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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의 메뚜기들 2

책 한 권도 제대로 끝낸 적이 없는 학생

by 케이트쌤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 엄마들의 교육열, 또는 본인의 배우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학원이 추가되기도 하고 작은 학원에서 대형학원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보통은 자기 스케줄에서 학원이 추가되거나 다른 학원과의 시간 조정 과정에서 영어학원 시간과 겹치지 않도록 학원 시간표를 계획한다.


우리 학원에 4년을 다닌 한 여학생이 있는데 이 아이는 삼 남매 중 엄마의 아주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첫째이다.

논술학원, 수학학원 그리고 수학 과외에 영어학원까지 스케줄이 아주 빡빡한 아이다.


동네에서 유명한 수학학원이 있는데 그 학원 등록을 위한 레벨 테스트를 위해 인기 있는 수학 과외 선생님을 힘들게 섭외해서 선생님과 과외 일정을 잡았는데 문제는 영어학원 시간과 겹친다고 한다.

그래서 월수금반에서 화목반으로 옮겨야 되겠다는데 문제는 화목반에는 이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반이 없다. 화목반은 레벨이 높아서 수업을 따라오기 힘들 거라고 미리 고지를 했는데도 학부모가 어쩔 수가 없다 지금 과외선생님을 놓치면 원하는 수학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못 받는다고 사정을 해서 할 수 없이 반을 옮겨줬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이가 잘 버텨서 수업을 따라오려고 노력을 해줬다. 성실하게 수업에 임했고, 본인 스스로 처지지 않고 어떻게든 따라오려고 애를 썼다.

본인 레벨보다 2단계가 높은 반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 가지만 그래도 기특하게 수업을 따라오고 있었는데 이 엄마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애가 스트레스받아서 잠을 잘 못 자고 있어요. 수학 과외 선생님과 시간을 조정했으니까 다시 원래 수업받던 반으로 복귀할게요."


본인이 원래 수업받던 반으로 돌아온 후 별다른 문제없이 잘 수업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4개월 후에 또 연락이 왔다.


이유인즉슨 같은 반에 있는 애들이 너무 떠들어서 수업 분위기가 엉망인 반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다며 다른 반에 배정해 달라고 학부모가 학원에 요청을 했던 것이었다.

내 수업 시간에는 분위기가 괜찮지만 대부분의 원어민 선생님 수업 시간은 솔직히 말하면 엉망진창이긴 하다. 원어민 선생님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인 선생님보다는 책임 의식이 별로 없어서 수업의 퀄리티가 좋을 수가 없긴 하다.


게다가 그 반은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다 학원에 친구 만나서 놀 생각으로 나오는 반이어서 당연하게도 수업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는 반이었다. 수업시간에 너무 시끄러우니까 한 명은 학원을 그만둔 상태였고 이 아이 혼자서 견디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닌 모양이었는지 반을 옮겨 달라고 하길래 면학 분위기가 양호한 반으로 옮겨줬다.

그런데 문제가 엉뚱한 데서 터졌다. 금요일은 수업을 못 들어온다고 한다. 반이 바뀌면서 수업 시간이 바뀌니까 논술학원과 금요일 영어학원 시간이 겹쳐지는 바람에 그나마도 금요일은 영어학원 출석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월, 수만 학원을 나오다 보니 당연하게 금요일 수업은 진도 따라오는 게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다시 4개월을 보내더니 또다시 학부모에게 화목반으로 옮겨달라고 연락이 왔다.

금요일 수업을 계속 빠지느니 그냥 힘들어도 화목반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한다.


다시 화목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사이에 화목 반도 진도를 꽤 많이 나간 상태였고 책도 이미 다음 단계로 다 바뀌어 있어서 결국은 다시 교재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단위로 반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과연 이 학생은 교재를 몇 권이나 구매했으며 그중 제대로 끝낸 책이 몇 권이나 되겠는가?

반을 옮길 때마다 과목별로 교재를 재구매해야 했으니 책은 계속 새로 샀지만 그마저도 진도를 나가고 있는 반의 중간에 끼어들어갔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한 책은 당연하게도 한 권도 없고 그 학생이 구매한 책 중에서 단 한 권도 제대로 끝낸 책이 없다.

화목반에 다시 들어와서는 한 달 다니더니 결국은 책만 사놓고 한 권도 제대로 끝난 게 없다며 학부모가 과외시킨다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엄마의 치마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본인이 아닌 이상 그 힘겨움은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메뚜기 뛰듯이 기웃거리게 되면 뭐하나 제대로 완성되는 게 하나도 없다. 과연 목표로 하던 수학 학원에 들어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학원에서 공부한 기간 동안 영어는 확실하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또래 친구들이 착실하게 진도 나가면서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안 그 학생은 그 어떤 과목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책이 단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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