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죽이는 41가지 방법 - 담배

by 전찬준

뻐억뻐억, 주인이 뭔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는다. 처음에 나는 그게 움직이는 구름 같아서 잡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지독한 냄새에 쫓겨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 이후로 주인이 종이로 싼 막대기를 꺼내들 때면, 나는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다. 나는 비닐소리에 매우 민감하다. 건멸치도, 츄르도, 육포도 다 비닐에 싸여 있다. 하지만, 비닐의 소리들은 하나같이 똑같아서 예민한 귀로도 좀처럼 구별하기 힘들다. 그래서, 주인이 종이 막대기, 인간들은 이걸 담배라고 한다,가 든 작은 상자를 뜯을 때, 매번 속아서 주인에게 다가간다. 게다가, 그 길이는 내가 좋아하는 육포와 같으니, 속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개처럼 코가 민감하진 않다. 나는 필요한 냄새만 맡는다. 새로 나타난 고양이가 좋은 놈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엉덩이 냄새로 구분이 가능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 녀석이 어제 뭔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도, 엉덩이 냄새 하나면 충분하다. 내 행적을 궁금해하는 주인에게 몇 번이고 엉덩이를 들이댔는데, 주인은 냄새는 맡을 생각조차 하지않고, 나를 침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물론, 평소가 아니라 자고 있는 주인의 얼굴에 엉덩이를 뭍은 경우였지만. 향수 냄새가 너무 진한 인간에게는 되도록 다가가지 않는다. 향수 냄새 정도는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탐욕이나 거짓의 냄새가 나는 인간들이 집에 들어올 때는 아예 산책을 나가 버린다. 주인은 고약한 담배 연기를 매번 맡아서인지 좀체 인간들을 냄새로 구분할 줄 모른다. 주인은 자기가 엄청 똑똑한 줄 알고 사는 멍청이인데, 그게 내가 아직까지 주인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어느 날은 주인이 나를 꼭 안고 뭔가를 중얼거리더니(자주 그런다),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도망칠새도 없이, 주인의 품에 안겨 담배 연기를 맡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재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날씬한 편은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렇게 재빠르지는 않다. 주인은 그런 나를 보고 담배를 피우다 말고 배를 잡고 바닥에 쓰려져 킥킥댔다. 그때는 모든 것이 느리게 보여서, 저 인간이 또 미쳤구나라고 안타깝게 쳐다보았지만, 주인은 내 앞에서 이리뒹굴고 저리뒹굴고 아주 난리를 쳤다. 그리고, 나를 안고 아주 따뜻한 눈빛으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역시 나는 인간의 말은 못 알아듣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목에 달아 놓은(태어날 때부터) 자그만 모터가 작동해서, 한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어쩌면 죽음의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은 비가 올 때나, 기분이 우울할 때, 가끔 집안에서도 담배를 피운다. 집주인 의사는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않는 아주 파렴치한 인간이다. 그러면 곧, 집 전체가 자욱해진다. 하지만, 그냥 꾹 참아준다. 나도 비가 올 때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다 슬프게 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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