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시)
쓰다 모아둔 몽당연필,
그 몽당연필에서는 짧은 글씨와 빠른 글씨가 나왔다.
어쩌다 너무 빠른 글씨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아이는 넘어지는 기록으로 울음을 쓴다.
기록의 날 속에 고군분투하던 몽당연필이 있었다.
비밀 속에 가족을 숨겨놓고
구석을 전전하던 몽당연필의 무덤은 오래된 필통.
할머니와 몽당연필은 점점 짧아져 간다는 공통점이 있어 돋보기 너머로
글자를 식자할 때마다 느린 눈이 가늘게 글자를 따라가곤 한다.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쓴 할머니의 일기에선 기침소리가 자주 들린다.
뒷짐을 지고 떠난 몽당연필
아이를 기다리는 책가방,
빠른 글자로는 기다려지는 것들을 쓴다.
짧은 글자로는 기차의 역들과 시간표를 쓰면 된다.
가장 오래 잃어버리지 않은 문구文具
우리 집에는 잔소리하는
나이 많은 몽당연필이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