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섹스를 좋아한다.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인간, 남자도 있을까. 섹스. 거의 평생동안 한 남자의 뇌 중앙에 자리잡고,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면서 끝끝내 다른 어떤 것에도 자리를 내어주려 하지 않는 괴생명체. 공용 화장실 벽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크고 진한 영단어(보통 X를 동반한다). 외우려 하지 않아도 'Fuck'과 함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영단어. 결국, 사랑처럼 반복과 실패를 통해 허상에서 일상으로 자리잡는. 요즘은 일상을 넘어 일회적인 것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섹스. 사랑없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어느 시기를 지나, 나는 섹스가, 삶이, 내포하고 있는 허망함을, 사랑만이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시기까지 왔다. 믿는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믿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내 섹스 라이프에 가장 큰 방해꾼은 고양이다. 애인과 한창 진행 중에, 애인의 긴 머리에 동요되어 앞발로 눈치없이 애인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놀이에 심취하는가 하면, 또 갑자기 내 발에 달려들어 자신의 앞 두발로 끌어 안고 뒷발차기를 열심히 하기도 한다. 녀석을 다리에서 털어내는데 신경을 쓰다가 집중력을 잃어 애인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한참 절정에 도달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싸늘한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고양이란 녀석이 어김없이 침대 맡 책장 위에 올라가 인간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우리의 섹스가 누구에게는 저렇게 하염없이 지루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나조차 싸늘히 식어버린다. 애인은 그런 녀석의 모습이 귀여워 섹스 중에도 고양이에게 다가가 그 부드러운 살갗으로 더러운 털뭉치를 가슴에 포근히 껴안으며 키스를 퍼붓는다. 그게 필요한 건 정작 난데...
주인은 자주 살갗과 목소리가 부드러운 여자와 레슬링을 한다. 나는 둘이 레슬링을 할 때 들리는 소리가 제법 신나서 나도 끼워달라고 주인의 발에 매달리기도 하고, 흔들리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까치로 착각해 사냥에 열중하기도 한다. 나는 그 어느 동물보다 열중하기를 잘하는 동물이다. 새를 잡을 때는 입으로는 새소리를 흉내내며, 모든 집중력을 온전히 새에게 쏟는다. 그 때 주변은 아주 캄캄해지고, 밝게 보이는 건 오직 새 뿐이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면, 저 주인의 난폭한 팔에 의해 침대 밖으로 내던져진다. 내 운동 신경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런 걸로는 내가 다치거나 죽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이 시대 우리 고양이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고양이 세계에서도 레슬링을 자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레슬링을 한다. 할퀴고 물고 넘어지고 구르고 으르렁거리고. 레슬링은 이 세계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오감을 단련하는데 아주 중요한 행위다. 레슬링을 잘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힘 조절과 상대방과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미숙한 초짜 고양이들은 너무 심하게 할퀴거나 물고,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써버려 제풀에 지쳐, 상대가 한창 신나려 할 때, 이미 기진맥진해진다. 주인의 레슬링이 딱 그 꼴이다. 그렇게 지루한 레슬링을 보느니, 차라리 나는 책장 위에 올라가 하품이나 하는 쪽이 낫다.
아직 힘이 남아있는 여자가 살며시 다가와 나를 안는다. 인간 암컷들은 수컷들에 비해 언제나 좀 더 능숙하다. 나는 어린 아이와 나이 든 남자는 일단 피한다. 주인이야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내는 사이지만, 아마 길에서 봤다면, 돌담 위에 앉아 지나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주인과 레슬링을 하는 여자의 냄새는 언제나 좋다. 여자의 냄새는 내가 자주 뒹구는 정원의 흙냄새 같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목의 전동 모터를 작동시키고, 앞발로 여자의 봉긋한 가슴을 꾹꾹 누른다. 그러면 여자는 괜히 얼굴을 붉히고, 여자의 체온이 조금 올라가는 것이 내 배를 통해 느껴진다. 그때쯤 주인은 여자를 뺏어간다. 상관없다. 바깥에는 인간들보다 월등히 체온이 따뜻한 친구들이 널려있으니까. 둘의 두번째 레슬링도 너무 뻔할테니, 나는 소리없이,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