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Dec 25. 2022

디지털 도어락과 자유

아날로그 셀프 구속 = 자유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달해서 다른 사람들과 대인관계도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난 실제로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연구실에 들어오면 밖에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혼자 조용히 내 작업에 집중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휴식을 위해 연구실 소파에 누워 잠을 잠시 청하기도 한다.


같은 학과에 계시는 한 원로 교수님께서 가끔 내 연구실에 오시어 10분에서 15분 정도 편안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그 교수님은 처음에 나에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분과 내가 사이가 좋지 않을 만한 사건은 특별히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분이 나를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난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난 나에 대한 소문에 그렇게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분이 최근에는 내 연구실에 편하게 들르시어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한 번은 그 교수님께서 나에게 “김 교수는 꼭 다람쥐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외모를 다람쥐에 비교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난 그렇게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로 다람쥐를 검색해 보았다. 이런 내용이 나왔다. “나무구멍 또는 땅굴에서 단독으로 동면한다. 영역을 가지고 방어하며, 나무를 매우 잘 타지만 땅 위에서 더 많이 활동한다. 나무구멍을 이용하기도 하나 대부분 땅 위에 굴을 파서 번식이나 동면을 한다. 주행성이며 겨울철에 동면에 들어간다.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는 먹이를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그 교수님 말씀이 내가 연구실에서 잘 나오지 않고, 뭔가 필요할 때 가끔 나와 필요한 것을 챙겨 다시 연구실에 들어가고, 그러면 한동안 연구실 밖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생활 패턴은 다람쥐가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구멍에서 나와 필요한 먹이인 도토리를 주워서 다시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그 교수님이 처음에 나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감정이 아니었던 이유를 이렇게 추론해 보았다. 내가 후배 교수인데 선임 교수인 자기 연구실에 가끔씩 들러서 안부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쭉 지켜보면서 내 생활 패턴이 다람쥐의 패턴을 닮았다는 것을 파악하셨다. 그런 생활 패턴 때문에 자기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지, 내가 자기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신 것이다. 그런 오해를 스스로 풀고 나서 편하게 내 연구실에서 들르시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내가 다람쥐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해 주신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연구실에 한 번 들어오면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더군다나 안에서 연구실 문을 잠그기도 한다. 그런 셀프 구속 상태에서 난 편하게 내 작업에 집중한다. 내 연구실 문은 아날로그 식인 똑딱이 문이다. 열고 들어갈 때 열쇠로 열고, 안에서 동그란 버튼을 눌러서 잠글 수 있는 평범한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이다. 가끔씩 열쇠를 연구실 안에 두고 나와 들어갈 때 문을 열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때는 학과 사무실에서 마스트 키를 갖고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불안해서 연구실 열쇠를 하나 더 복사해서 남들이 모르는 연구실 밖 창틀에 은밀하게 숨겨놓았다. 이제는 열쇠를 연구실에 두고 나와도 아무 문제 없이 그 은밀한 열쇠를 사용해 연구실 문을 열 수 있었다.


최근에 학교에서 원하는 사람에게 연구실 잠금장치를 디지털 도어락으로 바꿔준다고 하면서 신청자를 받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 예전에 한 번은 다른 교수님 한 분이 자기 돈으로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문이 오류가 생겨 작동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몇 시간을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열쇠 수리하시는 분을 불러 그 디지털 도어락을 완전히 제거하는 대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현장을 목격한 나는 디지털 도어락 설치와 관련해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나에겐 은밀한 열쇠가 외부에 하나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연구실 문이 잠겨도 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최신 디지털 도어락 시스템이 멋져 보이고, 우리 집에서도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해 8년 이상 아무런 고장 없이 잘 사용하던 중이라 결국 난 디지털 도어락을 신청했다.

디지털 도어락

며칠 후에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하시는 분이 오시어 10분도 걸리지 않고 연구실에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해 주셨다.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사용을 해 보았다. 밖에서 비밀번호 4자리와 별표(*)를 터치하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고 연구실에 들어오니 문이 닫히고 난 뒤 2초 뒤에 자동으로 문이 잠겼다. 그런데 화장실에 잠시 다녀올 때는 귀찮았다.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면 다시 문이 자동으로 감겨 있으니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했다. 연구실 바로 밖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러 나가도 똑같은 식이었다. 그래서 수동 잠금으로 설정을 변경할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화장실과 정수기 사용은 하루 중에 그렇게 빈번한 활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연구실에 들어오면 문을 잠그고 있는 편이었는데 자동으로 문을 잠궈 주니 은근히 편리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자동 잠금 설정으로 해 놓고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디지털 도어락을 자동 잠금 상태로 며칠을 사용하니 이상한 느낌이 하나 들었다. 그 느낌은 ‘구속감’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이 자동으로 잠겨서 나를 내 연구실에 구속시킨다는 느낌이었다. 화장실과 정수기 사용의 불편함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런 구속감은 상당히 불편했다.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에서도 난 문을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구속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디지털 잠금 시스템에서의 구속 상태는 불편함이 느껴졌을까? 그 이유는 구속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수식어가 달랐던 것이다.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에서는 ‘셀프 구속’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잠금 시스템에서는 ‘타자 구속’이었다. 그랬다. 구속 자체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구속시키는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구속은 다른 느낌이었던 것이다. 내가 구속의 행위자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 구속의 행위자가 타인일 때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수반되었다. 특히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해 준 곳은 우리 대학교이다. 즉, 그 타자는 대학교라는 기관이었다. 우리 대학교는 나에게 월급을 주고 내 생활의 특정 부분을 구속하면서 나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기관이다. 난 우리 대학교라는 기관에서는 자유가 아니지만, 그 기관이 제공해준 내 연구실에서는 자유였다. 연구실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난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에서 내 스스로 문을 잠궜던 것이다. 디지털 도어락을 자동 잠금 설정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나의 ‘셀프 구속’인 나의 ‘자유’는 ‘타자 구속’인 ‘지배’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타자 구속’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디지털 도어락 설명서를 보니 수동 잠금으로 설정하는 방법이 있었다. 먼저 실외측 번호판을 터치하여 번호판이 나타나게 하고, 그 번호판에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 버튼을 2회 연속 입력하고, 마지막으로 숫자 7번 버튼을 누르면 되었다. 이렇게 수동 잠금 설정을 해 놓으니 문을 닫아도 문이 잠기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할 때는 다시 밖에서 번호판을 터치해서 번호판이 나오면 # 버튼만 한 번 터치하면 자동으로 잠기게 되었다. 잠긴 문을 열 때는 비밀번호와 별표(*)를 누르면 되었다. 이렇게 디지털 도어락을 수동 잠금 설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나는 수동 잠금 상태에서 예전처럼 나를 구속시키기 위해 문을 잠그고 싶었다. 그때는 ‘열림/잠금’ 버튼을 연구실 안에서 누르면 되었다. 나갈 때는 다시 그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밖에서 화장실과 정수기를 사용한 뒤에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시 그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잠겨 나의 자유가 완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잠금이 디지털 방식이라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디지털 셀프 구속’에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셀프 구속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도 연구실 문에 원래 사용하던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은 제거되지 않고 문을 여는 손잡이용으로 그대도 부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해결했다. 디지털 잠금 시스템은 오로시 연구실을 장시간 비울 때 문을 잠그고, 외부에서 연구실을 열 때만 사용했다. 그리고 나를 구속시킬 때는, 즉 나에게 자유를 줄 때는 아날로그 잠금 시스템을 사용해 예전처럼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완전한 자유의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아날로그 셀프 구속’이었다. 이렇게 난 ‘아날로그 셀프 구속’을 즐기면서도 디지털 도어락으로 편리함이라는 실용성도 얻게 되었다. 이제 너무 행복하다 나는!




이전 28화 아이콘과 우리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