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May 01. 2023

승급 못하고 탁구 치는 내 삶은 가치 없는 걸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차고 넘치지 않나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우리들이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삶이 무가치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한 작가 지망생이 “내 경험이 성공적이어야 다른 사람들한테 뭔가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저까지 글을 써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작가 은유가 답한 말이다. 일주일 내내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 말대로 나 역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게임보다 연습을 좋아하는 꽤 독특한 캐릭터지만, 그것 말고는 그날그날 탁구를 하는 평범한 생활체육인 중 한 명이다. 이런 내게도 ‘성공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그럼, 탁구인으로서의 성공은 뭘까? 승급하는 게 성공일까? 그럼, 몇 부까지 승급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5부? 4부?


탁구에는 부수 체계가 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최하위 부수인 8부부터 최상위 부수인 1부로 나뉘어 있다. 지역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거나 입상권에 들어 포인트를 쌓아야 승급이 가능하다. 승급과는 상관없이 탁구를 치는 탁구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탁구인은 승급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승급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10년을 쳐도 한 부수 승급하지 못하는 탁구인들이 부지기수다. 최상위 부수인 1, 2, 3부는 같은 탁구인이지만 딴 세계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1부가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걸. 아니야. 다시 태어나도 힘들걸?”이라는 우스갯소리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나는 이제 5년 차로 8부다. 어느 날 탁구 문외한인 친구에게 탁구 친 지 5년이 되었다고 하니 “야! 5년 쳤으면 이제 탁구 선수 됐겠네?”라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 던진다. 탁구 선수?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게 그녀의 말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마치 죄라도 지은 양 주저리주저리 부수 체계를 설명하고 “탁구가 그렇게 만만한 운동이 아니야. 한 부수 올라가는 데 10년 넘게 걸린 사람도 있고, 아직 못 올라간 사람들도 많아.”라는 변명을 한다. 나한테 불리한 단기간에 승급한 사람의 예는 쏙 뺀 채. 사실 그런 사람의 예는 드물기에 마음대로 열외 시킨다. 왜 내가 아직 8부인지 이해시키는 데만 급급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 친구를 이해시켜야 하지?’ 의문이 든다. 나의 장황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그래도 그렇지. 여태 뭐 한 거야? 5년이나 했으면 성과를 내놓으란 말이야.” 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기어이 내게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래. 내가 부족해서 승급 못 했어. 노력이 부족했다고.” 처음부터 실력이 부족해 승급 못 했다고 말할 걸 내 꼴만 우스워졌다.


왜 그리 변명하지 못해 안달이 났을까? 내게는 소중한 5년의 탁구 인생이 부수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그렇다.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삶이 무가치한가요?”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그렇게 와닿았던 것 역시 ‘승급하지 못한 채 8부로 탁구 치는 내 삶은 가치가 없는 걸까?’라는 물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라는 그녀의 말에 묻어가련다. 8부라는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낸 세월인데.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루하루의 노력은 어쩌라고? 나의 하루하루를 성과와 효율만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부수라는 단 한 가지 기준으로 말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중에 이번 주 토론 도서인 세이노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업하면서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은 자기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제대로 뼈를 때린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하루하루의 노력이 사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이면 어쩌지? 자기도 취면 어쩌지?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삶이 무가치한가요?”라는 은유와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일 수 있다.”라는 세이노. 이 둘의 말 사이에서 혼란스럽게 서 있다.

평범함의 가치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존재와 인생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는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생각한다. 이 둘의 말이 평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라다니는 말일 수 있겠다고. 이 둘 사이에서 매번 방황할 수 있겠다고. 



  








 

이전 08화 어느 탁구인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