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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고깃덩어리인가?

(그림; health.clevelandclinic.org)

by 신정수



TV, 영화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작은 고깃덩어리 한 점을 두고, 많은 동물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썩은 짐승의 사체를 놓고서 여러 동물들이 서로 뒤 엉겨, 피를 튀기며 싸우는 장면을 당신은 보았는가?

자기 먹잇감이라고 생각되면, 급한 김에, 그냥 산 채로 뜯어먹으려는 사나운 육식동물들을 본 적이 있는가?

다른 동물이 이미 잡아 놓은 먹이를 몰래 훔쳐먹거나, 통째로 빼앗아 가는 날강도 같은 동물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자기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하게 되면, 상대 동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결국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동물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모두들, 짐승으로서의 본능적 행동일 것이다.


우리 인간 사회는 또 어떠한 모습인가?

이익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무조건적으로 끼어드려 하고, 서로 온갖 삿대질을 해 가며, 경쟁하는 이들을 보았는가?

상대방을 흉악하게 무너뜨려 가면서, 마치 나락으로라도 몰아가려는 듯, 자기 욕심만을 챙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덤벼드는 이들을 당신은 보았는가?

상대방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온갖 자기 입장만 설파하려는 이들, 온갖 자신의 주장만을 알아 달라고 고함치는 이들을 당신은 겪어 보았는가?

남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무차별적으로 표절해 가며, 자기 잇속을 거짓으로 챙기려는 자에 대해서 들어보았는가?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입만 열면 거짓으로, 생각만 하면 꿍꿍이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을 보았는가?

어떤 일에서도, 자기 행위의 정당함만을 강조하고, 상대의 피해나 상처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려는 이들을 한번 떠올려 보아라.

상대의 허점을 요리조리 살피다가, 그 틈새를 드디어 발견해 내고서, 끝내 무참히 무너뜨리려는 자를 당신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이렇게, 인간으로서 자기 눈앞의 고깃덩어리에만 정신이 팔리고, 남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아서야, 어디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디 자기 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생에 스스로 도리를 다하며,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자기 이익이나 욕심을 위해 상대를, 이웃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인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자기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때로, 여러 자기변명이나 사정을 이것저것 내어놓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횡설수설하는 그런 말들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이미, 반목의 강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모두 저버렸으니, 과연 더 이상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 누구도, 결코 자기밖에 모르는 생을 살아서야, 마치 양아치 같은 생을 살아서야, 혹세무민 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야, 거의 짐승들이 행하는 수준이나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으로서 자기 스스로의 존엄과 생의 의미를 모두 갉어먹어 버린 격이 되지 않겠는가?

자기 깊은 곳에 내재된 순수한 영혼에 도저히 치유하기 어려운 생채기를 만들어 낸 격이 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많은 선각자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과연 인간다워야 한다.”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인간이라면 과연 인간의 도리를 다하여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많이들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과거 대비하여 엄청나게 풍족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생을, 마치 날강도 같은 생을, 심지어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죽여 가며 자기 머릿속 계산을 이루어 내려는 못난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더군다나, 모바일이나 인터넷 공간 뒤에 숨어서, 더욱 교묘해지고, 더욱 교만해지고, 더욱 악랄해지는 듯하기도 하다.


고깃덩어리-1.jpg “기존에는 없던 것에 더 주목하여라!”(그림; online.hbs.edu/blog/post)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설령 그러한 자기 욕심을 엄청나게 많이 챙겨 본 들, 자기 혼자서 모조리 독식해 본 들, 그 영화를 얼마나 더 오래 누릴 수 있겠는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금방 다시 배가 고파 올 것이다.

이번에는 더욱더 심하게 배가 고플 것이다.

스스로 더욱더 크고 대단한 그 무엇인가를 바라게 될 것이다.

모든 이기심이나 욕심에는 그 중독성이 매우 심각하게 작용할 것이니 말이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실타래는 그 실이 더욱더 꼬여가기만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 욕구의 강도가 매일매일 더 심해지면 심해질 것이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게 된다.

이렇게 그 증상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가고, 절대 스스로의 만족이라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그렇게 악랄하고, 심지어는 비인간적으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만족이란 것과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는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누구나 처음에는 비교적 작게 출발했을 타락과 모순의 상황이 결국 스스로의 몸통을 삼켜버리게 된다.

스스로를 더욱더 나락으로 빠져 들게 부채질한다.

그 추락의 깊이를 더욱더 깊고 암울하게 만들어 간다.

그야말로, 자기 꼬리가 자기 몸통을 집어삼키는 격(왝더독; Wag the dog)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되어, 자기 생은 더욱 이상한 상태, 결코 원하지 않았던 상태로 빠져들고, 끝내 아주 황폐화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주 슬프고 곡절 많은 생, 회한의 생이 되고 만다.

때로는, 너무나 고되고 소모적인 생을 살아간 나머지, 아무것도 남는 것은 별로 없고, 거의 무의미한 생을 직감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순간에 직면할 수도 있다.

때로, 아주 혹독한 허무감 혹은 우울감을 맛보아야 하는 지경에 다다를 수도 있다.

그야말로, 거의 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없고, 그럴만한 가치도 부재한 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무엇보다 소중해야 할 자기 생이 아주 존엄해야 할 터인데, 이 얼마나 아까운 생이 아닐 수 있겠는가?

사람은 대개,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다가올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무엇보다 남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으며 살기를 지극히 원할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며 현실의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다고 생각하여, 인간들 간의 경쟁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여, 그러한 꿈을 서서히 포기해 버리기 쉽다.

물론, 마음만은 초심을 잘 유지하기를 간절히 원할 수 있겠지만, 현실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 갈 수 있다.

즉, 본인이 원래 바라는 바와 현실에는 점차 큰 괴리가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자기모순적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 지극히 바라고 있는 바를 현실에 잘 접목하고, 매칭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여러 심리적 고통에서 잘 벗어나, 자기 뜻하는바, 가치로운 생을 잘 일구어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서, 어떤 사람은 “그 무엇에도 욕심을 내지 않고, 현실에 최대한 만족해 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 어떠한 형태로든 심리적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어 있고, 그 욕심은 점점 커져가기만 하는 것이지, 결코 줄어들기는 매우 어렵게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그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대부분의 경쟁 상황에서 혹은 여러 이권 앞에서, 자신이 항상 먼저 양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방법 또한 우리가 인간인지라, 이렇게 양보만 하고 있다 보면, 자기 혼자 너무 손해를 보는 것 같고, ‘기브 앤 테이크’로 대변되는 삶의 균형에서 매우 멀어질 수 있기에, 결국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얻어내기가 매우 힘들어지게 된다.

물론, 자신이 이미 큰 능력자이거나 대단한 수양을 이룬 자라면, 그렇게 해볼 수도 있다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주 훌륭하고 멋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는, 이 방법 역시 너무나도 어려운 방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자!

기존에는 아예 없던 가치, 그러나 자기 속에는 이미 내재된 가치를 잘 끄집어내는 방법이다.

즉, 기존에는 세상에 없던 가치에 도전하여, 새로운 자기 먹거리를 창출해 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출해 낸 가치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므로, 과연 생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도 있고, 자기만족에 이르기도 그만큼 쉬워진다.

이른바, 자기 속에 이미 내재된 개척 유전자를 잘 일깨우고, 또 이를 크게 키워 내어, 신 개념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능력과 결과물을 더욱 업글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가히 생각보다는 아주 중요한 해결점이 될 수도 있다.


즉, 기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 당신 자신만의 색채를 아주 진하게 드리운 그러한 가치를 통하여, 당신 꿈을 이루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그러한 방향으로 한번 도전해 보아라.

이 얼마나 훌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당신 스스로의 마음을 항상 창의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다른 각도로 보아, 거기에 내재된 새로운 가치를 잘 한번 끄집어내어 보아라.

마치 천진한 아이처럼, 무엇에든 신기해하고, 쉽게 감동하고, 쉽게 감탄해할 수도 있어라.


물론, 이렇게 무엇이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해 나가는 방법이 “돈벌이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좀 더 용기를 가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윽한 자신감을 가슴속 깊이 지닐 수만 있다면 말이다.

당신이 만약, 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그러한 먹거리를 많이 창출하였다면, 또 스스로 그러한 창조적 가치를 진정으로 추구하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많이 도전하고, 그런 것에 많이 접할 수 있어야, 자기 생이 절대 지루해 지지도 않고, 많은 새로운 가치를 느끼게 되며, 그만큼 행복 호르몬(세로토닌, 엔돌핀, 도파민 등)도 많이 생겨날 수 있다.

당신의 뇌리가 깨어나고, 드디어 진정한 심신이 제대로 깨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생의 큰 의욕과 기운을 되찾을 수도 있다.

당신 생에서 여러 형태의 재미와 흥미도 많이 느낄 수 있게 되고, 정말로 의미 있는 스스로의 생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고깃덩어리-2.jpg “과감히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앞서 나아가라!”(그림; brightcall.ai/blog)



이렇게 하여, 늘 창의적인 사고로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어 보아라.

그러면, 당신 생에 점차 새로운 씨앗들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희망이, 새로운 가치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 세상에 이미 널려있는 구태의연한 ‘레드오션’을 가지고서 너무 경쟁하려 들지 말고, 기존에는 없던 가치를 새로이 한번 만들어 내어 보아라.

너무나도 흔한 가치에, 기존에 이미 허다한 가치에 마음 쓰지 말고서, 보다 미래의 가치,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새길만한 그러한 가치를 제대로 한번 추구해 보아라.


과거, ‘장자’를 찾아온 친구가 이런 말을 불쑥 꺼내었다.


“씀씀이가 큰 위나라 왕이 나에게 아주 커다란 박씨를 주었는데, 그것을 심어서 길러보니, 과연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네!

거기에 물을 담아보니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네!

또, 그것을 쪼개어 바가지로 만들면, 물이 옆으로 샐 수 있을 것이니, 그것도 말이 안 될 것 같군!

결국, 이래저래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네!"


장자는 이렇게 그 답을 내어 놓았다.


“자네는 정말로 물건의 씀씀이를 제대로 헤아릴 줄 모르는구려!

그 큰 박으로 배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고, 자연을 벗 삼아 강과 호수를 마음껏 떠다니며 노닐 생각을 왜 못 하였는가?

자네는 정말로 기존의 작은 쓸모에만 마음이 매여 있고, 그것의 큰 쓰임새를 못 보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일세!”


위와 같이 비교적 간단한 고사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무엇보다, 아주 창의적인 가치,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가치에 잘 한번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당신만의 ‘레드오션’ 대신에 ‘블루오션’을 잘 한번 만들어내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당신 뇌리를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고, 더욱 새로움을 많이 창출하여, 그 새로운 작품에 당신의 이름을 새겨 넣어 보아라.

그러한 당신만의 작품이 당신의 이름으로 길이길이 불리어지게 해 보아라.

당신 이름 석 자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롭도록 말이다.

물론, 결과가 꼭 이렇게 대단하게 되지 못하여도 좋다.

설령, 당신 이름 석 자가 길이길이 불리지 못하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른 이들이 전혀 인정을 해주지 않더라도, 당신은 당신이 믿는 대로, 그냥 추구하여라.

당신 스스로가 새롭고 창의적인 가치를 잘 발견하고, 이를 지속해 업글하여 발전시키고, 그 의미를 차차 크게 부여해 나간다면, 그 자체로서 이미 의미가 큰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간에, 그런 것이 그리 중요치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은 당신만의 재미, 흥미, 가치를 진심으로 추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할 것이고, 더군다나 그 최종 평가는 사실, 당신의 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별 걱정을 하지 말고, 무엇에든 과감히 도전하여라.

당신의 생이 더욱더 창의적이도록, 더욱더 의미 가득하고, 가치롭도록 말이다.

이 땅에서, 당신 스스로를 잘 완성시키고, 세상을 널리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도록 말이다.


비근한 예를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스티브잡스’는 기존에 없던 가치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대학에서 중퇴를 하였지만, 나중에 도강과 청강을 반복해 가며, 자신의 지적 데이터 베이스를 부단히 축적해 나갔다.

자기 작품(제품)을 향한 그의 열정을 부단히 키워 나갔다.

자신이 창업주로 있던 애플에서 쫓겨나든 말든, 그냥 자신이 나아갈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이다.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기존에는 전혀 없던 새로운 감성을 자기가 직접 만든 제품에 부어 넣었다.

손안에 모바일 인터넷을, 손가락 터치의 감각을, 사이버 공간에 대한 참신한 구상을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해 낸 것이다.

결국, 그는 애플을 다시 번듯하게 일으켜 세웠고, CEO에 복귀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기 뜻 또한 제대로 이루어 낼 수가 있었다.

이 모두가 그의 블루오션을 향한 집념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새로운 가치를 향한 여정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이 세상을 일찍 떠나기는 하였으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삶의 길이란 것은 이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고깃덩어리-3.jpg “고만고만한 생에 활력을 불어넣어라. 당신의 깨어있는 생각으로~”(그림;.linkedin.com/pulse)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알려진 천재 발명가, ‘에디슨’은 우리 인간의 기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무엇에든, 크고 작은 문제점 혹은 불편한 점을 발견해 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상에 없던 기술을 창출해 낸 것이다.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속담을 너무나도 잘 실현해 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기술 특허는 소리 레코딩 기술, 전등기구 기술, 전력 전송 기술 등, 아직도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의 첨단 기술 또한 그의 특허로부터 영감이 얻었거나, 그의 특허에 어깨를 빌어 이루어진 것들이 굉장히 많으니, 그의 노력에 빚을 진 정도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또, 그는 전쟁에 사용할 살상 무기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주변으로부터 많이 받았으나, 단 하나의 살상 무기 기술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아주 평화로운 가치를 전하겠다는 그의 가치 철학이 어느 정도 묻어 나오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대단한 행적이 남겨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절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장 자기 다운 것이 가장 가치롭도록 만들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자기 영역에서, 자기 ‘최애’에서, 늘 새로이 도전할 부분을 아주 적극적으로 설정하고, 스스로를 잘 완성해 나가면 된다.

더군다나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속해 추구해 나가기만 하면 더욱 훌륭하겠다.

이렇게 하여, 스스로의 가치에 열중하는 자에게 누가 감히 뭐라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걱정 말고, 지속해 나아가라.

당신이 설정한 뜻의 방향으로 말이다.


자기 능력이 남들에 비해 별로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잘 한번 생각해 보아라.

만약, 고기 잡는 일에 그나마 자신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 고기 잡는 일을 가지고서 세계 일등이라도 한번 되어 보아라.

그만한 패기를 한번 가져보아라.

제대로 도전하여, 제대로 한번 성취해 보아라.

그 결과에는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결과보다는 그 도전 차제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낚시하는 기술, 어선 조업 기술, 원양 어업 기술 등, 고기잡이와 관련된 기술이라면 모조리 한번 섭렵해 보아라.

그 분야에서라면, 과연 명장급, 달인급 혹은 명예 박사급 이상의 칭호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자기가, 다른 것은 몰라도, 요리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한다면,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 다양한 요리 분야게 부단히 노력하여 자신만의 레시피를 한번 개발해 보아라.

최고의 레시피를 만들고, 거기에 자기 이름을 붙여, 세계 사람들에게 한번 알려 보려는 포부를 지녀 보아라.

마치, 한국 기계체조의 간판스타라고 할 수 있는 도마의 신, 양학선 선수가 자기 스스로 개발한 기술에 자기 이름을 붙여 ‘양1’, ‘양2’, ‘양3’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홍철교수 또한, 선수 시절에 자신이 직접 개발한 ‘여 1’ ‘여 2’이라는 기술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자기 현실에 절대 안주하지 말고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숨어들지 말고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업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당신다우면 된다.

소중의 당신 생의 가치와 맞닿아 있으면 되는 것이겠다.

그러니 과연, 아무런 걱정은 필요 없겠다.

그냥, 그런 방식으로 지속해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만약 무슨 목적으로든, 당신이 남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닌다면, 잘 나가는 사람들과의 상대적 비교만을 하고 있다면, 현실의 고단함에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면, 너무 무리하게 자기 욕심을 채우려다 나중에 심한 허탈감, 우울감이나 허무감 같은 것에 빠져들기라도 한다만, 당신의 생이 너무나도 아까울 것이니 말이다.


고깃덩어리-4.jpg “아주 작은 것을 두고서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말아라!”(그림; .scarymommy.com)



결론적으로,


작은 고깃덩어리 한 점을 놓고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아주 큰 고기를 구할 수 있어라.

작은 것을 두고서, 서로 쟁탈전을 펼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아주 큰 가치를,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어라.

현란한 말솜씨로 서로 티격태격 다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상대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서로의 잘잘못을 이리저리 따지기보다는, 남의 말꼬리를 물거나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 하기보다는, 상대를 항상 푸근하게 대해 줄 수 있는 크고 따뜻한 심장을 지닌 사람이 되어 보아라.

작은 욕심에 사로잡혀 아옹다옹 하지를 말고서, 큰 세상을 거머쥘만한 포부를 지녀 보아라.

현실의 굴레에 속박되어 사는 사람보다는 앞날의 큰 꿈과 희망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아라.

여러 걱정거리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러한 걱정을 뛰어넘는 아주 큰 가슴을 지닌 사람이 한번 되어보아라.


이렇게,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서 서도 다투지 말고, 아예 그러한 상황을 잠시 벗어나 보아라.

고요함 속에서 당신만의 창의적 블루오션에 불을 켜 보아라.

아주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치고받고 싸우지 말고서, 아예 그러한 상황을 압도할 수 있는 지혜를 지녀 보아라.

부질없는 경쟁이나 쟁탈전에 골몰하지 말고서, 아예 그러한 상황을 뛰어넘어 설 수 있어라.

항상 창의적인 생각으로 번득이는 당신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늘 스스로의 가치와 지향점에 깨어있는 당신이라면, 아주 넉넉히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과연, 세상에 나와 고만고만하게 경쟁하다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게 되고, 또 그런 정도로 생을 다해 간다면, 당신 생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남들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다가, 설령 출세를 하거나, 돈을 좀 벌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차리리, 백번 양보하여, 당신이 배가 좀 고프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길을 걸어라.

당신만의 진실한 색깔에, 진정한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작품을 결국 만들어 내어 보아라.

당신이 당신 생을 마무리하는 날에도 그 작품은 계속 살아서 숨 쉴 수 있게 하여라.

세상 사람들이 그것과 더불어 지속해 호흡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게 그리 크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다.

당신은 그저 당신만의 색깔과 가치를 그 작품을 통해서 잘 전해주면 된다.

그저 고만고만한 이야기보다는, 세상에 유일한 당신만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살며시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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