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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Feb 15. 2024

우물 안 개구리를 위한 변호

“O 씨랑 O 씨는 탁구장에서만 게임하지요? 빨리 대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참 안타깝네요. 쯧쯧.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우물 안 개구리예요.”

    

1-2년 차 구력의 남자 회원들을 가리키며 60대 5부 이질 고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독학으로 자신만의 타법을 개발해 지역 탁구장 리그전은 물론 지역 대회, 오픈대회  가리지 않고 거의 주말마다 대회 일정이 잡혀 있다.  수비도 좋고 공격력도 만만치 않기에 성적 또한 상위권으로 수많은 상장과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 그는 우물 안을 뛰쳐나간 우물 밖 개구리인가? 그런 그가 보기에 두 명의 회원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안타까운 회원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탁구장에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득실득실하다. 오히려 외부 대회를 나가는 회원들이 2-3명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 우물 안 개구리들의 면면을 한 번 살펴볼까? 탑 3 개구리들만 살펴보겠다.

    

넘버 1은 관장님이 6부 정도의 실력이라고 하는데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해 공식부수로는 8부인 남자 회원이다. 그는 몇 번 지역 대회에 참가하더니 이 대회에 나가지 않겠단다. 예선전에서 전승을 하고 올라갔는데 번번이 본선 1회전에서 떨어지더니 일명 본선 트라우마를 갖게 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재미 없어요. 공이 원하는 대로도 안 오고. 원하는 스타일로 탁구가 쳐지지도 않고” 뭐라고요? 원하는 대로 오는 공이 있어요?  

    

그는 커트 랠리를 하다가 드라이브를 거는 스타일이다.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그가 대회에 나갔더니 공이 천차만별이란다. 빠른 공, 요상한 공, 오다마는 공 등등.

특히 여자들의 빠른 플레이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서 이 개구리는 선언했다. “탁구장에서 무림의 고수(?)로 남겠다.”

 다만 관장님과의 레슨을 레슨실이 아닌 탁구대에서 게임으로 대신한다. 본인이 그렇게도 원하는 스타일인 커트 랠리를 하다가 드라이브를 거는 스타일로. 그러면서 드라이브가 잘 걸리는 날은 피식피식 웃는다. 이 개구리는 우물 밖으로 다시 나가긴 글렀다.

      

넘버 2는 나의 연습파트너다. 그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우물 안을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의 운동목적은 그의 말을 빌리면 “오직 살기 위해서".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지병을 세트로 가지고 있는 그는 진짜 살기 위해 탁구를 시작했다. 그는 나를 포 구장 회원 주로 연습 한다.  게임도 잘하지 않는다. 그는 ”땀나게 운동하는 게 좋다. “라는 단순 명료한 목적으로 탁구장을 뛰어다닌다. 땀을 흠뻑 흘렸다 싶으면  ”운동 끝“ 이라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탁구장을 나간다. 이런 사람이 우물 밖에 관심이나 있겠는가?

      

넘버 3바로 나다. 그냥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다. 원래도 연습하는 걸 좋아하고 게임하는 걸 즐겨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거에 별 관심이 없는데 어쩌다 탁구에 미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매일 하고 싶은 연습이 많은데(이러저러한 시스템 연습을 좋아한다) 탁구장에 머무는 시간이 부족 다 할 수 없아쉬지경이다. 탁구에 미쳐 있다기보다 각종 연습에 미쳐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대회 나가는 걸 즐겨하 고수님은 아예 대놓고 압력을 가한다. “대체 언제 대회 나가실 거예요? 대회 나가야 실력이 는다고요.”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당장  대회에 나가고 싶 않을 뿐다.

그의 말처럼 대회에 나가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가고 싶지 않다면 내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 요즘 백 쪽에서 돌아서 거는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에 미쳐 있다. 탁구 로봇과 관장님 레슨과 이질 고수님과의 연습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에 할애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드라이브 전형의 탁구인이 되는 것이기 포핸드 드라이브  꼭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좀 되었다가 안 되었다를 얼마나 무한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원하는 드라이브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렇듯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강철 무쇠 체력이 아니기에 몸 상태도 봐 가면서 연습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물 밖은 관심조차 없다.

   

 우물 안 개구리지만  지금 현재 내 욕망이 무엇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백 쪽에서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멋지게 거는 것이다. 미치게 갖고 싶다. 그 욕망을 이루고 싶다. 그러니 오늘 하루 그걸 갖기 위해 용을 쓰고 흠뻑 땀에 젖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 하루 그 욕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라는 감각만 있으면 족하다. 무얼 할 때 행복한지 알고 있다.


지금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게 행복하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우물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지 않을까? 우물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또 뭐 어떤가?

사실 우리 대부분은 각자의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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