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민다고, 슬픔이 물러가나요

by 지음

창밖엔 여름을 흉내 낸 봄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햇살이 바닥을 타고 흘러 발끝 근처까지,

느리게 밀려왔다.


아직 바닥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부족한 온기가, 있는 그대로 좋다.

따뜻하게 해주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빛 깔.

마음이 느슨해진다.


커피잔을 들었다 그냥 내려놓는다.

오늘의 빛은 이 만큼만.

향도, 맛도, 가득 찬 슬픔을 밀어낼 따스함도,

아직은 이 정도로만 밝은 것이 좋겠다.

너무 빨리 너를 밀어내 버리는 것도 비정한 일이니까.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와 상관없이

내가 느낀 대로의 너로서 퇴색되게 두고싶다.


해가 지듯 느리게, 뒷걸음을 걷자.

충분히 이별할 수 있게.



사진: UnsplashMartin Ba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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