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와 학습의 상관관계
의자에 앉아있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숙제 좀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고학년만 되면 공통적으로 엄마들로부터 들려오는 요구사항이다.
그런데 학부모 상담 후 알게 된 사실은 숙제를 많이 내달라는 엄마들의 요구사항이 진짜로 숙제가 적어서라기보다는 애들이 숙제만 끝내고 나면 집에서 펑펑 놀고 있으니까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더 많이 내달라고 한다는 걸 알았다.
학원에서 숙제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내서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하는 분량을 내주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단어시험이 있으므로 단어도 외워야 하고, 각 과목별로 숙제가 꾸준히 나오기 때문에 사실 숙제 분량이 문제가 아니고 집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하는 엄마들의 바람이 반영된 요구사항이다.
나 또한 숙제를 적게 내는 편이 아니다. 문법의 경우 문제를 다 풀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한 시간이 넘는다. Listening의 경우 Dictation(받아쓰기) 숙제는 음성파일을 듣고 빈칸을 채워야 하는데 이 빈칸도 개수가 만만치 않게 많아서 다 채워오려면 45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다. 게다가 Listening 시간에 외워와야 하는 단어 개수가 기본 30개 이기 때문에 단어 외우는 시간도 꽤 걸리는 편이다. 전에 어떤 학생은 오는 길에 잊어버릴까 봐 손에 단어장을 쥐고 걸어오면서 단어를 계속 외우면서 오는 학생도 있었다. 길 건널 때 위험하니까 그건 하지 말라고 했더니 요즘에는 길에서 외우는 건 그만뒀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숙제가 왜 이렇게 많냐고 불평을 하는데 그래도 다들 해오기는 한다. 숙제를 많이 내도 아이들이 학원에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문제를 풀고 방학기간에는 학원 수업시간 전에 일찍 와서 도서관에서 숙제를 다 마치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즉,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집에서 숙제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쉬는 시간에 미리미리 조금씩 해놓고 집에서도 조금 한 후 수업 시작 한 시간 정도 전에 미리 와서 남은 숙제를 마무리하고 들어오기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서 숙제를 하고 단어도 외우고 있는 것이다. 애들한테 물어봤더니 숙제를 쉬는 시간에 미리미리 해 둬야 집에서 숙제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까 쉬는 시간에 하는 거라고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끝나고 집에 가서 한 시간 넘게 숙제를 붙들고 있는 게 싫어서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한 후 남은 분량만 집에서 해결하니 그걸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서는 숙제가 너무 빨리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양쪽의 의견을 듣고 나니 둘 다 이해가 가기에 학부모 상담 때 본인 스스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엄마들이 다 똑같이 반응한다.
"우리 애가요? 제 눈에는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집에서 공부하는걸 못 봤는데요."
아이들을 직접 관찰하고 앞뒤 사정을 이야기해 주면 마치 엄마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돌아오는 답이 똑같다.
"다른 학원 애들은 집에 오면 한 시간씩 숙제하는데요"
다른 집 학생들 사정까지 내가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우리 학원 아이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데 엄마 마음에 들게 한 시간 이상씩 앉아서 숙제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엄마들은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만 계산하고 단순히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하고 숙제 좀 많이 내달라고 자꾸만 학원에 요구를 하는 것이다.
학생의 개인 성향에 따라서 물론 각자 집에서 숙제와 단어 외우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다르겠지만 무조건 한 시간 이상씩 앉아서 숙제를 한다고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앉아서 영어숙제를 한다고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 되겠는가!
그건 내 아이가 의자에 오래 앉아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다. 숙제라도 하고 있으면 핸드폰으로 게임하거나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기 싫은 엄마들의 자기만족일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꼭 수학학원의 숙제와 비교를 하는데 수학숙제는 고학년 과정을 학습하면 당연히 숙제하느라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건 수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는데 수학학원 숙제는 기본 1시간 넘게 앉아서 하는데 왜 영어학원 숙제는 그렇지 못하냐고 물으면 애들만 답답한 게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