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죽이는 41가지 방법 - 비

by 전찬준

인간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집 생활이 어느덧 3년째다. 인간들은 숫자를 좋아하고 나이 따지기를 좋아하는데, 내 나이를 인간의 나이로 굳이 따져보자면 나도 이제 청년이다. 청년이라면 연애라는 것을 해야하는데, 나는 연애 감정이 어느 순간부터 저 아래서부터 밀려오지 않는다. 자고로 연애 감정이란 저 아래서 주체할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와야 정상이다. 그게 가끔 우리가 미친듯이 집안 여기저기를 우다다 거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그 감정을 못 느끼게 된 이유를 주인에게 묻고 싶지만, 주인은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고양이의 언어라는 것은 고도로 섬세해서 인간 따위가 평생을 연구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추측컨데, 얼마전 받은 일련의 수술이 문제의 원인 같다. 나는 그 수술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었는데, 내 친구 녀석들 중에는 그런 녀석들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다. 그래도 그게 있건 없건 간에 우린 여전히 친구다. 우리는 딱히 성별을 정해놓고 연애같은 걸 하지도 않고, 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우린 자유롭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서 언제든 어디서든 쉽게 같이 잠이 든다.


주인은 밤에 잠을 통 자지 못하는 것 같다. 이름 붙이고 정의 내리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은 그 증상에 불면증이란 이름을 붙였다. 인간들이 늘 병을 끼고 사는 이유다. 병은 이름에서 오는 것이다. 주인은 밤마다 잠은 안 자고, 아니 못 자고, 괜히 커피를 마신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펑펑 울기도 하는 걸 보면 역시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고양이들은 잠에 있어서는 전문가다. 밤낮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꺼운 이중 눈꺼풀로 언제든 어둠을 불러 올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밤을 좀 더 우리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움직인다. 방해꾼들이 낮보다는 적기 때문이다. 주인은 잠은 못 자면서 그렇다고 밤에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인간들은 어둠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은 고양이들과는 대체로 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어제는 비가 왔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는 나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주인이 집 문을 닫아두고 어딘가를 가버려서, 정말 싫어하는 비 샤워를 했다. 뒤늦게 들어온 주인을 향해 한바탕 퍼부었지만, 주인은 못들은 척하고 냉장고에서 건멸치를 꺼내준다. 그래도 주인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고, 남의 비위를 맞출 줄도 아는 인간이다. 비가 오면, 바닥이 따뜻해야한다. 그래야 몸도 좀 말리고 낮잠을 더잘 잘 수 있다. 웡, 보일러 돌아가는 반가운 소리가 들리고, 바닥이 따뜻해진다. 나는 곧, 잠에 빠져든다. 주인도 이럴땐 담배 대신 잠을 택한다. 그리고 괜히 내 배에 자기 귀를 갖다댄다. 내 작은 심장 소리라도 들어보려는 걸까?

keyword
이전 03화고양이를 죽이는 41가지 방법 -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