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즘 자주 말한다.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엄마는 아무것도 안 바라.”
어느 날 내가 조금 예민하게 말했다.
“엄마, 그런 말은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나는 반박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예전보다 빨리 사과하고
예전보다 쉽게 말을 멈춘다.
가끔은
내 눈치를 보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기분 나쁠까 봐,
내가 멀어질까 봐,
내가 감정적 관계에 지칠까 봐.
그래서 엄마는
붙잡는 대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연락이 늦어도 “바빴겠지.”
명절에 못 내려가도
“몸이 더 중요하지.”
엄마는 늘 이해하는 쪽에 선다.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
조금씩 물러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물러남이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가 없다.
엄마는 나를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조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조심스러움을 다 알아버렸다.
그래서 더 미안해진다.
엄마는 나를 힘들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잃고 싶지 않아 조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 분리되고 싶은것 같은데
엄마는 그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붙잡지 않으면서
서로를 의식한다.
나는 엄마에게서 조금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고
엄마는 내가 멀어질까 봐
먼저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다가
서로에게 조금씩
조심스러워진다.
말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나는 엄마가
나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도
엄마를 조금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먼저 말을 건네보려고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라도
괜히 하나 더 묻고,
괜히 한 번 더 웃어본다.
우리가 서로를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로
다시 조금씩 돌아갈 수 있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