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Jude
우리 부부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관찰하며, 돌보고 가르쳐왔다.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아장아장 걸음을 떼던 순간,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러주던 그날까지—그 모든 기적 속에는 우리 부부의 인내와 노력이 쌓여 빚어낸 열매도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우며 흉내 내는 말투와 표현 하나하나도 결국 우리에게서 배우고 비롯된 것이니, ‘닮았다’는 말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아이들은 그야말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부모는 그보다 더 큰 의미다. 세상의 전부,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봄이 와 솔이를 바라보면 기쁨과 함께 묘한 시림이 마음을 스친다. 이제 아이들은 어느새 우리 품을 벗어나 미디어와 유치원, 학교, 교회 등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며 자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도 같았을까.
어느 날 어머니께서 “에구, 우리 진규 다 컸네.” 하시며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쓸쓸해 보였고, 어딘가 슬퍼 보였다.
생각이 많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던 어린 시절의 나는 더 오래 부모님께 ‘아이’가 되어 드리고 싶었다. 일부러 못하는 척하는 일도 많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을 나이에도 부모님께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장을 보러 가시는 엄마께 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시장에 따라가곤 했다. 부모님과 옷가게를 가거나 식당을 가도,
“어떤 게 좋아?”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엄마는 어떤 게 더 좋으세요?”
였다. 하루라도 더 부모님 없이는 안 되는 아이로 남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도 부모님은 여전히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 내게 두 분의 이혼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계신 아버지, 친가 식구들이 근처에 사는 로드아일랜드에서 홀로 두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전화 통화와 대화 내용을 엿들으며 하루하루 가슴 졸이던 동생과 나. 이혼의 과정은 길고 복잡한 드라마였다.
그렇게 이혼 이야기가 나온 지 꼬박 1년 만에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한인도 드문 미국 시골에서 두 아들을 홀로 키울 자신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기러기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 2주 후,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형제는 새어머니를 소개받았다.
새어머니의 등장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었지만,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아, 얼른 대학 졸업하고 다시 한국 가서 엄마랑 살자.”
“응. 그런데 내가 4년 더 빨리 졸업할 텐데?”
“아, 그러네… 나 대학 졸업할 때까지 미국에 같이 있어줄 거지?”
“몰라.”
“형아~ 같이 있어줘!”
사실 나와 동생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어머니가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도 그날을 위해 슬퍼도 힘내자고 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선 오히려 아버지가 걱정됐다. 우리가 졸업하고 떠나면 아버지는 혼자가 될 텐데 괜찮으실까?
그런데 새어머니의 존재가 그 걱정을 덜어주었다. 아버지께 새 가정이 생기면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더욱이 나는 ‘엄마’의 보살핌이 꼭 필요한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새어머니와도 무난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며칠 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결혼식 참석과 상견례를 위해 새어머니의 가족이 한국에서 오셨다. 새 외할머니, 새 이모들과 첫인사를 하는데, 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포천 외갓집 식구들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처가 식구들에게 잘 보이려 동분서주했고, 하루는 모처럼 시간이 남는다며 새 이모들과 새어머니를 데리고 아웃렛 백화점으로 향했다. 새 외할머니는 집에 남겠다고 하셔서, 우리와 함께 있었다.
새 외할머니는 어색해서인지, 혹은 우리를 배려해서인지 방에 들어가 계셨고, 나와 동생은 아시아나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따르릉—
집 전화기가 울렸다. 동갑인데 생일이 빠른 정근이 형이었다. 고모부와 주희 누나와 함께 GameStop에 가려는데, 나와 재규도 같이 가자고 했다. 나와 재규는 좋다고 했고, 새 외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뒤 우리를 픽업하러 오신 고모부의 차에 올라탔다.
사실 그것은 고모부와 정근이 형의 방식의 위로였다. 특히나 우리에게 부쩍 잘해주시던 고모부였다. 우리는 반나절 동안 게임 구경도 하고, 주희 누나가 가고 싶어 하던 옷가게에도 들렀다.
모처럼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새어머니와 새 이모 들은 눈을 피했고, 아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이리 와봐, 이 녀석들!”
짝—
힐끗 새처가집 식구들을 바라보고는 나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
“동생은 어려서 그렇다 쳐도, 네가 할머니를 두고 집을 비워?”
짝—
“영어도 못하시는데 할머니 혼자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어!”
분명 세게 맞았는데, 뺨이 아픈 줄도 몰랐다. 그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믿기지 않았다.
“네?”
그때 방에서 새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그만해, 이서방. 내가 갔다 오라고 했어.”
그러자 새어머니와 새 이모들이 타이밍을 맞춘 듯 거들었다.
“왜 애를 때려요? 에이, 그만해요. 진규야, 방에 들어가. 괜찮아.”
방학때 가끔 보던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상황. 방으로 들어가자 동생이 내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아, 왜 바보같이 맞고만 있어? 형이 아빠보다 키도 더 크잖아.”
“…”
나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동생에게 말했다.
“야, 이거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말자. 어차피 엄마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괜히 더 힘들어하실 거야.”
비틀스의 Hey Jude는 존 레넌이 이혼을 했을때,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어린 줄리안 레넌을 위로하기 위해 폴 매카트니가 쓴 노래이다.
나는 이 노래를 참 즐겨 들었다.
폴 매카트니 같은 어른이 곁에 있는 줄리안 레논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노래의 메시지—고통을 피하지 말고 스스로 성장하며 나아가라는 말—이 내게 깊은 위로와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