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며 방향을 배운다
요즘 지도 앱은 고민할 틈도 주지 않는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다음에 가야 할 길을 또렷하게 짚어준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조차
‘이 길이 가장 빠릅니다’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배달을 막 시작했을 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티맵이 시키는 대로,
오르막을 오르고, 골목을 꺾고,
유턴 금지를 어기지 않으면서
지도 위의 최단거리를 충실히 달렸다.
하지만 좁은 골목은 달랐다.
지도엔 안 나오는 출입구,
잠시 세우면 클락션부터 울리는 골목 중간,
차를 돌릴 수 없게 좁은 교차로들.
지도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길이 늘 옳지도 않았다.
결국 카카오내비도 함께 켜기 시작했다.
두 앱의 안내를 눈으로 견주고,
주소를 기준으로 알려주는 목적지 위치가 다르면
로드뷰로 주택 건물 벽면까지 들여다본다.
몇 초의 예습이
몇 분의 방황을 덜어주니까.
그렇게 준비를 해도 때때로 길을 잃는다.
초행길은 어느 순간부터 막다른 골목이 되고,
미로처럼 이어진 건물의 뒷문으로 나를 몰아간다.
차를 돌릴 틈도 없는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아, 다신 이 동네 오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한다.
며칠 뒤, 배달 콜이 다시 그 동네를 가리키고,
거절 버튼 위에 손이 잠시 멈춘다.
그러다 또 ‘이번엔 다르겠지.’
그 마음으로 다시 달려간다.
확실히 처음보다 덜 헤맨다.
대로에서 꺾인 골목 초입도 떠오르고,
마주쳤던 편의점과는 반갑게 눈인사를 나눈다.
그날 막혔던 골목의 끝도 이제는 안다.
한 번 헤맸던 길은, 확실히 내 안에 남는다.
지금의 나는 앱의 말만 따르지 않는다.
도착 예정 시간이 빠르다 해도,
차를 잠깐 세우고 ‘이 길이 진짜 맞나?’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는 헤매는 순간에도
전처럼 초조해지지 않는 건,
길을 잘못 들더라도
돌아 나오는 법까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구를 놓쳐도, 한참을 돌아도,
그 끝엔 반드시 내가 서 있을 자리를
스스로 되짚어낼 수 있다는 믿음.
낯선 길을 지나며 익힌 건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