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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Sep 08. 2024

#5 똑같은 질문

2019 포르투갈 리스본

낯설던 골목들이 익숙해진다. 여기를 돌면, 뭐가 나올 거야 생각하면 그게 나온다. 피게이라 광장 근처에서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다. 일단, 가격대가 5유로 내외다. 대구와 정어리 요리가 리스본의 대표 메뉴이자 흔한 메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12시 5분 전인데 사람들이 식당 주위에 북적인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고, 중년 남자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 어깨가 닿을 듯이 앉아 있다. 식당의 한쪽 벽면에는 갖가지 종류의 와인병들과 돼지 뒷다리 몇 개가 진열되어 있다.


옆 테이블의 남자들이 라벨이 없는 와인 한 병을 시키길래 작은 병을 따라 시켰다. 테이블 사이사이에 놓인 빵은 메뉴판을 슬쩍 보니 개당 0.4유로였다. 대구찜과 정어리 구이를 시켰다. 다른 쪽 테이블의 노부부가 올리브를 슬쩍 내민다. 같이 먹자고. 포르투갈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듣진 못하겠다.


투박한 요리가 나왔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할머니 한 명뿐이다. 혼자, 50명 정도 되는 인원의 요리를 뚝딱 해내는 것이다. 하우스 와인이 맛있다. 홀짝홀짝. 포르투갈 와인은 도수가 조금 높은 편인 것 같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요리에는 단맛이 배제된 듯, 대구찜도 정어리 구이도 짭짤 하다. 전혀 간이 되지 않은 감자로 전체적인 입맛의 균형을 맞춘다. 옆테이블은 디저트와 커피를 시킨다. 배가 불러서 커피만 시킨다. 식당을 나올 때, 다해서 15유로를 냈다. 한 명당 7.5유로 꼴이다. 와인, 식사, 커피까지... 포만감과 함께 은근한 미소가 저절로 얼굴에서 피어오르고 돌아다닐 힘을 얻는다. 여행지 괜찮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을 때의 효과다.

거리를 걷는다. 목적지는 당연히 없다. 괜찮을 것 같은 식당이나 카페에 눈도장을 찍어둔다. 리스본은 낮보다 오히려 밤에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마리화나를 중얼거리는 사람도 낮보다 밤에 많아진다. 그들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언가에 대해서 잘 모를 때 우리는 평소보다 더 당황하고, 그런 틈새를 노리는 악당, 조무래기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코르메시우 광장 쪽으로 걸어본다. 강과 닿아 있는 하늘이 점점 연보라 빛으로 변한다. 모호함 속에 아름다움을 본다.

빨래를 돌리고,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빵을 토스터에 굽고,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린다. 평소의 일상과 다름없다. 하지만 창 밖은 포르투갈이다. 여행은 왜 하는가?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평소와는 다른 풍경, 소리, 언어, 음식들을 경험하고, 그래서... 무언가 다른 것을 느끼고... 그래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안과 밖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바깥에서 보기만 해서는, 그럴 것이다라고 치부해 버려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여행을 한다. 한 곳을 떠나면 우리는 다른 곳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고,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안과 만나게 된다. 여행은 경계이자,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안으로 얼마나 깊게 들어가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자꾸자꾸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설령, 그것이 무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느낄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풍요로워지고, 정신의 풍요는 괜찮은 선택과 삶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여행처럼. 나는 또 이렇게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말과 글들을 나열한다. 그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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