았다.
오늘이, 어쩌면 이 꼬마 숙녀에겐 그런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악명 높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평을 향하고 있었고, 십칠 년의 세월은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외면함이 편하면서도 뭔가 소외된 느낌,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이 들었었다. 이젠 아니지만. 누나의 당부를 떠올리며 개입하지 않길 반복해 온 시간들. 오래 입어 익숙해진 사슬 갑옷처럼 나를 두르고 있다.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할 정도로 거친 말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관심 두지도 않았지만, 삿대질을 넘은 드잡이질이 되었다. 동행인들은 말리기보다 부추기듯 온도를 올려나간다. 시비의 초창기 즈음에 나는 이미 버즈 이어폰을 양 귀에 꽂고 볼륨을 높여 버렸는데, 그것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격화되어 간다. 하얗게 질려버린 소녀의 얼굴. 분쟁을 반사시킨 얼굴의 표정 만으로도 전해지는 무시무시함.
프로 오지라퍼. 혹은 남쪽 사람 기질이란 건 결국 사라지지 않는 걸까. 딱, 내가 마음을 닫았던 세월만큼 살았나 싶은 소녀를 외면하기 어렵다. 비정규 강사직도 엄연한 선생의 마음을 품어야만 적성에 맞는 직업. 원인을 직업윤리 쪽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흔들흔들하며 점점 소녀가 앉아 있는 자리 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그들의 운동량을 막기 위해 몸이 움직였다. 아주 오랜만에. 본능적으로. 두 사람의 서있는 사람을 박자를 타며 건너뛰어 소녀의 사선 방향 빈자리에 섰다. 등으로 소음원들을 눌러 막아섰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살아 움직이는 악몽이 더 이상 다가올 수 없도록.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무뎌졌어도 같이 듣는 입장에서 스트레스로 쌓이던 그 소리가. 등을 돌려 기꺼이 품을 내미는 형태가 되자 견딜만해진 것이다. 오히려 마음속에서 은은하게 샘솟는 기쁨이 일었다. 간질 하게 다가오는 기분이 마치, 우리 아이들에게 딱 필요한 경험을 전달해 주었을 때 느껴지는 것 같은. 보람찬 행복감. 이것 보다 더 거칠게 밀려든다 해도 다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몰려온다!!! 빠와 아아 아! 아! 그건 그동안 해온 스쿼트 덕분이려나. [1] 어쨌든 그런 감정이 심장에서 온몸으로 퍼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실제로 좀 더 압력을 가해오는 그들을 등으로 한 걸음 밀어내 버릴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 먹이를 앞둔 비둘기들 마냥 보는 이를 아랑곳 않는 적나라한 분쟁에서 어떻게 춤춰야 하는 지를 깨달은 것 같다. 좀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그리고...
이런 촌스러운 마음을 숨겨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며 살았지만... 어쩔 수 없더라 누나. 난 이게 마음에 더 들어.
[1]: 이 자리를 빌려 자주 화장실을 이용한 연희동 사러가 마트의 임직원 일동과 그 바로 앞의 Flex PT! 성심 성의껏 나의 근육을 피어나게 해 주신 정 관장님께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