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직에 있는 영어강사다 보니 우리 아들은 영어학원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내가 가르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자잘한 것들이 꼭 눈에 걸리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글씨이다.
' 영어실력이 아니고 글씨라고?'
다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글씨를 바르게 쓰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다. 특히 중, 고등학생이 되면 더 치명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시험 때문이다.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도 심각한 학생들이 꽤 많다.
기본적으로 글씨는 누가 읽어도 내가 쓴 문장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써야 한다. 어떤 날은 Writing 숙제를 검사하는데 문법 틀린 걸 고쳐주려니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본인에게 물어보면 자기도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건 정말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영어실력이 아니라 글씨를 우선으로 꼽는 이유는 바로 학교에서 중간, 기말고사 기간에 제출해야 하는 서술형 답안지 때문이다.
나는 학원 강사이고 우리 반은 학생이 몇명 안되기 때문에 나는 각 반별로 내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의 글씨체와 아이들 개별적으로 글씨 쓰는 습관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반마다 시험을 본 후 제출하는 답안지를 채점할 때 아이들의 글씨를 염두에 두고 채점을 하기 때문에 오답만 아니면 글씨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많이 좋아진 아들의 글씨체
하지만 학교는 상황이 다르다. 당장 중학생만 하더라도 영어 선생님께서 봐야 할 수행평가 및 시험기간에 채점할 서술형 답안지만 백장이 넘는다. 당연히 영어 선생님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든 교과목 선생님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일일이 아이를 불러다가 'oo야 이게 뭐라고 쓴 거니? 선생님이 알아볼 수가 없어서 채점하기가 힘들구나'라고 확인하고 채점해주는 선생님은 없다. 글씨를 거의 암호해독 수준으로 써서 제출하면 그 답안지를 채점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어도 도대체 뭐라고 쓴 건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지인이 대치동에서 수학 학원을 하고 있는데 학생 중 한 명이 기말고사 성적이 10점이나 깎여서 점수가 나와 확인을 해보니 서술형 답안지의 풀이과정 중 못 알아보는 부분에서는 부분 점수를 1점씩 깎아서 점수가 그렇게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그 학생은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은 1점 사이에서도 내신 등급이 바뀌기 때문에 10점이라는 점수는 거의 기말고사를 말아먹었다고 표현해야 될 것이다.
글씨를 예쁘게 쓰라고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글씨를 못써도 일단은 내가 쓴 답안지를 채점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선생님들은 다 감안해서 채점하신다. 물론 예쁘게 쓰면 읽는 사람도 감탄하면서 채점하니까 더 기분은 좋을 수 있지만 본인도 못 알아보는 글씨를 어떻게 채점을 해주겠는가?
특히나 요즘 초등학생들은 글씨가 거의 악필 수준이다. 15년 전 가르쳤던 학생들이나 10년 전 학생들과 객관적으로 비교를 해봐도 요즘 애들이 심각한 건 맞다.
흔한 요즘 아이들의 글씨체
요즘 아이들은 읽고 쓰기보다 듣고 보는데 더 특화된 세대이다. 바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용 때문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자판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우리 아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쓰기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러니까 당연스럽게 대충 휘갈기는 수준으로 쓰는 것이다.
'얘들아, 중학생 되면 너네가 불리해진다.'
'제발 글씨 좀 알아볼 수 있게 써라'라고 해도 그냥 선생님의 듣기 싫은 잔소리로 치부해버린다.그래도 난 오늘도 여전히 엄마로서, 또 선생님으로서 잔소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