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죽이는 41가지 방법 - 알코올

by 전찬준

겨울 준비로 술을 주문했다. 뽁뽁이에 곱게 쌓인 다섯 병의 와인이, 4종은 이탈리아의 끼안티, 나머지 하나는 미국의 나파밸리, 저 먼 우주에서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박스 안으로 내려앉은 나팔수들 같다. 기름보일러가 깔린 슬레이트 지붕집에 사는 나로서는 술은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이다. 애주가까지는 아니지만, 삶에서 제법 절실히 술을 요하는 인간이다. 봄에는 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여름에는 맥주와 화이트 와인, 가을에는 레드 와인, 겨울에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주종이다. 이렇게 술을 주욱 늘어놓고 아는 체를 하면 내 형편이 꽤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정기적인 수입도 없고, 그저 그때그때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잔고와 카드값을 메꾸는 삶을 산다. 영원은 없다고 믿는 편이다. 언제나 순간만 있다. 순간순간이 아름다워야 한다. 순간순간이 모인다고 영원이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전체는 각자의 합보다 더 크다. 인간으로서 삶 전체를 아우르며 이러쿵저러쿵 예측할 수도 없고 계산기나 타로카드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나름 합리적인 삶을 택해 살고 있는 편이다. 각각 떨어져 있는 순간들 사이를 풀칠해 주는 것이 바로 술이다. 낮술의 정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술은 밤이다. 밤에 마셔야 한다. 술이 밤에 맛있는 이유를 나는 공기의 진동에서 찾고 싶다. 음악도 밤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밤에 음악을 마시며 술을 듣는 행위만큼 내가 내 삶에서 사랑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내 초라한 삶을 유일하게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흰고양이도 그때만큼은 조용히 내 옆에 기대 음악을 듣는다. 내가 술에 흥건히 취해 녀석을 꼭 끌어안으면 죽기보다도 더 싫다는 소리를 내며, 내 품에서 빠져나가 현관 앞에 등을 돌리고 앉는다. 나갈 테니 문을 열어달라는 신호다. 나쁜 놈.


이 집에는 낯선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내가 여전히 이 집에 붙어사는 이유 중 하나다. 꽤 자주 오는 낯선 인간은, 올 때마다 작거나 때론 큰 종이 박스를 두고 간다. 나는 박스 안 물건에는 관심이 없고, 그 박스가 내가 들어가기에 맞는 크기고 두께가 두꺼워 충분히 푹신한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주인은 언제나 박스는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그 안에 든 무언가에 눈을 반짝인다. 이미 그 닫힌 나팔모양의 유리들이 마당 한 구석에 가득히 쌓여있는데도, 주인은 계속 그 유리들을 주문한다. 그 안에는 때론 맑아 보이고 때론 탁해 보이는 액체가 담겨있다. 그 액체를 주인은 거의 매일, 날씨가 추워지면 거의 매일이, 그냥 매일로 바뀐다, 또 다른 유리에 담아 홀짝이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마신다. 주인의 목소리에는 탄식과 감탄의 소리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음악이 들린다. 처음에는 바늘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곧, 오래된 큰 나무통에서 낮은 저음부터 시작해 마른 장작 같은 인간이 활활 타오르며 나팔을 부는 소리가 나온다. 나도 그 소리들을 제법 즐기는 편이라, 양발을 턱에 괴고 편안한 감상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대략 인간의 시간으로 2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2시간이 지나면, 주인은 액체가 담긴 유리그릇을 내 코에 들이밀기 시작하는데, 그 액체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냄새의 강도는 액체마다 다르다. 나는 색은 잘 구분 못하지만, 찌른 내의 구별에는 탁월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그 액체의 냄새는 일정 부분 우리 오줌 냄새와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는 오줌을 즐겨 마시지 않을 만큼은 고상하다. 인간들은 고양이의 상식에는 안 맞는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 인간이랑 이쯤 같이 살다 보니,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주인의 몸에서 풍기는 액체의 냄새가 심해질수록 주인의 몸은 달아오르는데, 그럴 때면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덥석 끌어안는다. 뒤이어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액체의 냄새를 견딜 수 없어 주인의 품에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주인의 품에서 탈출해 맑은 밤공기를 쐬러 곧장 밖으로 나간다. 이상한 것은, 밖에 나가서 자유로운 밤거리를 누비다가도 문득, 그 크고 오래된 나무통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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