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과 같은 IT 시대에 ‘아이콘(icon)’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아이콘이란 특정한 개념이나 기능,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이다. 아이콘은 사용자에게 정보를 빠르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기술, 예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맥락에서, 아이콘은 컴퓨터의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상의 파일, 폴더, 애플리케이션 또는 기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작은 그래픽 표현이나 기호이다. 예를 들어, 폴더 아이콘은 일반적으로 파일이 저장되는 디렉터리를 나타내고,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나타낸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웹 사이트에서 아이콘은 종종 ‘좋아요’, ‘공유’, ‘팔로우’ 등과 같은 다양한 소셜 미디어 동작에 대한 링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아이콘의 대표적인 특징은, 언어 장벽을 넘어 의미나 기능을 빠르고 보편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콘은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가진 국제 청중과 사용자에게 공통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누구든 특정한 아이콘을 터치하면 어떤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어디로 연결되며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지 등을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아이콘은 인식과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이나 직감의 영역에 속한다. 왜 그럴까? 아이콘의 모양과 내용 사이에는 일대일 대응이 있고, 그 모양을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모양이 내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콘을 기호학에서는 도상(圖像)이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모양이나 형태가 의미나 내용을 반영하는 성질을 인지언어학에서는 도상성(圖像性; iconicity)이라고 부른다.
형태와 의미를 언어의 층위로 가져오면 좀 더 복잡하다. 언어의 형태와 의미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러운지의 여부에 따라 그 관계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도상적일 수도 있다. 형태와 의미의 관계가 자의적이라 함은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관계가 없다는 것이고, 도상적이라 함은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언어 형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언어 단위인 영어 단어 dog가 ‘개’를 의미하는 것은 확실히 자의적이다. 즉,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이 단어의 모양만 보고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의 언어 단위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와 그 형태 사이에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 의성어도 있다. 예컨대, 영어 단어 whisper와 ‘속삭이다’라는 의미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다. 문제는 의성어가 나라마다 그 형태가 다르다는 점에서 진정한 도상성을 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음 예는 흥미롭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도 다음 글자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서 보이는 도상성은 말장난의 힘을 빌린 것이다.
언어의 형태를 단어의 층위에서 생각하면, 형태와 의미의 관계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태라는 개념을 단어 층위를 넘어서 여러 언어 단위들이 배열되는 방식의 층위에서 보면 언어의 도상성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형태론의 층위에서 보면, 영어에서 형용사의 원급(smart), 비교급(smarter), 최상급(smartest) 순으로 음소라는 언어 단위의 수가 점차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형태상의 복잡성이 의미적 복잡성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단수(boy)와 복수(boys)의 차이도 유사하게 설명된다. 의미론의 층위에서 보면, 언어 단위들의 순서는 물리적 경험이나 지식의 순서와 일치하고 있다. 예컨대, “대통령과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에서 “대통령과 장관”과는 달리 “장관과 대통령”은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이는 단어들의 어순이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발화 층위에서 볼 때, 발화행위의 순서는 그 행위의 시간적 순서를 반영한다. 그래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순서가 뒤바뀌면 어색하게 들린다. 따라서 언어 단위들의 배열된 형태를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태와 의미가 자연스러운 관계에 있는 언어의 도상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인지언어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개념이 바로 형태와 의미 사이에 도상성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언어의 형태는 의미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언어의 형태가 다르면 의미도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형태란 단어 간의 거리, 순서, 그리고 양을 말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도상성 원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는 다음 두 영어 문장이다.
I know that this chair is comfortable.
I know this chair is comfortable.
두 문장 모두 이 의자가 편하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학생들에게 이 두 문장의 의미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면, 모두들 접속사 that은 생략 가능하므로 의미 차이는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의자가 편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다. 직접 앉아보니 편하다는 것을 내가 알 수도 있고, 눈으로 보니 편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여 내가 그렇게 인식할 수도 있다. 나의 인식이 직접적인 것은 두 번째 문장의 경우이고, 간접적인 것은 첫 번째 문장의 경우이다. 이런 차이는 I know와 this chair is comfortable이라는 두 문장 사이의 거리에 기인한다. 두 문장이 가까울수록 그 의미 관계는 직접적이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접속사 that으로 인해 두 문장 간의 거리가 멀어져 있으므로, 나의 인식은 간접적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학생들은 매우 신기해하면서 다른 예가 더 없냐고 질문한다. 나는 다른 예를 더 들어주면서, 영어를 읽을 때 단어 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주변 단어들과의 관련성을 꼼꼼히 살피라고 조언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제시했던 추가 예를 바탕으로 언어의 형태가 의미를 반영하는 방식인 도상성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잠시 들여다보자. 먼저, 단어 간의 순서라는 형태가 의미를 반영하는 방식이 있다.
Virginia got married and had a baby. (버지니아는 결혼해서 임신했다.)
Virginia had a baby and got married. (버지니아는 임신을 하고 결혼을 했다.)
이 두 문장은 결혼과 임신이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문장은 ‘결혼과 임신’이고 뒷문장은 ‘임신과 결혼’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A+B’이든 ‘B+A’이든 그 값은 같아야 한다. 두 요소가 같고 순서만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논리 세계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두 사건의 순서가 달라지면서 이 문장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이 두 문장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문장은 일반적인 결혼과 출산의 상황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뒷문장은 이른바 말하는 ‘속도위반’이나 ‘요즘은 아기도 혼수에 속한다’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다음은 단어 간의 거리라는 형태가 의미를 반영하는 방식이다.
He smeared the wall with paint. (그는 벽을 페인트로 발랐다.)
He smeared paint on the wall. (그는 페인트를 벽에 발랐다.)
이 두 문장은 모두 동일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앞문장은 벽 전체가 페인트칠해진다는 전체적 해석을 받는 데 반해, 뒷문장은 벽 일부만 페인트칠해진다는 부분적 해석을 받는다. 이런 해석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동사 smeared가 어떤 명사와 거리가 더 가까운지에 달려 있다. 뒷문장에서는 동사의 목적어 명사인 wall이 동사 smeared에 가까이 있으므로 동사가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전체적 해석이 나오고, 뒷문장에서는 전치사의 목적어 wall이 동사 smeared에 더 떨어져 있으므로, 동사가 미치는 효과가 더 간접적이라서 벽 전체가 아닌 일부만이 페인트칠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의 원리는 명사의 속성을 기술하는 형용사들의 어순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the famous delicious Italian pepperoni pizza(유명하고 맛있는 이탈리아 페페로니 피자)는 자연스럽지만, the Italian delicious famous pepperoni pizza는 부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피자라는 명사의 속성을 기술하는 다양한 자질이 있을 때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속성을 기술하는 형용사가 피자라는 명사에 더 가까이 위치한다는 것이 거리의 원리에 따른 설명이다. 즉, pepperoni는 피자의 고유한 속성을 나타내므로 명사 pizza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다. 페페로니 피자의 출처인 Italian은 영속적인 속성을 띠고 있으므로 개념적 거리상 그다음에 위치한다. 그리고 맛과 유명하다는 것은 주관적이고, 특히 먹어봐야 맛있는 줄 알고, 맛있다고 판단되면 유명하게 되는 것이므로 delicious가 famous보다는 그 명사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양이 의미와 상관성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이는 언어 형태의 양이 많으면 의미의 양도 많다는 것이다. 양의 원리가 가장 쉽게 적용되는 경우는 books와 book에서처럼 복수와 단수의 경우이다. 복수는 단수보다 복잡한 개념이므로 복수 형태는 단수 형태보다 길이가 더 길다. 그리고 He is bi-i-i-ig!과 He is big에서처럼 동일한 단어 big를 길게 발음하는 경우가 그냥 평범하게 발음할 때보다 그라는 사람의 덩치가 더 크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도상성의 원리는 예의에 관한 정중성 현상에도 적용된다. 흔히 정중한 말은 긴 경향이 있다. 다음 영어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손하고 정중한 표현일수록 문장의 길이가 길어진다.
No smoking. (금연입니다.)
Don't smoke, will you? (담배 안 피우실 거죠, 그렇죠?)
Would you mind not smoking here, please.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Customers are required to refrain from smoking if they can. (고객들은 가능하면 흡연을 자제해야 한다.)
We would appreciate if you could refrain from smoking cigars and pipes as it can be disturbing to other dinners. Thank you. (다른 저녁 식사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시가와 파이프 담배는 삼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거리를 반영하는 것이 언어의 양이다. 즉, 말하는 사람은 문장 첫머리에 있고 듣는 사람이 문장 끝머리에 있다고 할 때, 둘이 서로 친한 관계는 말의 양도 짧아 둘 간의 거리는 그만큼 짧은 것이다. 그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대화의 경우에는 말을 길게 하여 둘 간의 거리를 그만큼 길게 한다. 이처럼 언어의 양이 많아서 길어지면, 두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도 그만큼 길어져서 예의 갖추고 말하는 방법이 형성된다. 즉, 말일 길수록 더 정중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정중성 현상과 도상성의 원리는 대우법에서 잘 나타난다. 흔히 화자와 청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이 대우법 표현의 길이와 비례한다. 형-형님; 선생-선생님; 딸-따님; 아줌마-아주머니; 잔다-주무신다; 먹는다-잡수신다; 묻다-여쭙다; 밥-진지; 말-말씀; 병-병환에서처럼 평어보다는 대우법 표현이 양이 더 많은데, 이는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멀수록 정중하다는 현상을 반영하는 언어 현상이다.
이런 사실은 군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언어 사용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여자분한테서 전화 왔었는데 말입니다”에서처럼 군대에서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말을 할 때 ‘~하는데 말입니다’라는 형태가 추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같은 계급끼리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어떤 여자한테서 전화 왔었다’와 대조된다. 즉, ‘-데 말입니다’는 군대라는 사회에서 병사가 자기보다 상위 계급자와 거리를 두는 데 사용하는 언어 장치이다. 이처럼 물리적 혹은 사회적 거리는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상성 현상은 하급자가 어른들과 술을 마실 때 지켜야 하는 주도에도 적용된다. 물론 술을 마시는 상황이 모임마다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에 술을 마실 때 옆 사람이 잔을 들어 마시려고 하면 나도 같이 내 잔을 들어 가볍게 잔을 부딪치면서 술을 마신다. 특히 상급자가 술잔을 들어 마시려고 할 때 하급자도 같이 잔을 들어 같이 마시는 것이 예의 있는 술자리의 문화이다. 그래서 하급자가 먼저 잔을 들어서 상급자에게 같이 마시자고 권하는 것은 어느 정도 무례한 행동으로 보인다. 이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같이 길을 갈 때 상급자가 앞서고 하급자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술을 마시는 순서도 마찬가지이다. 상급자가 먼저이고 하급자가 그다음이다.
우리 문화 중에 미풍양속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 예로부터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표면적인 뜻은 스승을 존경하여 스승 대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며, 스승에게는 늘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아야 한다는 말속에 왜 그림자가 강조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림자의 이중적 의미를 제시하는 의견이 있었다. 첫째 의미는 스승의 허상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스승의 참 모습이 아니므로 제자는 그 허상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의미는 스승의 어둡고 나쁜 모습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참되고 올바른 모습만을 보여야지 그림자처럼 어둡고 나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림자를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는 문자 그대로의 그림자이다. 스승이 빛을 가려 그 스승의 뒤쪽에 나타나는 검은 그늘인 그림자 그 자체이다.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실제 스승과 그 그림자 경계 간에 거리가 형성된다. 이 말은 스승의 그림자 범위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즉, 스승님에게 정중하기 위해서는 스승님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스승님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이런 내 해석은 존중할수록 둘 간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다는 도상성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비단 이런 도상성 원리는 언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청바지, 체육복, 양복 등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옷이라는 형태에 맞추어 행동하기 마련이다. 오늘 난 이 도상성의 개념을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나의 외관, 나의 모양, 나의 형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