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이 귀여운 것

by 지음

반짝이는 것은 모두 별이 될 수 있을까. 그늘에 있어도, 아스팔트에 반사된 햇살이 눈부시다. 38도라는 기록을 세운 날, 빛은 더움에 따가움을 더해 과인지 되고 있었다. 이런 날, 나는 왜 한 낮에 길가에 있는가. 그것은 오늘이 방학식을 한 날이었기 때문이고, 강사인 탓에 오래 학교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뙤약볕을 뚫는 소녀들이 이 거리에 있는 이유와 거의 같다. 방학식 끝난 학교의 오후 일이란, 보통 정규직 선생들이 마무리 하면 될 일들 뿐이니까. 주어진 자유가 기꺼운가, 비릿한가 하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혜화동의 번화한 길에서 나는, 메모를 적고 있었다. 둘러보다 발견한 이야기와 발상은 떠오른 자리에서 기록해야 남는 법. 햇살을 피하지 않고 서서 쓰는 시야 가장 왼쪽에, 그녀들은 나타났다. 교복과 가벼운 가방. 가로수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 방학식을 일찍 마친 후의 쇼핑일까? 하는 찰나에 가방에 다는 인형들이 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눈을 빛내며 옆 가게의 네일아트 샘플을 구경 하다간, 핸드폰 케이스 가게로 들이닥친다. 꺄악! 하는 소리와 함께 툭. 성큼성큼 건너편을 향해 나아간다.


나를 스치듯 지나가는 끝에 인형들이 가득한 가게가 있다. 나는 왜인지 얼어붙는다. 귀여운 것을 위해서. 그것을 획득 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거침 없는 움직임. 태양의 열기가 가득한 케냐의 초원. 티비에서 본 수사자의 마지막 사냥 장면이 떠오른다. 한 가족의 목숨이 달린 사냥만큼 집요한 열정이 소녀들에겐 있어 보였다.


돌아 보게 만든다. 중학교 1학년에 이미 180에 가까워진 키. 약간의 운동으로도 종아리를 붙인 것만큼 굵어진 팔뚝. 툭 튀어나온 뱃살. 타고난 것들이 자연스레 귀여움에 가까워지기 어려운 삶을 살았다.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티를 내기 힘들어 좋아할 기회도 없어진. 그런 의미에서 귀한 관찰 대상을 만난 셈이었다. 귀여움에 대한 절실함은 몰라도, 그것을 절실히 여기는 이들의 행동 관찰을 통해서 그 갈망의 근원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쓰던 글에 대한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짝 사뿐 옆으로. 천천히 게걸음을 걸었다. 소리가 닿는 곳까지.



"&*#^)@& !!..!"

여고생의 언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실례를 용서해 주시길. 빠르기도 빠르거니와 그 궤도가 다른 언어는 대강의 맥락조차 받아 적기가 어렵다. 알 수 있는 것은 감정의 파편들, 그 전달을 위한 표정 정도 인데. 그들의 표정은 환희에 차 있었다. 귀의 모양이나, 입가의 표정의 귀여움 설명. 파란 옷을 입은 것과 빨간 옷을 입은 것 사이에 뭐가 더 맘에 드냐는 그들의 대화는 바라던 이상을 실물로 접하는 이의 감정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나도 마음에 드는 귀여움이나, 사랑스러움 이라는 것을 느끼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환희에 차거나 기뻐할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자제 당한 표현은, 그 표현이 종국에 만들어갈 환희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걸까. 타고난 귀여움을 느끼는 힘. 그 근육의 크기가 다른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맘에 드는 인형을 나눠 든 소녀들은 쏙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쓰던 글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기록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고민하며. 벌을 서듯 한참을 빛으로 두들겨 맞는다. 발갛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뜨겁다. 탈출 하고 나서 맞은 빗물 같은 것이었을까? 쇼생크를 나온 앤디가 내리는 비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비를 맞이하듯. 도망치는데 유리 할 수 없는 비 맞은 몸. 갇혀있었기에, 비 맞을 일조차 없는 삶의 끝. 온몸에 떨어지는 축축한 촉감은 오히려 자유로움의 상징처럼, 바깥에 닿은 실감처럼 그에게 느껴졌겠지.


학교에서의 그들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려 본다. 시간을 알리는 종, 성적을 알리는 성적표, 미래를 말아 놓은 듯한 입시. 아이들은 본성에 와닿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일종의 갇힌 삶을 산다. 그 한가운데서, 맞이한 여유. 그 틈에서 찾아낸 마음에 닿는 귀여움. 오랜 어둠을 견디고 난 뒤의 햇살 같았을까? 그랬다면, 그러했다면. 오늘처럼 잔뜩 맞는 햇살의 반짝임을 나는 벌이라 말하지 않았을 테다. 환희와 기쁨의 단어를 써 내려갔겠지.



귀여운 것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가? 그것은 일상의 가운데서 이유 없이 반짝인다. 무의식의 영역에 직접 맞닿는 감촉으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온다. 갇혀있던 마음을 꺼내어, 현실 속 물질의 질감에 붙들어 쥔다. 천천히 그 귀여움의 형태대로, 좋아하게 된 첫 순간과 비슷하게 마음을 밀어 편다. 혼란도, 슬픔도. 절망했던 마음도. 끌고 와서는 자신의 물성 안에 베어 물고, 천천히 매만져 현실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견디어 준다.


밥을 굶어 죽는 일 보다는, 마음이 눌려 죽는 사람이 많은 요즘의 한국. 마음에 드는 귀여움을 찾는 것이야 말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유행인 가방에 다는 인형. 모든, 소녀 소년들이 가방마다 달아 놓은 귀여움의 버거운 크기가 이해 될 것도 같다. 해야 할 일들 사이의 각박함에서 숨을 틔워 주는 것이었겠지.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어딘가를 여기에 툭 떨어트리는. 쓸모없지만 귀여운 것의 쓸모는 이 시대의 어떤 고귀한 문장 보다 숭고하다 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진 이를, 무의식중에 살아나게 하는 귀여운 힘. 읽을 필요도, 되새길 필요도 없이 헌신하는 아름다움. 구태여 태양을 맞아가며 문장을 기록한 것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나의 발견과 기쁨을 볼 수 있는 기억으로 옮겨 심는 일이니까. 귀여운 것을 느끼는 방법에서 소외되어 조금 귀찮은 일을 해야 했을 뿐. 같은 태양 아래 우리는 각자의 생의 감각을 되살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비슷한 궤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가는 길. 나는 좀 더 내가 느끼는 귀여움에 관대하기로 했다. 몇몇 가게를 맴돌다가 주황, 노랑으로 꽃피는 그림이 담긴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평소 같지 않게 가격표도 보지 않고 샀다. 간질이며 느껴지는 기쁨. 귀여움을 내 것으로 만들어 느끼는 작은 희열.


학교의 내 책상 위. 노트북을 올려 놓은 책꽂이의 귀퉁이에. 이 책갈피를 올려 두어야겠다. 귀여움이 나의 머무름을 부끄럽지 않게 지켜주도록. 언젠가 천천히 그 감각이 흩어지고 올려둔 이유를 잊어도, 괜찮은 것일 테다. 어떤 하루를 살게 해준 별 이 되었을 테니까. 또, 반짝일 날도 있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햇살에 무언가 반짝여, 문득 바라본다. 앞서 걷는 이의 서류 가방에, 희고 갈기 긴 말 인형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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