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일 때부터 소심한 것 같기는 한데 살아오면서 그렇게 된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10년간 아빠 회사 때문에 대전에서 살다가 서울로 전학 왔다. 반 친구들이 참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기억이다. 같은 반 남학생 엄마가 아들이 너무 말썽꾸러기라서 차분한 여학생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좋게 보셨는지 그게 바로 나였다. 날 지목한 걸 보고는 그 아이가 ‘너 진짜 우리 집에 올 꺼야?’라고 물어보았다.
“응 갈게"
“왜 오지 마~아이씨.”
그 시절 우리는 선생님 말이라면 거의 ‘네’ 하던 시절이기도 했고 내심 그 아이의 집에 가보고도 싶어서 ‘응 맞아’라고 했는데 영락없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드디어 그날,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는데 그 남자아이는 여전히
‘너 진짜 왔어?” 라며 씩씩거리고 있었고 그 아이 엄마는 반가운 미소로 맞아주었다.
방에 딸깍 들어가서는 “너 얼른 가라~”고 말을 했다. 아이 엄마가 예쁜 찻잔 두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면서 “어서 와~우리 OO이 잘 부탁한다.”라고 했다.
그 남자아이는 아! 이거 구나 싶었는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나에게 들이대고는 풀어보라고 했다.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던 기억이다.
바로 그때! 내가 온 게 싫은 거 같으니 가겠다!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이 일이 있은 후 나에게 약간 이런 점이 생겼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라는 얇은 유리막이 형성되어있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사람을 처음 보면서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40살 넘어까지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게 바로 트라우마인가 보다.
50살 넘으면 나아지려나?
내 아이한테는 이런 점을 안 생기게 해주고 싶었는데 벌써 생긴 모양이다. 이것저것 먹을걸 사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남기는 것이 많자 남편이 ‘넌 먹을걸 거의 남기니까 이제부터 사지 마!’라고 한걸 들었는지 편의점에서 뭘 사달라고 우물쭈물이다. ‘하나 골라봐’ 하니 ‘아빠가 못 사게 하잖아'라고 시무룩해지는 모습이 귀여우면서 짠하다.
트라우마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오니 지금부터 조심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