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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이 들려준 평화

소리가 좋아지는 밤

by EveningDriver

배달을 나서면 귀가 먼저 긴장한다.
신호음도 아니고, 콜 알림도 아닌,
어느새 몸에 새겨진 소리들이 있다.

첫 번째는 밤의 주차장.
아파트든 빌라든 오피스텔이든,
이미 빽빽하게 차가 들어차 있다.
그 사이, 다른 차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애매하게 비어 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한다.
‘잠깐은 괜찮겠지’ 하고 내리는 찰나,
어디선가 날아드는 단호한 목소리.
“거기 세우면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아, 죄송합니다!” 하고 답한다.
목소리는 차들 사이로 흩어지고,
그 사이 시동은 다시 켜진다.
식당 앞이든 배달지든,
차 문을 열기 전, 귀부터 곤두세운다.

두 번째는 공동현관 앞.
배달 메시지에 출입번호가 있으면 단숨에 들어가지만,
없는 경우엔 호출 버튼이 유일한 희망이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플라스틱,
귀를 간질이는 짧은 신호음.

‘출입문이 열립니다.’
순간, ‘오케이, 감사합니다.’가 스친다.
문을 밀고 들어서며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이 닿는 그때,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간혹 응답이 없는 경우가 있다.
안에서 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샤워 중이거나, 기다리다 잠든 경우.
그럴 땐 신호음만 길게 번진다.
몇 번이고 버튼을 누르다,
결국 고객센터 번호를 꾹 누른다.

마지막은 나만의 최종 확인법.
문 앞에 음식을 두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하다보면,
가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정확한 호수에 맞게 놓고 온 건가.

그럴 땐 복도에서부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귀를 세운다.

조용한 복도에 울려퍼지는...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찰칵' 다시 닫히는 소리.

그 소리가 들리면
배달이 무사히 끝났음을 안다.
그 짧은 잡음이 마지막 불안을 밀어내고
잔잔한 평화를 들려준다.

바로 그때, 현관 안쪽에서
“얘들아, 아이스크림 왔다~”
“와~~~~”
하는 목소리까지 퍼져온다면,
그건 배달의 피로를 단번에 녹여내는
가장 달콤한 소리일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배달은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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