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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요구사항

을은 오늘도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by 케이트쌤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원장님께서 부르신다.

"에휴 월요일부터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그 엄마 오늘 또 전화 왔는데..."


논란의 발단은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그 엄마이다. 그동안 학원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갑질을 해온 터이다.

아들이 예민하니까 선생님이 바뀌면 안 된다고 해서 그 엄마의 아들이 있는 반은 항상 같은 원어민 선생님과 한국인 선생님이 수업을 했는데 작년 12월 첫째 주에 선생님 중 한 분이 독감에 걸려서 출근이 불가능했다. 학원에서는 며칠 동안 선생님이 못 나오는 대신 대체 선생님을 섭외해서 수업했다가 원장님은 대체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가는 일주일 내내 컴플레인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선생님인들 독감에 걸리고 싶었을까....


이번에는 딸이 수업하는 반이었다. 정원을 4명으로 맞춰준 그 반에 한 명이 추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신규생은 아니고 원래 다니던 남자아이인데 레벨이 올라서 반 이동이 생긴 경우에 해당했다. 남자아이가 성향이 시끄럽고 수업시간에 많이 떠드는 편이라서 수업이 끝난 후 원장님께 또 컴플레인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왜 그렇게 부산스러운 아이를 우리 딸 반에 편성했냐고 불평하면서 학원에서 본인의 딸과 성향이 같은 아이들끼리 반 편성을 해 달라는 요구였다.

영어 학원은 반 편성을 같은 레벨의 학생끼리 같은 반으로 편성하지 성격에 맞춰서 반 편성을 하지는 않는다. 그 엄마의 요구대로 성격에 맞춰 반 편성을 한다면 내성적 아이 , 활발한 아이반, 우등생만 있는 반, 숙제 안 해오는 애들 반 이런 식으로 편성을 해달라는 말인데 대한민국의 어느 영어 학원 반을 아이들 성격별로 편성하겠는가?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이다. 이번에 반을 옮긴 학생은 기존 재원생이었지만 신규생이 들어올 때 학원에서 어떻게 아이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해서 반 배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도 랜덤으로 반 편성을 하고, 대체로 영어 학원은 같은 레벨로 반을 편성하다 보면 한 반에 자연스럽게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이게 되어있다. 물론 학교와는 다르게 학년도 섞이게 된다. 우등생 중에서도 성격이 와일드한 학생도 있고 수업 시간에 얌전하지만 숙제 안 해오고 단어도 안 외워와서 매번 애를 먹이는 학생도 있다. 아이들 마다 천차만별로 다른데 성향을 맞춰서 반 편성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장님께서 시달리다가 결국 그렇게 반 편성은 안 되겠다고 거절하셨더니 그러면 학원을 계속 다닐 수가 없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한 뒤 통화를 마무리했다고 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학원 재정상황이 좀 안 좋기는 한데 그래도 그냥 이 참에 애들 데리고 나가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이 엄마한테 너무 시달려서 정신병이 올 것 같아."


진짜로 이번 기회에 학원을 그만둘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기상천외한 요구사항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우리 학원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웬만하면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학원이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안 들어주고 배 째라 하는 식의 학원은 없을 테지만, 그 요구 사항이라는 게 어느 정도 반영이 가능해야 참고해서 반영해주지만 이번처럼 애초에 무리가 있는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학원에서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을'은 어쩔 수 없이 매번 학부모의 욕받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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