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지기 전의 서늘한 바람이 불자,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아니 매미가 울기 시작하자 바람이 언덕 위 작은 공원으로 몰려든 걸까. 마침 지나는 경의선 기차 소리가 더해져, 여름은 아직 투명한 파란색이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통로까지 색감이 쫓아온다. 살랑인다.
틈 사이에서 자라는 풀은 원래도 좋아한다. 골목길 공원으로 이어진 길. 골목길 중의 골목길이라 좁아터진 위에도 초록은 작게 피어있다.
오래전 '세멘'을 발라 갈라진 틈 사이로. 한 낮에나 들여다보는 햇살. 그것마저도 여름엔 풍성해서일까, 소외된 줄도 모르고 푸르름이 흥건하다. 부디 오래, 사람들이 발 딛기를 조심하기를, 이파리를 피해 걷기를.
여름 물색으로 새로 칠한 건물 앞 주차 공간 위로, 잠자리 연인이 난다. 하트 모양인 걸 보니 신혼 인지도 모르겠다. 잠자리에게도 엔조이란 몸동작이 있을까. 낮게 날며 바닥을 스치고 오르는 산란의 동작들. 스쳐 지나가 버릴 생의 정념들. 착각으로 페인트 위에 낳아져 버린 알들이 살 길은 없겠지만, 태어나서 겪는 수모는 인간보다 적었을 터.
그게 위로가 되나.
시점만 달라질 뿐인 애도는 다른 궤적을 따라 차원이 다른 감정으로의 길을 건너고. 지속적으로 갈망하는 삶보다, 태어나지 못함을 위로 치는 건. 모두, 우리가 태어난 이후의 말을 다루기 때문. 몸짓 이전의 언어. 자연의 모습에 가까운 의사소통에선 어떤 것이 더 비극일지 다투어 보아야 알 일인지 모른다. 인간의 쨍알거림이 귀에 박혀, 음성이 아닌 소리를 듣는 청각 세포는 이미 소실되었지만...
되찾을 수 없는 것을 되돌이켜 듣는 것은 미리 쌓인 축적에 의한 것. 청각세포 소실로 우린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음역대를 들을 수 없고. 어렸을 적 미리 들었던 노래가 지금 처음 만난 노래보다 풍성하게 재현된다는 것을. 연구 결과가 아니었어도 난, 자연히 알고 있었다.
들어 본 적 없는 소리, 언어 이전의 신호를 '나'로는 듣지 못한다는 확신. 이미 견고하고 안정된 책상에 , 다섯 번째 다리를 다는 것도 사족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어떤, 어차피 흔들리지 않을 것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지지력이 올라갔을까? 그런 지지력들이 모여 옴짝달싹 못하게 구조가 튼튼해져. 내가 부딪치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단단하고 단단해지다 딱딱하게만 변했을까.
걷자. 원망하기 전에 일단 걷자. 표현되지 못하고 안에 갇힌 울분은, 그를 품은 용기만 괴롭게 할 뿐이다. 바깥에 내보낸다고 누가 들어주는 것도, 무엇을 바꾸는 경우도 잘 없지만. 튀어 다니다 사납게 굴기 전에 달래야 모서리가 우묵해진다. 그런다고 서 말이나 꿰어 쓸 것도 없어 왔지만.
어제의 딱딱한 상담이 남긴 부스러기들은 아직도 모서리가 날카롭다. 아이가 미래로 향하는 길에서, 우린 뭐가 두려운 걸까. 채 태어나지 못한 학점을 예단하며 무엇을 주고받은 걸까. 아니 애초에 판단과 평가 만으로 이루어진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 그 무엇도 의미가 없는 몸짓이었을 뿐일까. A0가 조금 안 되는 평점이 고민되어 학기를 미리 포기하겠다는 말을, 나는 안타까운 눈빛과 끄덕거리는 고개로 듣고만 있었다. 듣고 있어야만 했다. 선생은 이제 아이에게, 내면의 무엇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6급 대우로 시작하는 공무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말을 했다간 아이에게 목매단 부모의 감정 전체를 대면하는 불편함이 생길 뿐이다. 너무 좋을 것도 없이, 나쁠 것은 절대 달라붙지 못하도록. 말을 고르고, 스스로의 사랑을 말려 두는 것이 살아남기에 유리하다.
괜찮을 거라고, 너에겐 다른 재능이 눈부시게 빛나니. 그걸 믿으라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튀어나왔던 말을 억지로 잡아둔 탓에 길게 뻗어, 뾰족하게 굳어버렸다. 스스로도 증명하지 못한 길이다. 점수로 환원되지 않은 재능. 학교의 이름으로 보여지지 못한 능력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바라봐 주지 않는 긴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
아니 견뎌내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내가 난산 끝에 태어나지 못한 논문을 아직도 붙잡고 숨죽여 지내듯이. 살아남는 법과, 살아 내는 것은 얼마 만한 굽이를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 긴 강을 사이에 품고 있다. 맨 몸으로 건너는 일은 권할 만하지 않아.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자리였어도, 나는 진심으로 침묵을 지켰을 수도 있었다. 그걸 알기에,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다 생각했을 법하지 않은 긴 문장을 이 똑똑한 아이에게 외우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방법엔 간섭해도, 방침엔 닿아선 안 되는 법이다. 그래서 내려놓기.
내가 발 디딘 곳의 아스팔트 한 톨 뜯어내지 못했는데, 쓰러지듯 의탁한 곳에서 도덕을 말할 염치는 없었다. 그저, 주억거리며 받아 든 상념들을 담고. 길게 걸으며. 태어나지 못한 마음에 대해 애도할 뿐이다. 아이에게 보내려 써둔 편지조차 깊숙이 감춰 두고선.
뱃속에서 십 년을 안고도 태어나지 못한, 아기 울음소리가 고동친다. 저를 닮은 것들만 만나면, 자신을 닮은 고통을 안다는 듯이. 빛도 본 적 없는 주제에 온몸으로 요동친다. 내 심장소리 보다 큰 그 소리 때문에, 나는 내 가슴이 뛰는 줄만 알고 걸었었다. 짝도 없이 알을 낳는 잠자리처럼. 수정된 적 없는 알을 낳는 암탉처럼.
먹혀서 뭐라도 되는 달걀마저 부러운 마음으로. 걷는다. 뒤뚱뒤뚱. 데구르르 다시 뒤뚱뒤뚱.
이런 부리라도. 작은 풀 이파리를 물고, 양지바른 곳까지 걸어갈 수 있다면. 아니 걸어가도 된다는 허락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이 큰 도심을 건너기 위해 끝까지 갔을 텐데. 퇴화된 날갯짓으로, 열기를 식혀주며, 날지 못함을 한탄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 어디도 딱딱하게 단절되어 갈 수가 없다.
멀리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늘 쪼던 돌 위로 다시. 견고해 자욱조차 남지 않은 돌을 깨진 부리로 쪼아대고 있을 뿐이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땀도 별것 아니야. 그저 가슴이 조금 많이 시릴뿐.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게, 듣지 못할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 헛된 시간 덕분인 걸까. 하루 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