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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공부할 수 없는 이유

재미있으면 안 싸운다

by 케이트쌤

사교육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일하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켜봤자 역효과만 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나! 원래 사람은 애, 어른 할거 없이 노는 걸 좋아한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재미있으니까.

재미있게 놀고 내가 하고 싶은걸 하고 있으면 즐거우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학교 공부는 그렇지가 않다. 모든 과목이 다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없는 노릇이다. 누구든 학교를 다녔을 적에 모두 느껴봤을 고통이다.

'수학은 할만한데 영어는 영 잼병이다.'

'영어는 점수가 잘 나오는데 수학은 아무리 해도 제자리다.'

'외우는 게 자신 있어서 사회는 할만한데 과학은 영 흥미를 못 느끼겠다.'

'예체능이 너무 싫다.' 등등

물론 모든 과목이 다 재미있고 문제 푸는 게 즐거운 학생도 드물지만 있긴 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도 영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좋다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의 영어성적 또한 훌륭하다. 단어는 완벽하게 외워오고 시험은 항상 100점이다. 그 친구 어머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우리 OO는 집에서도 학원 가기 싫다거나 힘들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이가 영어를 무척 좋아해요'이다.

그런 학생들이 바로 상위 2% 안에 든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우리 반에 전교 1등이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그 비결이 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 대답이 충격이었다.

"난 문제집 풀고 책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금방 가. 문제집 풀다가 틀린 게 있으면 다음에 안 틀리도록 계속 문제 풀고 책 읽는 게 재미있어서 잠도 안 오던데. 그 시간은 피곤한지 모르겠더라고"



내가 어른이 되어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한 달만 가르쳐보면 될 놈 안될 놈 구분이 된다. 이건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선생님은 대체로 한 달만 아이를 가르쳐보면 가르치는 학생의 전체적인 공부 흐름 패턴이 관측이 되기 때문에 금방 파악이 된다. 하지만 내 본분은 안 될 놈 까지 잘 타일러서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라고 학부모가 학원을 보내는 거 아니겠는가!

역설적이게도 하기 싫어하는 걸 잘 타일러서 숙제하고 단어 외워오게 만들고, 하기 싫고 오기 싫은 영어 학원을 마와 큰 트러블 없이 오게 만드는 게 바로 내가 할 일이다.

난 가르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게 재미있다. 비록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가 숫자상으로는 더 많지만 그런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마저도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에 즐겁다. 그래서 항상 수업 시간이 금방 끝나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영어 때문에 엄마와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은 영어 진짜 하기 싫다, 엄마가 가라고 돈 냈으니까 억지로 온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솔직함 마저도 '내가 편하니까 나에게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재미있게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건 초등 1, 2 학년까지만 해당되는 얘기다. 국제학교나 영재교육원이 목표가 아니라면 보통은 초등 저학년까지는 재미있게 놀면서 학원 다니는 게 가능하다.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영어 게임하면서 노래 배우고 아주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생 수업시간에 게임하고 노래 부르면서 수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 고등학교 영어를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답이 나온다.

하기 싫지만 상급생이 되는 순간부터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제일 잘 알고 있을까? 바로 학생 본인이다. 아이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다. 안 할 수가 없다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의무감으로 단어 외우고 시간 내서 학원 숙제하며 꾸역꾸역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영어를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같은 소리 계속하니까 짜증 나고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라 학습 성향도 천차만별이다.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다. 부모로서 채찍질만 하는 것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자세를 보여주면 그래도 아이와 덜 싸우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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