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거실에서 작은방으로 넘어왔다. 노트북을 펼치는 그 찰나에 나는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다 까먹고 말았다. 노트북 화면이 너무 밝아서인 것 같다. 이건 아주 잔인하지만 나에겐 일상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나는 거의 매일 머리없는 죽음을 목도한다. 새든, 쥐든, 심지어 도마뱀이든, 머리만 쏙 빼놓은 시체를 고양이 녀석들은 매번 우리 집 현관앞에 펼쳐 놓고 사라진다. 상쾌한 아침을 녀석들은 조금 비관적으로 바꿔 놓는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죽이는 방법이라든가, 골탕 먹일 방법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꼭 오랜만은 아니더라도 누굴 만나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 늙었어?”
나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할 대답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잘 모르겠다. 그런 말은 자기 계발서에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소설에서도.
'오늘은 내 남은 생애 중 가장 젊은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야 너는 앞으로 볼 너 중에 가장 젊어.”
'오늘은 여태껏 내가 살아온 생애 중 가장 늙은 나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여 너는 앞으로 볼 너 중에 가장 젊어.”
고양이들은 거울 같은 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더군다나 시계나 달력같이 성가시고 귀찮은 틀도 없으며, 현대인의 즐거움이자 가장 큰 속박이고, 아이들의 정신까지 쏙 빼놓는 스마트폰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서로 딱히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도 않다. 그에 비해 몸단장에는 꽤나 신경을 써서, 자주 몸 여기저기를 핥아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준다. 어떤 고양이 쇼핑몰에서 나는 리커(핥개)를 파는 것을 봤다. 인간이란 뭐든 따라하고 싶은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 판국에(고양이에 사족을 못쓰는 인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고양이들을 이겨 먹는 방법이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야, 새벽에 나가는 고깃배에 실어 놓고 오자.”
나 같은 연구를 하는 또 다른 친구 하나가 아침부터 기발한 생각이라는 듯이 전화가 왔다.
“들어오는 배로 돌아올 걸.”
고양이란 놈들은 대체로 그런 놈들이다. 그래서 방법이 계획적이면 안 된다. 최대한 우연에 의지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어느 날, 친구가 집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런데, 제 다리 하나 크기만 한 새끼 고양이를 보고 이 덩치 큰 흰 고양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털을 새우고, 하악질을 해대고, 새끼 고양이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고, 결국, 자기 방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현관 한쪽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반면, 새끼 고양이는,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었을까말까한 녀석이 집안 곳곳을 자기 세상인양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면서 누비고 다니며, 남의 사료통에서 사료를 집어먹고, 흰 고양이에게 계속 박치기를 해대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에 나는 내심 통쾌해하며, 아, 고양이에겐 역시 고양이구나 싶었다.
주인은 아주 쓸데없는 짓을 많이하는 인간이다. 특히, 조용한 시간이나 여유, 평화 등을 깨는데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털사이로 붉은 피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어린 고양이를 내 집에, 허락도 없이 데려왔다. 그래놓고는 아주 이뻐 죽겠다는 듯이 물고빨고 난리다. 나는 그만 심술이 났다. 고양이 세계의 사랑에는 속박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질서 같은 것은 있다. 그 질서는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고, 살아온 시간이 좀 많다은 고양이가 좀 젊은 고양이에게 강요나 설교를 하는 법은 없다. 어린 녀석이 내 집에 들어와 함부로 뛰어다니고, 밥을 훔쳐먹고, 내 잠자리에서 잠을 자도 그냥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단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건 아니다라는 선에서 날카로운 소리나 꿀밤 정도로 겁을 줄 뿐이다. 그래도, 불쾌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직 말도 못 하는 녀석을 그렇게 어미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질서에 위배된다. 고양이에게 학교는 없지만, 적어도 두 달간 어미의 가르침은 꼭 필요하다. 사냥 법과 점프하는 법, 인간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부분을 듣는 것이 전부고,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배워야 한다. 내 주위에는 귀 일부가 없는 놈, 애꾸, 꼬리가 잘린 놈 등이 숱하고, 그건 다 그들이 잘 배웠다는 표시고,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빗속에서 있는 힘껏 울어젖힌 기억과 희미하게 나를 들어 올리던 손의 온기 정도가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전부다. 나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못 배워 먹은 놈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배웠으며, 고양이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은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도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