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륵. 아침부터 또 저 소리에 잠이 깬다. 주인이 검은 콩을 기계에 넣고 가는 소리다. 사실, 주인이라는 말에 나는 한번도 동의한 적 없다. 이상하게도 내 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 자기가 나를 키우고 있다느니, 사람들을 집에 데려와 나를 특이한 고양이라느니, 자꾸 주인 행세를 한다. 아무튼 저 인간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나는 그러려니 하고, 묵묵히 지낸다. 저번에는 동네 친구들을 주인(편의상)이 나간 사이에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그 중 한 녀석이 주인이 갑자기 들어오자 놀라 벽에 똥을 갈겨서, 내 입장이 곤란해진 적이 있다. 친구들은 집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일단 피하고 보는 성격들이다.
주인은 매일 검게 탄 콩을 갈아서 물에 우려 먹는데, 내가 보기에는 도무지 맛도 없어 보이고 배가 부를 것 같지도 않다. 단지, 냄새 하나는 괜찮다. 아마, 그 검은 액체를 마시면 나는 분명 죽고 말 것인데, 주인은 매일 고소한 냄새로 나를 유혹하려는 수작을 부린다. 물론, 나같이 지혜로운 고양이가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 갈 일은 없다. 그런데, 우리집에 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주인의 수작에 넘어간다. 예외없이 주인이 내미는 검은 액체, 인간들은 이걸 커피라고 한다,를 홀짝이며 맛있다고 한다. 인간들은 솔직하지 못한 존재이거나, 너무 마음이 여린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투명한 색 이외의 액체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수도 꼭지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물이나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비 정도로 신선한 물을 선호한다. 건사료나 말린 멸치 정도로 교양있게 먹을 수 있는 것 외에는 인간이 주는 다른 것들은 먹지 않는다. 아, 참외와 수박은 예외다. 하지만, 츄르에는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츄르가 담긴 팩은 다 비어 있다. 츄르를 만든 인간은 왜 그걸 그렇게 작고 좁게 만들었을까. 물론, 나는 기본적으로 개처럼 과식을 하지는 않는다. 츄르같은 것도 하루에 하나면 충분하다. 어쨌든 오늘도 나를 죽이려는 수에는 넘어가지 않고 잘 버텼다. 내게는 인간들이 어제, 오늘, 내일이라며 따지고, 걱정하는 날짜가 무의미하다. 대부분 한가롭게 사색을 하거나 꿈을 꾸며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인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아, 내 소개를 안했다. 나는 페르시안과 샴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코숏(한국의 털이 짧은 고양이 - 이 단어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물 건너 사는 인간들은 자기들 위주로 이름을 갖다 부치길 잘한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털이 우아할만큼 짧고, 흰 고양이다. 나는 종종 스스로를 구름에 비교한다. 하지만, 내 이름은 어처구니 없게도 마틸다다. 주인이 어느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갖다 부친거라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은 없다. 나도 영화를 어느 정도는 좋아하지만, 다 보기에는 그건 너무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