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학원은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반 재정비에 들어가서 적지 않은 숫자의 학생들이 다음 달부터 반 이동이 생기게 된다.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 중에서, 그리고 우리 학원에 개설된 전체반을 다 합쳐도 이 반처럼 면학 분위기가 좋은 반이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4-6학년으로 구성된 반인데 한 해가 지나면서 6학년 학생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3시까지 학원에 오는 게 불가능하기에 중학생 입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 한 명만 5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반으로 옮기게 되었고 나머지 학생은 인원변동 없이 다 같이 그대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냥 옮겨주는 건 아니고 레벨이 높은 반에서 수업을 해도 될 정도로 레벨 테스트 결과가 충분히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학원은 3개월에 한 번씩 레벨 테스트를 진행한다)
원장님께서 이 반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같이 5시에 수업하는 반으로 옮겨주려고 아이에게 몇 번이고 권했지만 본인이 싫다고 하며 옮기지 않겠다고 한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내가 새 학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므로 겨울방학 시작하기 전에 옮겨도 된다고 몇 차례 권유를 했다. 아이의 엄마와는 미리 통화를 한 상황이었고 내 수업을 계속 듣기를 원한다는 말이 나와서 5시에 수업을 하는 반도 내가 수업을 맡아서 하는 반이라고 어머님께 알려드린 상황이었다.
"5시에 수업하는 반도 너네 반하고 같은 시간표로 수업하는 반이야. 문법은 너희 반도 이미 중학 선행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테고, 다만 레벨이 올라가니까 reading과 listening 교재는 조금 어려운 교재로 바뀌는데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수업 따라올 수 있어"
아이가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따로 불러서 면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5시에 수업 시작하는 반의 아이들이 강의실에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떠들며 놀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에 옮기게 되면 이 반인 거죠?"
"응. 맞아"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별로 좋은 표정이 아니다. 예상했던 대로 쉬는 시간에 그 반의 분위기를 보더니 아이가 질색을 하며 나에게 옮기기 싫다고 했다.
"선생님 저 그냥 지금 반에서 수업 들을게요"
3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반은 전체적으로 면학분위기가 굉장히 잘 형성되어 있고,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각자 단어를 외우며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들로만 한 반이 구성되어 있다. 성향이 같은 아이들만 모아 놓은 건 아닌데 그 반의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공부하기 싫어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다른 아이들은 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반으로 도망갔고, 그 결과 이 반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만 남게 되었다. 우리 학원에서 유일하게 숙제나 단어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반이다.
이 반의 아이들은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모두 각자 알아서 숙제해 오고 단어도 완벽하게 외워오기 때문에 재시험이 없는 반이다. 물론 모두가 우등생이어서 낙오자 없이 시험 결과도 모두 좋게 나오는 유일한 반이다. 이런 반에서 조용히 수업하다가 아무리 레벨이 높은 반이더라도 시끄럽고 분위기 산만한 반에서 공부하기 싫으니까 옮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학생은 영어에 진심이고 성적에 대한 욕심도 굉장히 많은 학생이다. 당연히 반 분위기가 안 좋은 반에 가서 혼자 고고한 백합처럼 공부하기가 싫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원장님도 그럴만하다고 수긍하신다.
"그 반 애들이 워낙 다들 열심히 하고 똑똑하니까 다른 반 하고 반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
원래 공부 욕심이 있는 아이들은 학원도 대충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새 학기 시작하면 6학년이 되는데 이제는 다 커서 반에 어떤 학생이 있고 반 분위기가 어떤지 다 알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본인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똑 부러지는 아이들도 있다.
이 반 아이들처럼 알아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반의 전체적인 면학분위기도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다. 본인이 싫다는데 학원 측에서 억지로 옮길 수도 없기에 그럼 언제든 마음이 생기면 따로 얘기하라고 한 후 당분간은 계속 남아있는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내 생각 역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다른 반의 분위기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