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포르투갈 리스본
새벽 다섯 시. 눈이 저절로 떠진다. 조금 나아진 셈이다. 신기하게도 엊그제는 새벽 3시, 어제는 4시. 너무 일찍이라 한 시간쯤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창 밖으로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창을 열어 오렌지빛 거리를 감상한다. 어느덧 포르투갈에 온 지 5일째다. 커피는 아직 남아 있는데, 식수가 떨어졌다. 마트가 여는 대로 물을 사러 가야지. 날씨는 5일 내내 좋다.
거의 3일 동안, 잠을 설쳤다. 이 숙소는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 갑자기 숙소의 현관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어제는 꿈에서 ‘계세요?’라는 환청을 듣고 한밤 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해는 7시 반쯤 뜨고, 한국은 여기보다 9시간이 빠르다. 해가 뜨기 전 거리를 걸어본다. 포르투갈의 새벽 거리를, 오래된 가로등 밑을, Escolas Gerais라는 이름 모를 길을 걷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너무 당연해서 가끔 놀라는 사실. 인생은 상상도 못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와중에 동이 텄고, 나는 어느 길목에서 분주히 시장을 열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시장의 이름을 정확히 모르니, 그냥 알파마 시장이라고 하겠다. 상인에게 물어보니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장이라고 했다. 그릇, 음반, 옷, 신발, 장신구, 인형 등을 좌판을 벌여놓고 판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물건들도 많다. 저런 물건을 누가 살까? 정말 팔려고 가져 나온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물건들도 많지만, 그 물건을 하나하나 진열하는 손길에는 정성과 세심함이 묻어 있다. 나의 관심사는 역시, 컵. 1유로에 마음에 쏙 드는 컵 몇 개를 샀다. 물건을 사는 나보다 파는 사람들 표정이 더 흐뭇해 보인다. 그들은 마치 물건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눈요기를 하고, As Marias com chocolate라는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Galao(라테) 두 잔, 나타(타르트), 모차렐라 파니니를 시켰는데, 고작 5.4유로가 나왔다. 빵과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리스본은 입장료가 저렴한 천국이나 다름없다. 커피는 포르투갈에 도착해서 3일간 마신 커피 중에서 제일 맛이 좋았다.
집, 이제는 숙소보다는 집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나는 적응이 빠른 인간이자, 망각에는 일인자다. 집 바로 옆에는 코펜하겐이라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코펜하겐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투박하고 큼지막한 빵 하나를 샀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닌 여점원은 빵을 내 손으로 직접 집게 했고, 혹시 잘라줄 수 있냐는 말에, 당신의 취향에 맞게 잘라줄 수 없으니, 직접 잘라먹으라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참고로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수도이다.
일기가 밀리면, 기억에 의한 글쓰기를 할 수 없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면서 글을 써야한다. 나는 사진에 의해 전개되는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쩐지 생동감이 떨어진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글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